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와 존 이야기 - 상처받은 영혼과 어리바리한 영혼이 만났을 때
로버트 윌리엄스 지음, 김현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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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실의 고통은 무엇으로 치유되는가?

 
나는 위로하는 일에 서툴다.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하면 그저 눈물만 난다. 이런 걸 천성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장례식장에도 잘 가지 못한다. 평소 잘 울지 않는 성격 때문에 '악바리'라는 소리도 곧잘 듣는 나지만, 장례식장에만 가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혹여 내 눈물이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그렇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진심을 담는다 해도 도대체 위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화장한 날 오후에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51)

<루크와 존 이야기>는 루크와 아버지가 '산 꼭대기 집'으로 이사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의 예전 삶은 예전에 살았던 곳에서 끝났고,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예전 삶은 루크의 엄마가 돌아가시는 순간 끝났다. 루크의 엄마가 타고 있던 빨간 색 차가 커다란 화물트럭과 충돌하는 순간, 루크의 엄마는 "순식간에" 돌아가셨다.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말이다.

루크는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날, 뭘 해야 할지 몰라 항상 하던 대로 학교에 갔다. 엄마를 화장한 날 오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데리러 올게"라고 했던 엄마가 오지 않아 "차가 꽉 막힌 길을 걸어와서 집에 홀로 앉아 있는 아빠를 본 뒤로" 루크는 "항상 벼랑 끝에 매달려 떨어지기 직전인 것 같은 기분 속에" 산다(26).

"한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고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은, 죽음은 곧 사라짐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추고 일상에도 영혼에도 커다란 빈 공간만 남는다.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동 마술은 없을 것이다"(105).

갑자기 사라져버린 가족의 빈자리. 그 상실의 고통은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나와 가까운 후배는 아침에 엄마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기고 출근을 했는데, 퇴근 시간 즈음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완벽한 순간이동 마술"로 엄마는 사라지고, "빈자리"만 남은 것이다. 사연을 알지 못하고 "엄마는?"이라고 물었다가, 후배보다 더 당황하는 나를 후배가 다독여주어야 했다. 후배에게는 당황하는 내가 더 불편했을 텐데, 나는 계속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가 돌아심으로 예전의 삶이 끝난 루크와 아버지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듀어데일'이라는 작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산 꼭대기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불쑥' 그 녀석이 나타났다!

'존'은 엄청나게 이상한 아이였다. 기괴한 옷차림으로 나타나 '제멋대로' 위로를 해 루크를 화나게 하고, 매일 아침 찾아와 쉴새 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집을 드나드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생활에 좀 더 리듬이 생기고, 더욱 다양한 관계가 생기고, 예전에는 없던 활기도 생긴다"(75).

'책 속에서 만난 인물 중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가 있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제 존과 루크와 그의 아버지와 그의 엄마라고 대답하려 한다. 조울증 증세가 있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루크의 엄마,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내를 잃고 다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루크의 아버지, 그러한 루크의 아버지와 루크에게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이상한' 존, 이 모든 과정을 차분하게, 그러나 따뜻함을 잃지 않으며 이겨내려 '노력'하는 루크, 이들 모두와 나도 친구가 되고 싶다.

어쩌면 루크와 루크의 아버지보다 더 상처투성이였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이 천진한 '존'은 루크와 루크의 아버지의 삶에 불쑥 끼어들어 그들을 무장해제시킨다. 존이 주변에 머물게 되자 루크와 아빠는 여러모로 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69). 보이지 않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빈자리를 채우는 가족이 되어간다. 상실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기억의 조각들마저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된다. 그러나 이제 루크와 아빠는 가끔 엄마 이야기도 한다. 

"엄마는 내게 항상 두려움을 직시하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쁜 일들이란 나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나쁜 일이라고 말했다"(67).
 

<루크와 존 이야기>는 일기를 써나가듯 제목이 있는 에피소드들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다. 신예작가 답지 않게 모든 장면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준다. 소리내어 울지 않는 루크 때문에, 삶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담담한 존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루크의 아버지 때문에 더 가슴이 더 아팠지만, 이들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은 참 따뜻했다. '성장소설'은 성장을 목적으로 하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다. 서로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 우리가 오늘도 고통을 견디며 또 하루를 살 수 있는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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