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 - 대중과 소통하는 '캠퍼스의 글쟁이들'을 만나다
박종현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 사회의 현실에 의문을 품게 해주는 대표 지성인들을 만나다!

 
"지식인의 임무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에 있지 않고 현실을 바꾸는 것에 있다"고 했던 칼 마르크스의 말이 생각난다. 어느 시대나 지식인의 정체와 역할은 사회를 지탱하는 보루, 희망의 등불이라 이름 붙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식인의 현실 참여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에게 부여된 사회적인 책임은 지식인이 짊어지고 가야 할 태생적인 '운명'이리라.

그런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지식인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오래 전, '아줌마'라는 드라마에서 속물적인 지식인을 희화한 '장진구'라는 인물이 등장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를 찾아가 지식인으로 사회에서 "뜨는" 방법을 넌지시 묻는다. 친구는 쎈 사람을 하나 골라 매체를 통해 사정없이 "까"라고 일러준다. 그러면 시대의 논객으로, 인기 지식인으로 대중과 매체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교육이 신분상승의 훌륭한 도구가 되어 오면서 학식이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는 풍토에서는 지성조차도 상품화되고 소비된다. 그래서 소위 "뜬" 또는 "뜨는" 지성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그들에게서 지성인의 사회적 책임과 학자적 양심을 그리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인터넷을 필두로 한 대중 매체의 발달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적인 면에서 볼 때, 양날의 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지식인의 보다 더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가능해졌지만, 걸러지지 않는 소음과 잡음에 꼭 필요한 '바른 소리'가 묻히는 경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귀 기울이고 싶은, 귀 기울여야 할 지성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는 데에 의의를 찾고 싶다. 여기 등장하는 학자 60인은 이미 우리 시대 최고의 필자로 대우받는, 이른 바 "뜬" 사람들이다. 책은 이들을 "대한민국 독자 99%가 찾는 1%의 학자들"이라고 표현한다.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세계일보'에 연재된 시리즈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취지를 이렇게 밝힌다. "학문 영역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고, 이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고 있는 학자 60명을 만났다. 대표적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들의 삶과 학문, 집필세계를 탐문했다"(10). 이러한 탐문의 과정은 시대의 담론을 생산하는 학자들이 독자들과 만나는 과정과 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의 바람대로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학자 60인의 각기 다른 분야의 연구성과를 한 호흡으로 살펴보면서 오늘의 학문적 담론과 이 시대 학문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지도가 되어준다.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을 통해 어떤 담론들이 소통되고 있는지 그 핵심 사상과 거론되는 지성인들의 이름이라도  알아두자 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고, 유익했다. "학자는 외부의 주문이 아니라, 자신이 내세운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존재"(32)라고 말하는 푸른 눈의 진보 논객 '박노자 글방'을 즐겨찾기에 등록하기도 했고, "학자로서 진실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을 뿐"(36)이라며 민족주의 사회학자가 아닌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로 생각해달라는 신용하 교수님의 말씀에 '학자의 양심'이란 얼마나 고결한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도 했다. "역사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과서부터 바로잡아야"(114) 한다는 이덕일 선생님의 역사전쟁을 응원하며,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지식이나 용기도 아니고 '착함'이라고"(278) 삶으로 가르쳐주셨던 그리운 고 장영희 교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마음에 새겨보기도 했다. "인문학이 가치를 다루고 과학이 사실을 다룬다는 이분법을 고수한 상태에서는 둘 다 절름발이일 수밖에"(372) 없다고 역설하는 홍성욱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기 전공의 높은 벽을 뚫고 나와야 하는 지식인의 과제를 새삼 인식하기도 했다.

소비, 사회 문화, 역사, 건축,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을 한 자리에서 만나며, 그들이 제시하는 '깊이 있는 문제의식'과 건전한 '비판의식'을 읽으며, 지성인들이란 "우리 사회의 현실에 의문을 품게 해주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어렵지 않게 읽으면서, 자각 있는 문제의식을 갖고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아젠다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익과 즐거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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