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
박영택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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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작품'으로서의 그것은 선택받은 1%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그림 가격도 가격이지만,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미술관 나들이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요원한 일이기도 하고, 또 그림을 즐기는 사람조차도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눈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터처블'(Intouchable)이라는 영화가 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상위 1%에 속한 사람과 하위 1%에 속한 사람이 만나 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영화는 이들의 '너무도 다른' 생활방식을 몇 가지 상징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그림'이다. 상위 1%에 속한 필립은 그림 애호가이다. 이 영화의 명대사로 꼽을 만한 그의 한마디. "사람들이 왜 예술에 관심을 갖는지 아나? 인간보다 앞선 유일한 거니까." 그러나 하위 1%에 속한 드리스는 "흰 도화지 위에 피를 토한 듯한" 그림을 몇 시간째 감상하며 멋진 작품이라 말하는 필립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것을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사들이려는 필립을 '진심으로' 말리기까지 한다.

 

누구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는 그림이 누구에게는 그저 흰 도화지 위에 코피를 쏟아놓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미술의 어려움이다. '언터처블'을 다시 보면, 드리스는 '이상한 그림'이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필립은 이것을 그의 친척에게 팔아주는데, 그림 애호가인 필립이 소장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어처구니 없는 작품이 비싼 가격에 팔린다. 필립의 안목만을 믿고 드리스의 작품을 비싼 가격에 구매한 아둔한 그 친척처럼, 고백하건데 나도 그림을 볼 줄 모른다. 특히 '현대미술'은 난해함 그 자체이다. 누군가는 감탄을 하는데, 도무지 그 감탄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작품이 여기 <테마로 읽는 한국 현대미술>에도 등장한다.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그림에 관한 책을 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림에 눈을 뜨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 하나. 그저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왜 그것이 '작품'일수밖에 없는지 설명을 들으면 마치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낸 듯한 쾌감을 느낀다.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은 상대적으로 서양의 유명한 작품보다 오히려 더 접할 기회가 드문 '한국의 미술'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과, 어쩐지 더욱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을 다뤘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러나 나의 무식함을 탓해야 할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읽어내기 어려운 책이다. 

 

첫눈에 풍덩 빠져든 작품이 있다.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은 총 7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한국의 현대미술을 보여준데, 그중에서 '시간'의 테마 안에 있는 윤정선(0704 11ㅣ41, 2010,)의 작품, 그리고 '전통'이라는 테마 안에 수록된 이왈종(제주생활의 중도)의 작품이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작품 해설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을 읽고 그 작품에 대해 눈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궁 속에 빨려드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난해한 문장이다. 신경을 얼마나 곤두세워 읽었는지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이왈종의 작품 해설을 잠시 옮겨본다. "자신의 몸과 자연의 생명체도 구분 없이 얽혀 있으며 매크로한 세계와 마이크로한 세계가 매순간 통합된다. 이처럼 그는 매일 비근한 일상을 살아내면서 그 안에서 작업을 한다. 작업과 일상은 맞물려 선회한다. '진리는 고고한 완성의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성의 불완전성 속에 내재하는 것'이란 사실을 일러주는 듯도 하다. 그것이 결국 삶이고 작업이기도 하다. 아울러 끊임없이 창조를 계속해서 자기 창진의 주체로서 살아 움직이는 본원적인 자신과 우주의 창진적 진화를 하나로 엮어나가는 것이다"(101). 아-.

 

학문으로서의 책 읽기를 쉰지 오래고, 어려운 문장을 읽어내는 훈련이 부족한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작품 해설이 오히려 암호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꼭 이렇게 어려운 말로 써야 했을까 저자를 잠시 원망도 해보았다. 그러나 나의 부족한 독해력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일. 내용은 내가 정복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이었지만, "지나치게 서양 미술의 새로운 사조에 민감하게 부산을 떨기보다는 차분하게 이곳 현실과 미술계 속에서 미술에 대해, 작가란 존재에 대해 차분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는 작가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미술계에 어떤 예술가가 존재하며, 어떤 테마들이 다루어지며, 어떤 작품들이 우리에게 있는지 살펴보았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하나의 예술작품이란 사유를 촉발시키는 매개물이다. 인간의 삶에서 유래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사유하고, 이를 작가의 해석을 관통한 형상물로 빚어내는 일이 미술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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