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인간, 다윗 - 영웅과 죄인이 교차하는 한 인간의 초상
데이비드 울프 지음, 김수미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기존 종교는 인간의 영혼을 부분 부분으로 해체시켜 분석하려는 유감스러운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렇게 해서는 전체적인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어느 한 부분, 특히 찬양받는 업적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성경 자체로 돌아가면 좀 더 있는 그대로의 다윗을 만날 수 있다. 성경에는 결점투성이 인간 군상과 과장된 거룩함의 이미지를 확 달아나게 만드는 문제적 상황들로 가득하다"(277-278).



하나님 나라를 대표할 '드림팀'을 구성한다면 아브라함과 다윗이 가장 먼저 뽑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의 벗"이라 칭한 인물이고,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유일무이한 칭찬을 받은 인물이니까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는 말씀으로 신약의 문이 열리는 걸 보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라는 확신도 듭니다. 런데 이 책, <문제적 인간, 다윗>이 제기하는 문제가 흥미롭습니다. <문제적 인간, 다윗>은 "과장된 거룩함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성경 자체로 돌아가 좀 더 있는 그대로의 다윗을 만날" 것을 요청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칭찬받은 "큰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인을 위해 기도했던 로마 백부장도,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도, 끈질긴 기도로 응답을 받았던 수로보니게 여인도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한 사건', '한 장면'입니다. 그들의 생애를 전면적으로 조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반해, 다윗은 "성경이 개인의 성격을 전면적으로 다룬 최초의 인물"(129)이라는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환기시킵니다. 성경이 전하는 날 것 그대로의 다윗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메시아에게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을 남긴 '위대한 영웅'이기보다 결점투성이의 '문제적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목적이 단지 다윗에 대한 신앙적 환상을 깨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이렇게 결함이 많은 '문제적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하나님께,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날까지 다윗 이야기를 읽는 많은 이들에게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저자는 먼저 다윗이 얼마나 사랑받는 인물이었는지를 강조합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사랑받는 자'라는 의미이며, 성경에서 다윗만큼 사랑받은 자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다윗은 미갈의 사랑을 받았으며, 성경 인물들 중 여성의 사랑을 받았다고 기록된 최초의 남성이다. 미갈의 오라비 요나단도 다윗을 사랑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다윗을 사랑했다. 심지어 평생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사울 왕조차 처음에는 그를 사랑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조차 다윗을 마음에 꼭 들어했다니, 무슨 말이 필요하랴"(10). 


<문제적 인간, 다윗>은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년 다윗'의 모습에서부터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총 9가지 이미지(소년, 연인, 남편, 도망자, 왕, 죄인, 아버지, 군주, 메시아의 조상)로 다윗의 인생을 재구성합니다. 여기에는 "시인, 음악가, 용사"의 역할도 포함됩니다. <문제적 인간, 다윗>이 폭로하는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아마도 "다윗의 성격"일 겁니다. 평생을 "전쟁과 여인들, 왕위 쟁탈전을 벌이는 아들들 틈바구니"(10)에 살았던 다윗은 위대함 속에 간교함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평합니다. "성경에서는 주인공이 내뱉는 첫마디를 통해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다윗의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아스라엘이 받은 치욕을 씻어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준다고요?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삼상 17:26). 저자는 이 한마디에 "다윗 특유의 이상주의와 실속 챙기기(야망), 경탄할 만한 자기 확신(왕으로 기름부름을 받으면서도 사명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도 불안해 하지 않음)"이 들어 있다고 꼬집습니다(35-36).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시각에서 다윗 왕에게 덧입혀진 '위대함'의 이미지를 벗겨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정치적인 음모와 술수에 능한 사람이라는 비판도 있어 왔습니다. <문제적 인간, 다윗>도 그런 의심을 품습니다. 가장 의심스러운 장면은 다윗의 원수들이 다윗과는 상관 없이 적절한 때에 줄줄이 죽어나가는 '횡재'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자연사하거나(나발), 자살하거나(사울), 그것도 아니면 결단코 다윗의 사주를 받지 않은 사람의 손에 의해 제거됩니다(아브넬, 이스보셋). "원수가 이렇게 편리하게 사라지다 보니 필시 뭔가 음모가 있으리라 의심하는 사람들"(133)도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도, 그리고 사무엘서 저자도 이런 의심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아브넬이 죽었을 때 다윗은 "전 국가적으로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며,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루 동안 식음을 전폐"합니다. 이로써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에게서 비롯된 일이 아님을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깨달아 알았다"(삼하 3:36-38)고 확인해둡니다. 


<문제적 인간, 다윗>의 초점은 다윗의 이중성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정치적, 군사적 권력을 동시에 추구했으며,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주도면밀하게 현실적인 대비책도 강구할 줄 알았고, 친밀한 관계에서도 열정과 냉대라는 두 극단을 오가고, 시인과 음악가로서 타인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무지비한 면도 있으며, 세심하게 들어주고 반응해줄 줄도 알지만 속임수에도 능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는 축복받은 사람의 이미지"와 "이스라엘 국경 너머의 이방 땅을 전전하는 쫓기는 지도자의 이미지", 이렇게 다윗의 생애 자체가 두 극단을 오가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삶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영웅의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보여주는 다윗의 생애에 재밌는 일면이 있습니다. 이 위대한 왕의 이야기에 여성들의 위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윗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여성들로부터 흠모와 조언과 위로"(54-55)를 얻는데, 그렇게 인생 굽이굽이마다 여성들이 등장해 삶의 방향을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능한 용사이기도 한 다윗이기에 위기의 순간마다 여인의 인도를 받는 장면이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문제적 인간, 다윗>은 날카로우면서도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아름답습니다. 성경만큼 많은 문학 작품에 영감을 준 책도 없다고 하는데, 이 책은 날카로운 성경 지식은 물론 그런 문학적 영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윗이 사람들을 위로한 힘은 무엇이었는지, 왜 그토록 사랑받았는지, 하나님은 왜 장차 태어날 메시아의 조상으로 다윗을 택하였는지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이 내린 결론이 어떤 설교보다, 어떤 신학적 해설보다, 어떤 문학작품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한 편의 소설로 읽어도 좋고, 깊이 있는 성경지식을 위한 교재로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보증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사울처럼 소심하지 않고 오히려 다윗처럼 담대하고, 종잡을 수 없으며, 위험하고, 시적인 세계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키시는 분"으로 묘사했다(사 45:7). 즉 세상만사가 근원을 따져보면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의 표상인 거친 황야 위에 우뚝 선 리어왕처럼 다윗 역시 분노했고, 고뇌했으며, 매순간을 치열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지녔다. 죄악과 숭고함을 모두 지닌 채 하나님의 원하는 바를 준행하고자 최선을 다했던 다윗이야말로 메시아의 예표이자 인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표상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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