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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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될 줄 알았던 한 달이 겨우 엿새 만에 악몽으로 바뀌어버렸다.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中 14p.

 

혼자 남겨졌다. 구조요청을 할 수도 없는 곳,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식량도 구할 수 없는 곳. 바로 저 먼 우주, 화성 한가운데. 나!홀!로! 생각도 하기 싫을 상황. <마션>은 화성 탐사에 나선 한 우주비행사가 착륙 후 엿새 만에 모래 폭풍으로 인해 화성에서 홀로 조난을 당하게 되고, 다음 탐사가 있을 때까지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의 지구귀환기라고 할 수 있다.

 

함께 탐사에 나섰던 동료들은 모래 폭풍에 떠밀려간 그가 죽은 줄 알고 떠나버렸고, 통신 장비도 고장나버려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조차도 알리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식물학자라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이용해서 화성에서 감자를 심고, 또 과학적인 지식들을 이용해서 물을 만들고.. 박학다식한 우주과학 지식을 한껏 활용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장비들로 극한 상황에 맞서 생존하고자 한다.

 

"어떤 기분일까?"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먼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자기가 온전히 혼자이고 우리 모두가 자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는 벤커트를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지금 마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中 111p.

 

내가 읽어본 화성과 관련된 책이라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SF 작가로 불리운 필립 K. 딕 의 단편집이자 영화 '토탈리콜'의 원작이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정도. 사실 이마저도 읽다가 말았던 기억이 ㅋㅋ 다른 화성 관련 소설 책보다 앤디 위어에게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마션이 출간과 동시에 SF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서점가를 석권하고 영화로까지 나온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듯 싶다. 막연하게 꿈꾸던 미지의 세계가 아닌 실제 화성의 모습과 탐사결과들을 반영한 현실적인 이야기이기에 허구라기보다는 실제로 화성을 탐사하고 돌아온 사람의 후기를 읽는 듯해 더 피부에 와닿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화성 탐사대는 약 4년 뒤에나 도착을 할 예정이고, 남아있는 식량은 그 오랜 기간동안 견뎌낼 수 없는 양이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살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를 순간 와트니는 자신의 생존기간을 늘리기 위해 인분을 활용하여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길러내고, 동료가 남기고간 나무 십자가로 불을 붙여 물을 만드는데 쓰고.. 주어진 환경에서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참으로 존경할 만했다.

 

"언제나 희망을 있습니다. 의외로 빨리 알아차리고 방향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폭풍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요. 어쩌면 와트니는 우리가 찾지 못한, 적은 에너지로도 생명 유지 장비를 돌리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마크 와트니는 이제 화성에서 생존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뿐일 겁니다."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中 466p.

 

책의 시작은 이랬다. "아무래도 좆됐다." 처음엔 잘못된 번역인가 하고 원서도 찾아봤다. "I'm pretty much pucked." 하긴, 지구의 어느 섬 무인도도 아니고 저정도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처음으로 사망한 인물이 아니라 화성에서 처음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지구로 성공적으로 다시 귀환한 인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건 누구나 포기할 만한 상황에서 포기를 모르던 그와 그의 동료들 때문이지 않을까싶다.

 

처음엔 과학적 용어와 생소한 우주관련 지식으로 인해 읽기에 너무 힘들었지만, 뒤로 넘어갈 수록 점점 몰입하면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600쪽이나 되는 방대한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라이언일병구하기 이야기를 영화로 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서 좀 더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빨리 영화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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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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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한 사람을 알게 되고, 알게 된 그 한 사람을 사랑하고, 멀어지다가 안 보이니까 불안해하다가, 대책 엇이 마음이 빵처럼 부풀고 익었다가 결국엔 접시만 남기고 고스란히 비워져가는 것. 이런 일련의 운동(사랑)을 통해 마음(사람)의 근육은 다져진다. 사랑한 그만큼을 앓아야 사람도 되고 사랑한 그만큼을 이어야 사랑도 된다.

 

「내 옆에 있는 사람」中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자꾸만 떠나고픈 생각에 여행 관련 책자들을 뒤적뒤적 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집어든 책 한 권.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이병률 작가의 책이다. 뭔가 많은 걸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에 와닿는 글들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책. 많은 사람들이 이병률 작가의 책이 나올 때 마다 하는 말이 있다. "아껴 읽고 싶다". 그만큼 오래오래 옆에두고 꺼내보고 싶을 정도로 좋다는 말이겠지.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두 권의 여행에세이로 많은 독자층을 가진 이병률 작가의 신작.. 사실은 나온지 좀 지났지만.. 아무튼.. 이번 책도 역시 .. 제목에서 부터 끌리더니 언제나처럼 나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작가의 전작들의 배경이 해외의 어느곳, 이라면 이번 책의 배경은 진안의 터미널이나 비양도로 가는 배 안 처럼 국내 곳곳의 낯익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만난 인연,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들로 담겨져 있다.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게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든 낫는다는 것입니다. 일 년이 걸리든 십 년이 걸리든 우리는 그 아픔을 영원히 붙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고통을 잘 넘기라고 언덕을 보여줍니다. 힘이 들 때는 이제 곧 바닥이니 잘 넘기라고 바닥을 보여줍니다. 힘이 들 때는 이제 곧 바닥이니 잘 넘기라고 바닥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억세고 거칠어서 마음을 도려내지만, 시간이 하는 일은 훈하고 부드러워 그 도려낸 살점에다 힘을 이식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中

 

보통의 여행 에세이들이 보여주는 내용들은 주로 풍경에, 여행지 소개에... 그런 것 처럼 나에게 여행이란.. 그저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멋진 풍경들을 두 눈에, 가슴에 담고 오는 그런 관광, 혹은 힐링이란 의미로 컸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나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선 여행의 풍경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주가 되는 내용은 사람이다. 여행에서 접하게 되는 일상적인 느낌에 솔직 담백한 감각적인 이야기, 아름답고 섬세한 그만의 감성적인 이야기 처럼 작가가 말하는 여행이란 그저 풍경을 관광하는 것이 아닌, 여행이라는 여정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 사이로 걸어들어가 더 가까워지는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같은 상황이라 해도 봄에 보는 것과 가을에 보는 것은 다르다. 봄에 봐서 아련하다라고 반응하는 것을, 가을에 볼 때는 보고 싶다라고 중얼거리게도 한다. 봄에 피어난 꽃들에게서 뭔가를 수혈받는다면 가을에 떨어지는 것들 앞에서는 마음이 호릿해져서 뭔가 빠져나가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봄에 가슴 뭉글뭉글해지는 것이 가을에는 뭉클뭉클해지지 않는가 말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中

 

평범한 일상들에 관한 이야기 인듯 하지만,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인연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 좋은 사람이라.. 흔히들 하는 말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이란 말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먼저 해준다면 물 흐르듯이, 바람이 불어 오듯이 자연스레 이루어 진다는 말일 것이다. 늘 좋은 사람이, 누군가가 먼저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사람들은 늘 내 옆에 있었다. 언제나.. 단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살아갈 뿐.. 시간이 지나서 보면 다 고맙고 좋은 사람들인데..

 

책을 읽다 문득 깨닫게 된 사실!! 목차나 페이지가 없다. 좋았던 페이지 구절을 기록하려고 보니...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작가의 여행길에 함께 동행한 기분도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길을 걷고 인생이란 여행을 하고 있다. 그저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런 여행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여행 말이다.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계절이 도착하고 계절이 떠나기도 한다. 나에게는 가을이 왔는데 당신은 봄을 벗어나는 중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사랑이 시작됐는데 당신은 이미 사랑을 끝내버린 것처럼.

그러니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를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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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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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라!"

"폐하!"

"묻으면 될 것이 아니냐, 태우고, 묻고 없애면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 해서 될 일이 아니옵니다."

"천하의 주인은 나다. 내일의 주인은 내 아들이다. 옛 귀신 따위가 무어 두려우라." 선비는 고개를 저었다.

 

「글자 전쟁」中 87p.

 

외국 소설들이 점령한 서점가에 쭉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진명 작가의 '글자 전쟁'.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팩션의 대가이자 허구라는 장치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작가로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받고 있다. 한반도 핵 문제나 중국에서 왜곡하려는 고구려 문제 등 뚜렷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소설들로 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가이기에 이번에도 역시 많은 기대를 했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 박사가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을 만났을 때,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우리 한국 까지 문제가 많다"라고 농담을 하자, 임어당이 놀라며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하는 핀잔을 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자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자는 정말 우리 글자일까' 하는 의문에서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국상어른, 그러나 사람이 어찌 글자를 만들어내겠습니까?"

"그럼 글자를 짐승이 만든 것이냐?"

"제 말은 글자란 수천 년, 수만 년 세월을 두고 흘러온 것일진대 어떻게 모르는 글자를 단번에 만들어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글자 전쟁」中 179p.

 

이름 있는 국제무기중개상인 주인공 태민은 무기 중개 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게 되고, 궁지에 몰린 그는 중국으로 도피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된 남자 전준우에게서 USB를 하나 받게 되고, 그날 밤 그가 살해당하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중국의 치명적인 약점'이 담겨있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정체불명의 USB를 열게되고, 그 속에서 역사속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흔히들 전쟁이라고 한다면 검과 활로 이뤄진 피가 낭자한 그러한 전쟁을 가장 먼저 떠올릴텐데, 어쩌면 글자를 없애 정신적으로 종속시키고자 한 글자전쟁이 더 큰 위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 속에 숨겨진 우리의 역사라는 내용도 흥미진지했고, 소설속에 또다른 소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무척이나 흥미로워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아니, 어째서 한국말이 그대로 중국 자전의 발음기호가 되어 있는 거죠?"

"어째서 그렇겠나?"

"설마 ...... 한자는 지금의 중국인들이 만든 게 아니라는 뜻입니까?"

"아직 여기에 대해 확고부동한 이론은 없어. 하지만 어떤 글자가 있으면 그 글자는 가장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가 있을 수밖에. 나는 이 문제를 자네에게 숙제로 내주고 싶네. 자네는 수재이니 뭔가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보다 주요한 건 자네는 한국인이야, 한국말의 수수께끼는 한국인이 푸는 게 맞아. 다음에 다시 한 번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아주 기쁠 거야."

 

「글자 전쟁」中 291p.

 

중국와 일본의 역사 침탈, 왜곡에 대해 대응하고, 동아시아 역사 및 독도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2006년 탄생한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 한 해 예산만 2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되고 있는 재단인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재단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비난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없애버리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 바로 역사란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지 아닐까.

사실 역사란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배우는게 다였던 지라 크게 관심도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물론 역사를 모른다고 해서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질이 떨어지거나, 또 역사를 잘 안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닐 것이기에....'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신채호 선생의 말을 다 지킬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수많은 조상의 숨결이 깃들어져 있는 이 나라 이 땅을 최소한 지켜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그가 시작한 글자전쟁을 수행해 진실을 밝히고 은자를 되찾아오는 것이 그의 진정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소설을 완성하는 것을 아마도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은나라를 건국한 동이가 남긴 숙제로 여겼으리라. 그리하여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중국에 들어와 안 보이는 글자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리라.

 

「글자 전쟁」中 3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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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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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누구나 탈출을 바라지만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경력, 집, 갖고, 빚. 그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발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안전을,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제공하니까. 선택은 좁아지지만 안정을 준다. 누구나 가정이 지워주는 짐 때문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만,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떠안는다.

 

「빅 픽처」中 117p.

 

지금 현재 자신의 삶에 100% 만족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내가 원하던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분명 만족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만약 내가 가보지 않은 길, 그 다른 길을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늘 있는 법! 100% 만족이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해보지 못했던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 열광하기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들을 동경하기도 하는 걸테지.. 하지만 의도치 않게 타인의 삶을 살게 된다면?

 

불과 15분 전만 해도 나는 모범적인 미국 시민이었다. 근면하고, 경제활동도 잘하고, 아이도 키우고, 대출금도 잘 갚고, 자동차도 두 대나 몰고, 소비활동에도 적극적이고, 신용카드도 골드 카드를 쓰고, 최고의 수입을 자랑하는 변호사였다. 그런데 이제......

이제...... 완전히 끝장났다. 그렇게 되기까지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병을 잡은 지 단 5초 만에 모두 끝나 버렸다. 어떻게 이리 간단하게 끝날 수 있을까? 살인자. 내가?

 

「빅 픽처」中 145p.

 

'빅 픽처'의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는 탄탄한 앞날이 보장되어있는 뉴욕 월가의 잘나가는 변호사로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아빠, 베스의 남편이기도 하다. 안정된 수입에 뉴욕 중상류층들이 모여사는 고급 주택에 거주하는 누가 보든 겉모습만 보면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 될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한때 사진작가의 꿈을 꾸었던 그는 아버지의 반대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꿈을 접고 변호사의 길에 접고 변호사가 되었던, 그래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일 것 같았지만, 언제부턴가 아내와의 관계가 뒤틀렸고, 부부관계가 원만해지기를 애썼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 베스가 이웃집 사진작가 게리와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고, 그집을 찾아갔던 벤은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하게 된다. 벤은 완벽한 범죄를 위해 자신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죽은 게리의 삶을 살기로 한다.

 

'물질적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가짜일 뿐이고, 언젠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등에 짊어진 건 그 물질적 안정의 누더기 뿐이라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언젠가는 그 모든 걸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빅 픽처」中 251p.

 

책을 읽고 나서 처음엔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던 책 표지가 공감되었다. 어쩔 수 없이 게리의 이름으로 살게된 벤. 벤 이라는 이름의 삶을 살아갈 땐 이루지 못했던 사진작가의 꿈을 게리의 이름으로 게리의 삶으로 살게되면서 그 꿈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늘 불안해해야하고, 거짓으로 시작된 삶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게 되고 그 거짓된 삶들은 실타래처럼 얽혀버리게 된다. 어쩌면 변호사 벤으로서는 고가의 카메라와 장비들을 사들이는 호사로운 삶에 만족해야했겠지만, 게리로서 살아가는 순간은 자신이 갈 수 없었던 사진작가의 꿈을 이룬것이니 잠시나마 행복한 삶이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자신이 벤인지 게리인지도 모를 삶을 살게 되어서 슬픈 삶이라고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고민된다.

 

소설이 출간되고 수많은 독자들의 열광에 힘입어 얼마지나지 않아 영화로도 개봉되었다고 한다. 미국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개봉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점은 있지만.. 원작을 읽고 난 관객들은 책과 다른 결말에 그다지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고는 하지만 영화에서 두 갈래의 삶을 살게 된 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는 하다.

 

당신은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만약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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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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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달이 두 개 떠 있었다. 작은 달과 큰 달. 그것이 나란히 하늘에 떠 있다. 큰 쪽이 평소에 늘 보던 달이다. 보름달에 가깝고 노랗다. 하지만 그 곁에 또 하나, 다른 달이 있다. 눈에 익지 않은 모양의 달이다. 약간 일그러졌고 색깔도 엷은 이끼가 낀 것처럼 초록빛을 띠고 있다. 그것이 그녀의 시선에 포착한 것이다.

 

「1Q84_1」中 418p.

 

지난 10년간 최다 판매 작가 1위에 오른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그에겐 수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최고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꼽으라면 출간 되기도 전에 예약만으로도 매진사태를 불러일으켰던 1Q84가 아닐까 싶다. 한때 허세책의 대명사로 꼽히며 수많은 SNS에 설정샷 사진들로도 많이 등장했었던 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 열풍에 힘입어 나도 그때 1Q84를 읽었었는데, 그 당시 읽을 땐 그냥 유명하다기에 아무 생각없이 읽는 흉내만 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쩌면 나이가 들고, 그때와는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오래전 내가 읽은 하루키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오마메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요즘 들어 기묘한 일이 주위에서 연달아 일어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세계가 자기 멋대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때만 다들 움직이는 게임처럼. 그렇다면 하늘에 달이 두 개 나란히 떠 있어도 그다지 기묘한 일이 아닌지 모른다. 언젠가 내 의식이 푹 잠든 동안에 그것이 우주 어딘가에서 홀연히 찾아와, 달의 먼 친척의 사촌 같은 얼굴을 하고 그대로 지구 인력권에 머무르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1Q84_1」中 449p.

 

책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입시학원의 수학강사로 일하고 소설가 지망생이던 덴고는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의 고스트라이터로 글을 쓰게 되었고,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아오마메는 헬스클럽 매니저로 일하면서 약간의? 정당한 살인을 저지르는 있는 인물이다. 어떤한 연관도 없어보이는 서로 다른 두 주인공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다가 우연히 1Q84라는 현실과는 약간 다른.. 달이 두개인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된다.

 

1,2 권에 이어 3권으로 넘어와선, 아오마메와 덴고의 거리가 좁혀졌고, 그럴수록 인물들 간의 관계 또한 한층 더 복잡해지고, 읽을수록 과연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두 사람은 달이 두개인 1Q84라는 세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들... 특히나 3권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다음엔 왜 4권은 출간하지 않는가.. 아오마메와 덴고는 진짜 1Q84란 세계를 벗어났는가.. 그 이후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하는 수많은 의문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과거를 바꿔 써봤자 그리 큰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고 덴고는 실감한다. 시간이라는건 인위적인 변경은 모조리 취소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가해진 수정에 다시금 새로운 수정을 덧칠하여 흐름을 원래대로 고쳐갈 게 틀림없다. 다소의 세세한 사실이 변경되는 일은 있다 해도,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덴고일 수밖에 없다.

덴고가 해야 할 일은 아마도 현재라는 교차로에 서서 과거를 성실히 응시하고, 그 과거를 바꿔 쓸 수 있는 미래를 차곡차곡 써나가는 것이리라.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1Q84_2」中 113p.

 

아직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무르고 있는 1Q84 이 책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3권이나 되는 두툼한 분량에, 긴박한 스릴감으로 잠못들게 만드는 그런 소설도 아닌 것이.. 읽으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하루키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작품세계. 사실은 다 읽고 나서 곱씹어봐도 아주 약간만 알겠고 ㅋㅋ아직도 '공기번데기'속에 등장하는 리틀피플이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도 어렵고 이해도 잘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책도 출판되었을까..이런 그의 작품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숨은 의미들을 생각하고 해석해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다. 깊어가는 가을.. 쉽게 술술 익히는 책은 아니지만.. 하루키의 문장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지금.. 당신의 하늘에는 몇개의 달이 떠 있습니까?!! 보이는게 전부는 아닙니다...

 

"정말 기묘한 세계로군. 어디까지 가설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그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져. 이봐 덴고, 자네는 소설가로서 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겠나?"

"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 곳이 현실세계예요."덴고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이곳은 현실세계네." 고마쓰는 말했다.

 

「1Q84_3」中 4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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