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 - 휴먼 스페이스의 기하학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후루야마 마사오 지음, 김미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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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의 건축물만큼 매력적인 사람, 안도 다다오!

 
'잘 지어진' 건축물은 소중한 문화재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최근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트라이-볼(Tri-bowl)이 각종 건축상을 휩쓸면서 인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사발 세 개를 세워놓은 듯한 이 독특한 건축물을 나도 직접 가서 보았다.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조형을 위한 예술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독특하고 멋진 건물이었다. 가수 비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찾을 때도 외국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건축 산업도 활발하고 세계가 알아주는 두뇌를 가진 우리이지만, 이렇다 할 건축물이 별로 없는 것이 몹시 아쉬운 부분이다. 건축은 활발하지만 '독립된 개성이 없는 건물들'만 즐비한 거리는 지루하기만 하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요즘 유행하는 건물의 패턴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새로 지어지는 빌딩을 보면, 비슷한 재료, 비슷한 양식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 같은지 '요즘은 저런 건물이 유행이구나' 하는 것이 한 눈에 보이니 어지간히 개성이 없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성숙한 사고 방식은 아니지만)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일본은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될까?" 하는 점이다. 안도 다다오는 세계가 인정하는 일본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를 알게 된 것은 '빛의 교회'라는 건축물 때문이었다. 정면 벽에 십자가 모양의 슬릿이 뚫려 있고, 그 틈새를 통해 빛이 들어와 십자가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사진은, 정말이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후에 사진 속 작품이 '빛의 교회'라는 건축물인 것을 알았다. 처음엔 "마치 핀홀 카메라 안에 있는 것처럼 어두움 속에서 떠오르는 눈부신 십자가"(37)를 보고, 환상적인 빛의 마술을 절묘하게 포착해낸 사진 작가의 솜씨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십자가 모양의) 빛이 건축가가 의도한 장치라는 것을 알고, 이름도 모르는 건축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하는 시리즈(Basic Art Series)를 통해 <안도 다다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감사하다. "건축이라는 것은 추상적 공간 구조 안에 자연과 역사, 전통과 사회 등 현실 세계에서 명확하고 투명한 논리로 구성된 구체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 작업이다"(표지 앞 날개 中에서)라고 정의하는 안도 다다오는 일명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유명하다. 나무, 돌, 콘크리트처럼 실체가 있는 소재를 좋아하는데, 특히 빛과 콘크리트의 조화가 경이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라고 부른다. 인간미가 거세된 도시의 냉혹함을 상징하는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콘크리트'와 '벽'이라는 소재가 안도 다다오를 통과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콘크리트라는 차갑고 다소 조악해 보이는 재료가 사람들에게 경의로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고 어울림을 지향하는 안도 다다오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 "건축이 '폐쇄된 상자'라는 기본 속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어려운 이상, 하늘은 건축의 내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연 요소이다"(13).

'노출 콘크리트 기법' 외에 안도 건축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먼저, 안도의 건축에는 투명한 기하학이 자리잡고 있다. 안도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제한된 재료를 써서 그 특유의 질감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이다(12). 단순한 기하학적인 구조 안으로 자연을 인도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안도의 건축은 '벽의 건축'이다. 보통 단절을 상징하는 '독립된 벽'이 그에게는 "부드럽게 비호하는 벽,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벽"이 된다. 또 안도의 건축에서는 자연, 특히 하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늘에 형태를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안도 건축의 매력이다."

후루야마 마사오가 쓰고(아쉽게도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없다), 마로니에북스가 출간한 <안도 다다오>는 안도 건축의 특징뿐만 아니라, 안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17살 때 프로복서로 데뷔했다는 이 사람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강인함이 느껴지는 건축가이다. 고독해보이지만 고립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고집스러워보이지만 부드러운 강인함을 가진 남자로 보인다. 안도는 현대건축계에서는 특이한 이력의 건축가이다. 학교나 선생이 아니라 경험으로 건축을 배웠다는 그는 인생의 스승은 있지만 건축계에는 스승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고집과 경험이 '안도'만의 세계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천편일률적인 과정과 단계를 거치며 살고 있는 나의 편협한 인생 설계가 그를 통해 좀 더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그를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내 인생도 이보다 더 확장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은 혼자서도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그는 스스로를 '투쟁하는 건축가'(19)로 규정했다고 한다. "그는 20대에 건축을 할 것인가, 혁명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결국 건축을 선택했다"(20). '주거를 바꾸는 것은 도시를 바꾸는 것이며,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다'라고 확신한 그는 건축을 통해 사회를 바꿔가고자 했단다. 그의 그러한 결의는 특별히 지극히 작은 서민 주택이나 집합 주택이 들어서기에 매운 까다로운 지형 조건이었던 곳에 그가 지어놓은 건축물들에 잘 드러난다. 단순해서 강력하면서도 부드러운 안도의 건축은 형태는 단순하지만 공간은 복잡하다. 여백에도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안도는 좁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자연이 건축의 부분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핸디캡을 오히려 예술적 요소로 승화시킨다.

안도의 건축물을 보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긴다. 그의 건축물은 확실히 나의 취향이다. 안도의 건축물을 모아놓고 보면, 안도만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같은 소재, 같은 기법, 같은 구상이 잘못 하면 오히려 식상해질 수도 있을 터인데, 주변 환경(자연)과의 조화라는 지극히 단순한 원리 하나가 그의 모든 작품을 '독립된 개성'을 지닌 예술품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는 머리로만 지은 건축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식의 조작이나 형태에만 관심을 두는 건축을 경멸한다. 안도에게 있어 진정한 건축은 형이상학적인 미학을 표현한 공간이 아니라, 체화된 지혜가 구현된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안도는 아름다운 건축이나 기술적으로 훌륭한 건축을 추구하지 않는다. 번민과 고통, 공포심을 극복하고 이룬 떳떳한 건축만을 평가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인생을 건 표현만이 숭고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인생은 투쟁의 연속이고, 투쟁만이 감동을 일으킨다'는 안도의 굳은 신념이 깃들어 있다"(7).

그의 건축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가 매력적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든, 요리이든, 건축물이든 결국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 바로 그 자신(마음)에 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철학을 가진 건축가가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 그러면 우리 삶이 훨씬 더 풍요로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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