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여행 백서 - 일상이 즐거워지는 여자들의 주말 여행
김정원 지음 / 시공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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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 나쁜 여행은 있을 수 없다.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이 있을 뿐이다."

 

 

여행도 습관이다. 자주 떠나 버릇한 사람들은 후딱후딱 짐도 잘 싸고, 뚝딱뚝딱 예약도 잘 하고, 훌쩍훌쩍 망설임도 없이 떠나고, 자박자박 둘러보기도 잘 한다. 여행과 담을 쌓고 살았던 나는 나는 뭐 그리 생각할 게 많고, 따져볼 게 많고, 알아볼 게 많은지, 짐을 쌀 때도, 예약을 할 때도, 떠날 때에도, 단체 행사 기획하듯 노트를 펼쳐 들고 머리를 싸맨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집을 떠난다는 부담감, 어렵게 떠난 여행이니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까지 떠나기도 전에 마음의 짐만 벌써 한 짐이다. 마음을 비우려 떠나는 여행 맞나 싶다.

 

게다가, '선뜻', '가볍게' 나서지 못하고 여행을 주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또 따로 있다. '여자'라는 것, 그리고 '혼자'라는 것! 나홀로 여행이라고 하면 우선 가족들도 걱정부터 앞서고, 안전도 문제이지만 낯선 곳에서 혼자 밥 먹고 잠자리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매번 계획을 세웠다가도 마지막에 주저 앉곤 했던 것도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 혼자 서는 '1박' 하는 여행도 해본 적이 없고, '혼자 하는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고 본격적으로 다녀온 곳이 서울(북촌 한옥마을과 삼청동길)이 고작인 나에게 '도전'을 외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바로 이 책, <여자 여행 백서>.

 

10년 넘게 월간지 기자로 일했다는 저자는 '여행'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 홀로 여행'의 고수이다. 일상이 여행인 그런 사람. 그런 저자의 한마디가 여행에 대해 늘 가지고 있던 부담을 덜어주었다. "좋은 여행, 나쁜 여행은 있을 수 없다.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이 있을 뿐이다." 무슨 본전 찾듯이 지나치게 '열심히' 계획하고, '열심히' 준비히고, '열심히' 돌아다니며 기필코 '좋은 여행'을 해야지 주먹을 불끈 쥐었던 나의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그래 너무 힘 주고 다니지 말고 힘을 좀 빼고 다녀봐야겠다. <여자 여행 백서>를 길잡이로 삼아서 말이다.

 

<여자 여행 백서>는 여자들이 여행하기 좋은 10개 도시(부산, 경주, 통영, 전주, 제주, 여수, 강릉, 안동, 강화도, 서울)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고 싶은 여행지가 많겠지만, 주로 '도시'에 집중된 것은 아무래도 안전과 숙박 때문이리라. 저자는 10개의 여행지를 소개하며 이렇게 조언한다. 봄에 떠나는 여행이라면 "봄꽃 축제에 주목할 것!" 그리고 여행지로는 여수, 전주, 제주를 추천한다. 여름에 떠나는 여행이라면 "탁 트인 바다와 섬을 찾아 떠나는 여행!" 여행지로는 부산, 제주, 강릉, 통영을 추천한다. 가을에 떠나는 여행이라면 "자박자박 걸으며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여행!" 안동가 경주, 강화도를 추천한다. 겨울에 "추워서 꼼짝달싹하기 싫은 여행자라면 서울이나 부산처럼 다이내믹한 도시 여행"을 추천한다. 또 오롯이 혼자가 되는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자연을 벗 삼아 걷는 코스가 많은 제주, 강화도, 강릉, 통영, 안동, 여수"를, "북적북적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면 볼거리가 밀집된 서울, 부산, 전주, 경주"를 추천한다. 10개의 도시는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다른 군으로 다시 묶을 수 있는데, 휴양 스타일 여행이라면 제주, 강화도, 강릉, 통영, 자연탐험 스타일이라면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안동, 경주, 여수, 카페나 맛집 투어를 즐기는 미식가 스타일이라면 서울, 부산, 전주가 제격이란다.

 

<여자 여행 백서>는 1박 2일을 기준으로 추천일정을 제시하고, 여행지에서 꼭 해봐야 하는 것(MUST DO IT!), 교통을 비롯한 주요 여행지 정보, 맛집, 숙소 등을 소개한다. 음식점은 혼자 주문이 가능한 곳, 숙소는 혼자 묵어도 안전한 곳들(주로 아기자기한 게스트하우스)이 기준이다. <여자 여행 백서>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국밥, 김밥, 국수 등 평범한 음식일지라도 고수들이 숨어 있는 곳은 전통 재래시장"이란다. 재래시장이 흥미로운 여행지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곳에 맛의 고수들이 숨어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다.

 

<여자 여행 백서>는 느긋하다.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더 봐야 한다는 여행자의 욕심을 덜어내고 여행지의 분위기를 부드럽고 느긋하게 즐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 부담을 가져온 '여자'에게 참 편하고 다정한, 그러면서도 활기 넘치는 그런 친구다. 훌쩍 떠나보자고 손 내밀며,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을 옮겨 적어본다. 마주할 '새로움과 낯설음'에 마음을 울렁였으니.

 

 

언제나 그랬지만 가슴이 설레었다. 어디든 떠난다는 것은 새로움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하나의 자신이 마치 번데기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폐쇄된 자기 자신으로부터 문을 열고 나서는, 그것은 신선한 해방감이다.

그러나 새로움이란 낯설음이며 여행은 빈 들판에 홀로 남은 겨울새같이 외로운 것,

어쩌면 새로움은 또 하나의 자기 폐쇄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른다. 마주치는 사물과

자신은 전혀 무관한 타인으로서 철저한 또 하나의 소외는 아닐는지.

 

- 박경리 <토지> 중에서 (여자 여행 백서,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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