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쯤 지난후에 상자를 뜯어보니 사과는 반나마 썩어 있었다. 썩은 것을 골라내면서 그녀는 사과 역시 자기들끼리 닿아 있는 부분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는걸 알았다. 가까이 닿을수록 더욱 많은 욕망이 생기고 결국 속으로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이 사람의 집착과 비슷했다. 갈색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내 봤지만 살이 깊게 팬 사과들은 제 모양이 아니었다.
인생에는 세 가지 길밖에 없대. 달아나든가, 방관하든가, 부딪치는 것. 하지만 방관하는 게 더는 허용되지 않을 때가 오지. 그러면 달아나거나 부딪치는 수밖에.
-이혜경 '문밖에서 中'-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죽음이란 무서운 거야. 죽음의 순간이란 말이지, 칠흙같이 어둡고 거대한 공간에서 꼭 내 머리만한 돌이 내 면상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그런거야. 피할 수 없어... 내 면상이 깨어지는 토마토처럼 터져서 사방으로 튀겠지. 그게 죽음이야. 칠흙같은 암흑, 지푸라기 하나 잡을 데 없는 무한함,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충돌. 그런데도 차라리 그 돌을 맞고 터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 사는게 습관이 되는 것처럼 죽는 것도 습관이 되지.
#1. 그 강렬한 열망은 전부 진실이다. 하지만 내 천부의 소심함은 내 열망을 뛰어넘지 못한다. 소심함을 이기지 못하는 열망이라면 결국 자격이 없는 것이다.
#2. "같이 걷구 있어두 아득히 먼 곳에 두고 온 것 같은 사람. 그런 간절함" "멀리 있어도 내 안에서 함께 숨쉬는 것 같은 사람. 그런 일치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