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아트북 - 동굴 벽화에서 팝아트까지
데이비드 G. 윌킨스 외 지음, 한성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의 땀과 천재성의 산물인 미술 작품은 예측 불가능할 만큼 무한한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다"(10).


미술 작품을 관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술 작품 감상법을 '속성'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게 왜 작품인지 모르겠을 때, 매우 난감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감상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최근 모 의원이 보온병을 들고 북한이 공격한 폭탄이라고 한 것처럼 미술 작품을 감상할 안목이 없다면 나도 같은 실수를 저지를지 또 누가 알겠는가. 미술 작품은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고려청자가 요강이 되기도 하고, 요강이 고려청자로 둔갑하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미술 작품 감상법을 '속성'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비단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은 인류와 태생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역사가 오래이고, 또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공예, 서예까지 그 분야도 다양해서 작정하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섭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러니 섭렵하고자 하는 욕심은 아예 처음부터 꿈꾸지 않고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초보적인 수준이라 해도 작품을 작품으로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만족할 수 있을 듯 하다.

마로니에북스의 <빅 아트북>은 다양한 미술 작품을 씨줄과 날줄로 감상할 수 있도록 꾸맨 책이다. '연대별 미술'과 '주제별 미술'로 나누어진 두 파트가 미술사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미술이 걸어온 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른 말로 하면, 미술사의 울창하고 거대한 숲길을 걷는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연대별 미술은 역사적 발전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예술 작품들이 특정 시기의 사회, 종교, 문화 발전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별 미술로 분류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특정시점에서 미술이 겪은 변화와 원인을 알려주는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전환점'은 미술운동의 결정적인 순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으로, 주제별 미술은 초상화, 가정생활, 여가, 정물화, 몸, 풍경, 시골생활, 도시, 도시생활, 동물, 종교, 신화, 알레고리, 환상, 죽음, 문학, 역사, 정치, 전쟁, 사회 저항, 추상이라는 우리 삶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활동한 화가들이 개개의 주제를 어떻게 해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작품이 제기하는 쟁점뿐 아니라, 미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몸과 자연에 대한 관심은 대다수 문화권의 미술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라는 점, 이미 여러 사회의 구성원들이 미술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이나 종교적 이상을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점 등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인류는 미술이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 전쟁과 죽음에 대한 반응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임을 깨달았다"(8).

미술 작품을 다룬 다른 책들과 달리 특별히 <빅 아트북>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서예 미술'에 관한 설명이었다. 서예 미술은 '예술/대중문화' 장르 서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설명이라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서예를 미술의 한 분야로 인식하지 못했던 내게는 신선한 설명이었다. '서예가들이 예술 기법을 이용해 신의 말씀을 전달하다'라는 소제목을 가진 설명 중 몇 가지를 옮겨 적어보면 이렇다. "서예 미술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대접받아왔다. 글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능력은 곧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소수의 지식인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적을 줄 안다는 것은 상당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책은 아주 귀했으며, 특히 주요 종교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신의 말씀을 담은 몇 안 되는 책들을 신성한 물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또한 "서예 미술의 목적은 서체를 가능한 한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말씀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성스러운 책들은 단순히 읽기 위한 목적보다는 경외감을 자아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76),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문화, 시대상, 작가, 심지어 해부학을 포함한 과학, 수학에까지 정통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하나의 미술 문학 작품 안에는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문화, 시대상, 작가, 심지어 과학과 수학의 요소까지 들어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빅 아트북>은 미술사라는 울창한 숲을 관통하며 이 모든 요소들이 어떻게 미술 작품 안에 녹아져 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미술사의 큰 물줄기와, 같은 주제가 시기와 화가별로 어떻게 차별되게 해석되어 왔는지 대략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두고 싶은 독자에게 적극 추천한다.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사를 속성으로 훑어보기에 알맞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