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양철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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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이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19). 



70년 대에 취득한 1종 면허가 취소되고 2016년 면허를 새로 받아오신 날, 아버지는 몹시 우울하셨다. 1종 면허를 빼앗긴 아버지. 40년이 넘는 세월을 삭제 당한 기분이셨겠지. 그런데도 나는 위로할 말을 알지 못한다. 우리 부모님도 늙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엄마 아빠가 훌쩍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이 "긴 세월에 대한 침묵과 생명에 대한 작별의 결과물"(11)이라고 말한다. 내게는 이 책이 긴 작별인사로 읽힌다. 느닷없이 떠나버린 아버지에게 건네는,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은 치매 어머니를 붙잡고 건네는, 품에서 떠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건네는, 상실과 떠나보냄을 반복하는 우리네 인생에게 건네는 긴 작별인사.


문장이 아름다워서 밑줄을 긋다 덜컥 마주하게 되는 것은 가슴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이다. 늙는다는 건 세상에서 삭제 당하는 느낌이라는 것, 늙은 엄마의 '집'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있다는 것, 늙어서 굳어버린 무릎을 이끌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부모의 묘소 앞에 선 늙은이도 "한때는 해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소년"(63)이었다는 것이 몸속을 파고들어오는 가시처럼 아프게 박힌다. 


이 책은 타이완의 대표적인 지성이요, 중화권 최고의 사회문화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룽잉타이'의 명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책이다. 출간된지 십 년이 지났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이 책이 여전히 "중화권 문학 베스트셀러 부동의 1위"인지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이고 은밀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 통찰이 더 없이 매섭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도중에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책은 다 읽기도 전에 보이는 이들마다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좋은 책을 읽으면 한동안 그 책 이야기로 시끄러운데, 정작 다 읽은 뒤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차올라 내용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남을 쓰러뜨리는 방법"(67)을 배우고 가르치 위해 혈안이지만, 어쩌면 인생은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눈으로 하는 작별>은 인생을 마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매일 소박한 기대를 안고 가끔은 흥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조용히 실망하면서 하루하루 지내다가, 결국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자신만의 '깨달음'을 간직한 채 마지막 몸짓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47)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작별인사를 준비해야만 한다. 우리 앞에 예고되어 있는 슬픈 이별은, 오늘이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조급한 사랑이 저지르는 실수를 용납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숨은 크나큰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수천수만의 지뢰가 묻혀 있는 슬픔의 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반문한다. "인류가 생명을 이토록 학대하고 파괴한 다음에도 의지할 무언가가 과연 남아 있게 될까"(185).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은 슬픔 속에 있는 듯 하다. 젊음이 아니라 늙음 속에, 생명이 아니라 죽음 속에. <눈으로 하는 작별>은 인문학의 힘, 눈물의 힘, 슬픔의 힘,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다. 인생을 알기 원한다면 이 책을 읽자.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오는데도, 필립은 아직 자고 있다. 

커튼을 젖히고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을 확인하며 생각해본다.

이 평범한 일상 속에 오히려 크나큰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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