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 - 인상파 화가들의진솔한 한 기록
수 로우 지음, 신윤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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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수근이 새로운 화법을 시도했을 때, 당시의 주류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박수근의 그림은 최고의 경매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금은 천재화가라고 일컬어지는 화가 김점선의 그림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근본 없는 그림이라는 혹평도 받았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와 주류의 저항이라는 도식은 그렇게 돌고 돈다. 어떤 분야든 기득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새로운 시도는 주류에게 반항으로 받아들여기 마련이니까.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만큼 잘 알려지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화풍이 있을까. 동시에 인상주의만큼 주류의 저항과 조롱과 비난이 거셌던 화풍이 또 있을까 싶다. '인상주의'는 당시 주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했던 화가들을 가리키는 집단적인 명칭이며 동시에 그들을 경멸하려는 의도로 붙어진 이름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코메디 같은 일이지만, 당시의 인상주의는 모진 저항과 조롱과 혹평을 이겨낸 은근과 끈기의 그룹이다. "그 기간 내내 이들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이들의 작품은 살롱의 편견 가득하고 속물적이며 퇴행적인 삼시위원들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상주의 화가들은 거의 가족을 부양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8).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은 인상주의의 이러한 은근과 끈기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예술가들보다 더 '극적'이었던 화가들의 삶과 역사, 그 뒷 이야기! "이 책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처음 만난 때로부터 뒤랑 뤼엘이 뉴욕에 작품을 소개한 절정기에 이르기까지의 26년 동안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 화가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가, 그들의 삶과 사랑, 성격, 작품의 주제가 어떠했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발전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9). 제목에 등장하는 모네와 마네는 물론 피사로,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고흐 등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삶과 (그 대가들의) 교류를 읽어볼 수 있다.

"저 흉측한 바보들 좀 봐! 대체 어디서 저런 모델들을 구해온 거지?",
"도대체 왜 저 화가들은 세탁부나 오페라 극장의 무용 연습생, 또는 경작해놓은 밭을 쳐다보는 데 비싼 돈을 쓰게 만들었는가?"
당시 "살롱에서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도덕적인 교훈을 고취시키는 역사적, 신화적, 또는 종교적 주제의 작품과 프랑스의 영광을 찬양하는 작품들"이었다. 또 아카데미의 가치관은 회화 기법을 결정하기도 했는데, "작품은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해야 했고, 적절한 '완성도'를 갖추어야 하며 형식적으로도 틀이 잡혀 있어야 했다. 또한 적절한 원근법과 익숙한 모든 예술적 관습을 준수해야 했다." 이러한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한 마네의 그림은 '쓸데 없는 손장이나 치는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세탁부, 오페라 극장의 무용 연습생, 경작해놓은 밭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회를 본 관객들은 환불을 요구했다. "관람객들은 르누아르의 작품을 비웃었다면 드가와 세잔의 작품을 보고는 실제로 화를 냈다. 작품의 이상한 구도와 기괴한 원근감이 매우 터무니없어 보였기 때문이다"(172).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고전주의의 귄위와 감상적인 낭만주의에 대한 '반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고상한' 미술계와 (중산층의) 사회를 뒤흔들었다.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을 읽다보니, 인상주의 화가들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혹평과 조롱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마네'와 '모네'가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서로를 알아주는,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었기에 비난을 견디며 저항의 물살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화가들을 난처하게 했다. 이 용어는 이들 화가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거신데다, 이들을 경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조잡한, 체제에 타협하지 않는 반동분자들로 간주하는 대중들의 견해에 일조하는 셈이었던 만큼 화가들의 처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잔은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178).
'잘난' 사람들은 모욕하려는 의도로 그들을 '인상주의'라고 불렀지만, '인상주의'는 인류의 미술사에서 최고로 명예로운 이름이 되었다. 관람객들(대중들)은 인상주의를 비웃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 관람객들을 비웃고 있다. 살롱과 아카테미의 전문가들은 인상주의에게 화를 냈지만, 그들이야 말로 인류 최고의 '얼간이'로 남게 되었다. 꿈이 있고, 뜻이 있고, 믿음이 있다면, (당장) 세상의 인정쯤 못 받는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말자! 어떤 모욕과 조롱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이겨낼 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아닐까. 

격분에 찬 르누아르의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우리가 이 멍청한 글쟁이들과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사람들은 그림이 기술이라는 것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텐데 말이야. 그림은 도구로 그리는 것이지 관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고! 그런 관념은 작품이 완성된 뒤에야 생겨나는 것이지"(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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