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당신을 위한 로마서 1 팀 켈러, 로마서
팀 켈러 지음, 김건우 옮김 / 두란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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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을 많이 못해서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친구에게!

 


전도폭발 훈련을 받고 전도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전도폭발은 "선생님, 만일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착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해서 천국에 못 들어갈 것 같다'고 대답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느냐와는 상관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러면 살인죄를 지은 사람이나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나 다 똑같이 천국에 간다는 말이냐?" 하면서 격하게 화를 낸는 할아버지도 계셨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 도덕적인 삶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회적으로 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와, 본이 되지 못하는 신앙인에 대한 사회적 지탄과, 믿음만 강조하고 행함은 부족한 것에 대한 신학적 자성이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발간된 김세윤 박사님의 <칭의와 성화>도 그런 요청에 대한 신학적 답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세윤 박사님은 그 책에서 칭의와 성화를 다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종말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하는 성도의 긴장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삶에 대한 이러한 요청이 또다른 긴장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이 구원의 조건으로 인식될 위험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복음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 율법주의(공로주의, 도덕주의, 성과주의, 종교적 열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할 때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죄가 아니라, 나의 의(공로, 착한 행실)를 자랑함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가르치는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팀 켈러가 가장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 율법주의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것은 죄가 아니라, 교묘한 위장된 도덕주의(율법주의, 공로주의, 성과주의, 종교적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저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목회자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책을 읽고 복음의 본질에 새롭게 눈떴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복음은 본질적으로 좋은 소식, 즉 뉴스"임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는 좋은 소식을 '좋은 전령"이라고 번역했습니다.) "1세기 경,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는 전령을 보내 자신의 승리와 통치권, 그리고 평화를 선포했다. 한마디로 복음은 선언이자 선포다. 복음은 따라야 할 충고가 아니라, 이루어진 것에 대한 소식, 그것도 좋은 소식이다"(23). 복음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어떤 규칙 조항이나 엄격한 규율, 도덕적 충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다. 복음은 개념이 아닌 한 분에 관한 것이다"(24).


 

 


 

 

  

"하나님의 복음"(롬 1:1)은 하나님의 의의 선포였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거룩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안에서 나타났으며, 

이 완전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해 거저 주는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메시지이다(15).

 

팀 켈러의 <당신을 위한 로마서> 1권은 로마서 7장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은 성경을 보는 눈을 열어 주고, 어떻게 오늘의 일상 속에서 말씀을 적용할지 제안하는 해설이자 안내서"라고 소개합니다(16-17). 성경 66권 중에 로마서만큼 복음의 본질을 잘 설명한 책도 없고, 로마서만큼 많은 성도들에게 읽히고 연구되어 온 책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로마서>는 바울을 사상을 탐구하며 복음의 본질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강조되는 것이 복음(은혜)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복음을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예수님이 단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과거지사를 청산한 것에 불과"하며, "공적이나 공로를 쌓아가는 일은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습니다(38). 믿음에 의해 우리가 의로워지고 난 후, 우리 자신의 선함으로 그 의로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복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오해입니다. 


로마서는 이러한 도덕주의자들이 들으면 경악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말한다. '죄 아래'와 '불의한'은 같은 말이다. 불의하다는 것은 위치와 관계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다른 사람 앞에 똑바로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죄 아래'는 법률 용어로, 우리가 죄의 시민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울은 어처구니없게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모두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하다. 로마서 1장 18-32절에 묘사된 그대로 소름끼칠 만큼 부도덕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이나 양심적이고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죄 아래 있는 것이다.팀 켈러 목사님은 이런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처한 법적 상태가 같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었고, 그 면에서만큼은 정도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110).

 

거룩한 삶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인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착한 행실에 만족하며 은근한 자랑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이 전하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종교적인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는 죄가 아니라, '착한 행위'에 대한 태도에 있다. 둘 다 죄를 회개하지만 그리스도인만이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된 착한 행위들을 회개하고, 종교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들에 의존한다"(122).


선한 행위, 착한 행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주의 이면에 도사리는 교만을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복음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고, 복음의 기쁨과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탈진과 무기력의 늪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녀 세대에게 복음을 이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신앙전수에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전부는 빈손으로 그리스도께 가서 그분의 의를 받는 것이다. 사람들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그들의 죄라기보다는 그들의 선한 행위들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선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의로서 자기가 한 선행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의를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선함을 포기하고, 우리의 반역만이 아니라 종교성도 회개해야 한다"(127).

  

 

 



 

 

 

"로마서는 우리로 이런 자문을 던지게 한다. 

루터처럼 나는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복음이 나에게 주는 자유와 해방을 향해 

'돌진하고(broken through)' 있는가?"(16)

 


우리가 로마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학적인 논쟁이나 지적 만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편지(로마서)를 읽고 고찰하면서,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통해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삶이 새로워질 것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바울"(롬 1:1). 여기서 "택정함을 입다"로 번역된 단어의 원 뜻은 '분리되다', 곧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평생 복음을 위한 '종'으로 살았지만, 그것은 그의 기쁨이기도 했습니다(22). 


<당신을 위한 로마서>를 읽으며 '복음'의 본질이 깨달아질 때, 사도 바울이 받았을 충격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전해져오는 듯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훼방하고 반대했던 유대인들의 극렬한 저항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누구보다 율법에 열심이었고, 종교생활에 열심이었던 사도 바울이었기에 복음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이 주는 완전한 자유가 오히려 복음의 '종'으로 살기를 열망하게 하며, 복음이 주는 완전한 해방감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으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터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귀하지만, 우리의 지성을 통해 진리가 깨달아질 때 온몸에 이는 전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한 희열이기도 합니다. <당신을 위한 로마서>는 바로 우리의 지성을 터치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원하는 신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다음 권이 무척 기대됩니다. 복음이 나에게 주는 자유와 해방을 향해 돌진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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