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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520/pimg_7605771742953873.jpg)
아파트 안에 있던 여자 하나가 권총을 보고 "어머,어떡해. 강도가 들었어요!"라고 외쳤고, (......) "아뇨......! 아뇨, 강도가 아니라..... 나는 그냥......."이라고 외쳤다가 생각을 바꿔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음, 어쩌면 강도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여러분이 타깃은 아니에요! 어쩌면 지금 이건 인질극에 가까울지 몰라요! 그 점에 대해서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가 참 복잡하게 꼬였네요!"
새해 이틀 전 날, 현금이 없는 은행을 털려했던 강도가 있었다. 정확히 6천 5백 크로나를 요구하던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빈 손으로 경찰을 피해 도망갔고,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어느 아파트 문이 열린 것을 보았고, 그곳은 마침 매물로 나온 아파트라 구경하는 잠재 고객들로 버글거리는 곳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인질극이 벌어졌고, 몇시간 뒤 별다른 대안없던 은행강도는 항복했다. 인질 여덟 명, 잠재 고객 일곱명과 부동산 중개업자 한 명이 무사히 풀려났고, 이후 아파트를 습격한 경찰들은 그곳에서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인질극을 벌이던 은행강도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현관홀에 혼자 남겨진 은행 강도는 권총을 움켜쥔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악의 인질이야. 당신들은 역대 최악의 인질이야."
데뷔작 '오베라는 남자'로 대성공을 거둔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다. 전작들에서 매력적인 주인공과 탄탄한 스토리로 따듯한 감성을 더해주고 위트있는 문체로 읽는 재미를 준 작가이기에 이번 책도 무척 기대가 컸다. 단순 은행강도의 인질극 같지만 사실 그보다 바보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에는 늘 하나의 강렬한 캐릭터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개성 강한 제각각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든 채 인질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은행강도의 웃픈 인질극에는 그보다 더 바보같은 인질들이 있다. 인질이 된 상태에서도 은행 강도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는 다양한 피자를 요구하고, 남은 피자를 랩으로 잘싸서 냉장고에 넣을 정도로 대단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퇴 후 아파트를 사서 리모델링해서 되파는 부부, 출산을 앞둔 신혼부부, 콧대 높은 은행 고위 간부, 겁 많고 시끄러운 부동산 중개업자 그리고 아흔살의 노파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 2대에 걸친 경찰 부자까지 합세해 끊임없는 바보 같은 모습으로 상황을 악화시킨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마요." 율리아가 구슬렸다.
"사실 우리는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요." 로게르가 말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척하면 돼요."
안나레나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은행 강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게르 말이 맞아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척하면 돼요. 당신이 복면을 계속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할게요."
막힘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인 작가다. 그만큼 스토리가 재미있고 유쾌하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10년 전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린 남자, 인질들, 경찰 부자 그리고 은행강도까지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엮이고,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불안함과 고독,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한치앞을 내다 볼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인생은 계획 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니 말이다. 위태롭고 불안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어쨌든 이 불안함 속에서도 오합지졸 같은 인질들의 바보같은 행동으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맞을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