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
레오나르도 콜레티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물리학은 철학의 한 계열 학문으로 탄생했어. 소위 자연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면서 시작되었지"(18).


 
저자는 물리학의 역사를 강의하면서 물리학의 여러 가지 개념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몇몇 이미지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에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명화'는 물리학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저자가 명화를 도구로 선택한 것은 우선은 이미지가 가진 힘 때문입니다. 그림 하나가 공식 하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7). 또 다른 측면에서는 예술(명화)과 과학이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동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예술과 과학을 바라보면 그 둘은 한 길을 가기 위한 두 가지 수단이라는 것입니다(5-7).

다시 말해, 이 책은 명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명화를 물리적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같은 주제를 가진 명화를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차별점이기도 하면서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명화의 주제와 물리학 개념이 연결되고 설명된다는 점이 굉장히 참신합니다. 물리학 역사와 개념에 "보다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리학보다는 명화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명화가 어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그런 점에서 명화가 가진 주제가 더 확대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책입니다. 또 이 책은 미술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여인 '프란체스카'가 물리학과 수학 서적을 좋아하는 이성적인 남친 '파울로'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한 박물관으로 이끌면서 시작되는데, 이 둘의 대화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문학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리학적 개념과 명화의 주제를 연결시키려다 보니 다소 끼워맞춘 느낌이 드는 곳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배운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물리학에 철학적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첫 번째 강의는 움베르토 보초니의 <동시적 착상>을 통한 "분리하면서 포착하기"입니다. <동시적 착상>은 "높은 빌딩의 발코니에서 몸을 밖으로 내밀고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화가는 이 그림을 통해 "무질서하게 펼쳐지는 수많은 형태, 소리, 색들의 미로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의 시선에 한계를 설정하고 정확한 지점 하나를 선택해서 대상을 바라보아야 하 필요가 있다"(18)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리학도는 이 그림이 "물리학이 시작되는 순간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그림"(18)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거야. 세상을, 그 속에 살면서도 마치 바깥에서 보듯이 총체적으로 이해해 보고 싶었던 것이 옛날 철학자들의 꿈이었지. 물리학은 철학의 한 계열 학문으로 탄생했어. 소위 자연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면서 시작되었지"(18).

물리학의 철학적 측면은 2강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통해 보다 분명히 드러납니다. 저자는 파이프를 그려놓았을 뿐 파이프는 아니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물리학의 모델이 가진 의미를 설명합니다. 물리학은 그 자체로 철학의 한 줄기이기도 하지만, 물리학이 철학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 담긴 32가지 물리학 강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라바조의 <바울의 회심>을 통한 "잘못된 점을 고칠 줄 안다는 것"과 지오토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를 통한 "우주선(宇宙線)"이라는 강의입니다. 저자는 <바울의 회심>이라는 작품을 통해 물리학의 한 역사를 설명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인 강의였습니다. 저자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그림은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어. 동시에 기독교의 역사, 그러니까 세계의 역사가 뒤바뀐 순간을 아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림이야. 이전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그런 순간을 그린 거지"(62). 그리고 물리학자 플랑크의 이야기를 대입합니다. 전통 물리학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플랑크가 그 전통 물리학에 위배되는 실험 결과를 손에 쥐고 전통 물리학의 개념과 부정할 수 없는 새로운 실험 결과들의 일치점을 찾기 위해 절망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를 이야기합니다(67). 말 위에서 떨어진 바울처럼, 플랑크도 그가 올라타 있던 전통 물리학의 개념에서 미끄러 떨어진 것입니다. 결국, 플랑크는 전통 물리학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가정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 순간이 물리학의 개종과 같은 획기적인 순간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는 굉장히 독특한 물리학 강의입니다. 물리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들가 읽어야 그 맛과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것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물리학의 철학적 측면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멋진 강의였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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