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묻어라!"

"폐하!"

"묻으면 될 것이 아니냐, 태우고, 묻고 없애면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 해서 될 일이 아니옵니다."

"천하의 주인은 나다. 내일의 주인은 내 아들이다. 옛 귀신 따위가 무어 두려우라." 선비는 고개를 저었다.

 

「글자 전쟁」中 87p.

 

외국 소설들이 점령한 서점가에 쭉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진명 작가의 '글자 전쟁'.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팩션의 대가이자 허구라는 장치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작가로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받고 있다. 한반도 핵 문제나 중국에서 왜곡하려는 고구려 문제 등 뚜렷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소설들로 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가이기에 이번에도 역시 많은 기대를 했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 박사가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을 만났을 때,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우리 한국 까지 문제가 많다"라고 농담을 하자, 임어당이 놀라며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하는 핀잔을 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자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자는 정말 우리 글자일까' 하는 의문에서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국상어른, 그러나 사람이 어찌 글자를 만들어내겠습니까?"

"그럼 글자를 짐승이 만든 것이냐?"

"제 말은 글자란 수천 년, 수만 년 세월을 두고 흘러온 것일진대 어떻게 모르는 글자를 단번에 만들어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글자 전쟁」中 179p.

 

이름 있는 국제무기중개상인 주인공 태민은 무기 중개 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게 되고, 궁지에 몰린 그는 중국으로 도피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된 남자 전준우에게서 USB를 하나 받게 되고, 그날 밤 그가 살해당하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중국의 치명적인 약점'이 담겨있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정체불명의 USB를 열게되고, 그 속에서 역사속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흔히들 전쟁이라고 한다면 검과 활로 이뤄진 피가 낭자한 그러한 전쟁을 가장 먼저 떠올릴텐데, 어쩌면 글자를 없애 정신적으로 종속시키고자 한 글자전쟁이 더 큰 위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 속에 숨겨진 우리의 역사라는 내용도 흥미진지했고, 소설속에 또다른 소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무척이나 흥미로워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아니, 어째서 한국말이 그대로 중국 자전의 발음기호가 되어 있는 거죠?"

"어째서 그렇겠나?"

"설마 ...... 한자는 지금의 중국인들이 만든 게 아니라는 뜻입니까?"

"아직 여기에 대해 확고부동한 이론은 없어. 하지만 어떤 글자가 있으면 그 글자는 가장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가 있을 수밖에. 나는 이 문제를 자네에게 숙제로 내주고 싶네. 자네는 수재이니 뭔가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보다 주요한 건 자네는 한국인이야, 한국말의 수수께끼는 한국인이 푸는 게 맞아. 다음에 다시 한 번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아주 기쁠 거야."

 

「글자 전쟁」中 291p.

 

중국와 일본의 역사 침탈, 왜곡에 대해 대응하고, 동아시아 역사 및 독도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2006년 탄생한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 한 해 예산만 2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되고 있는 재단인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재단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비난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없애버리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 바로 역사란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지 아닐까.

사실 역사란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배우는게 다였던 지라 크게 관심도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물론 역사를 모른다고 해서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질이 떨어지거나, 또 역사를 잘 안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닐 것이기에....'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신채호 선생의 말을 다 지킬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수많은 조상의 숨결이 깃들어져 있는 이 나라 이 땅을 최소한 지켜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그가 시작한 글자전쟁을 수행해 진실을 밝히고 은자를 되찾아오는 것이 그의 진정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소설을 완성하는 것을 아마도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은나라를 건국한 동이가 남긴 숙제로 여겼으리라. 그리하여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중국에 들어와 안 보이는 글자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리라.

 

「글자 전쟁」中 3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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