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일과 완공일이 새겨진 대리석 현판을 단 벽돌 건물처럼, 그녀는 제 삶이 좀더 단단하고 구체적인 것이기를 바랐다. 더 늦기 전에 주춧돌을 놓을 준비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혼자라면 달랐을 거라고 민아는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서두르는 것은 준호와 같이하는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뿐인 생을 무임승차하듯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삶이 그녀가 꿈꾸는 삶이었다.
만나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요령껏 말다툼을 피하는 기술도 생겼다. 둘 중 누구도 먼저 상대의 신경을 긁거나 도발하지 않았고, 통화를 하다가도 혹여 의견 충돌이 생길라치면 거기서 일단 대화를 중단하고 전화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각자 숨을 골랐다. 권태로이 시간의 더께가 쌓여가는 만큼 무력한 평화도 유지되었다.
'어떻게 하지?'와 '어떻게 할 거야?'는 전혀 다른 질문이었다. 그녀는 분명히 '어떻게 하지?'라고 했었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이별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합의는 없었다. 실패한 연인에겐 나눌 것은커녕 남아있는 것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언으로 동의한 부분은, 더 오래 같이 있으면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사랑을 지속하는 데에 실패했으나 어쨋거나 이별을 위한 연착륙에는 실패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