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포 1
라파엘 아발로스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만일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더 빨리 깨닫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내 삶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1,2권으로 구성된 <그림포>는 악당을 물리쳐 지구를 구하거나, 악당의 손에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흔한 레파토리와 달리, 주인공이 악당의 손에서 구해내려 하는 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그림포>는 변호사이자 법학 교수로 활동했던 스페인 작가 '라파엘 아발로스'의 판타지 모험 소설입니다. 성장 소설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있겠는데, 이 책의 띠지는 "역사 어트벤처"라고 이름 붙여놓았네요. 저는 이런 소설을 한마디로 '착한 소설'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지만 재미있게 잘 읽히면서, 감동적인 교훈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착한' 책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좀 더 세분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림포>는 감동적인 교훈보다는 재밌게 잘 읽히는 소설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열대야의 더운 열기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을 좋아하는 탐구심 가득한 사람만이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2권, 216).

<그림포>의 배경은 "14세기가 밝아 올 무렵"입니다. 작가가 밝히듯이 "암흑시대에서 벗어나 계몽주의의 빛 속으로 한 걸음씩 다다가기 시작"(1권, 13)한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1313년 음산한 겨울, 프랑스의 한 산악지대에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덜립 아저씨와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림포는 어느 날, 짙은 안개 사이로 눈 속에 파묻힌 시체를 발견합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죽은 남자의 오른손이 마치 죽은 후에도 내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감추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히 주먹을 쥐고 있었던 것"(1권, 21)입니다. 그것은 아몬드 크기의 반짝반짝 빛나는 둥근 돌이었는데, 덜립 아저씨는 그것을 그림포에게 주며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부터 그 돌이 네 운명을 결정짓게 될 거다"(1권, 22). 마치 예언처럼 말이죠. 덜립 아저씨의 예언대로(!) 그 돌은 그림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습니다. 그림포는 운명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림포>는 수수께끼로 가득차 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쏟아지고, '암호'가 등장하고, '수수께끼'를 풀어야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장치들이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암호를 풀어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아낼 때마다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서서히 전체 그림이 완성되어갑니다. 

그림포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돌(철학자의 돌)의 정체는 무엇일까?
유령처럼 눈 속으로 사라져 버린 죽은 기사는 과연 누구일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여,

죽은 기사의 봉인된 서신에 적힌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서신의 수신자인 '아이도르 빌비쿰'이 누구인지,
그리고 교황과 프랑스의 왕이 그토록 탐내는 현자의 비밀이 이 철학자의 돌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그림포는 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가야 합니다.


"진정한 연금술사는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이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법이니까. 그렇게 때문에 연금술사는 언제나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안에 살고 있는 훌륭하고 지혜로운 존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1권, 145).

'우연히' 그림포의 손에 들어오게 된 돌은 그림포의 손에 있을 때에만 기이한 빛을 내뿜습니다. 그리고 "돌은 기적에 가까운 신비로운 힘으로 평범한 소년을 한순간 현자"로 만들어놓습니다(284). 돌을 가진 그림포는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무엇이든 한 번만 읽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교황과 프랑스의 왕 역시 철학자의 돌과 현자의 비밀을 찾으려고 안달이 나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두 사람"이 같은 목표를 위해 손을 맞잡고, 어떻게든 돌을 손에 넣기 위해 공격해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철학자의 돌을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돌을 이용해 모든 연금술사들이 갈망하는 황금을 만들고, 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탐욕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돌'이 진짜 주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황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지혜'입니다.

철학자의 돌을 가지게 된 뒤, 브링크덤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 그림포는 현명한 청년으로 성장해갑니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배우고 발견해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브링크덤 대수도원에서 자연과 우주에 대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얻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점 또한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지식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림포>는 지혜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능력이요, 가장 위대한 활동이라는 거창한 교훈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공부를 하고 무엇인가를 배워가는 행위야말로 얼마나 값지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지 생각하게 해줍니다. 또 하나, 지혜 자체로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인류를 구원할 축복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자의 비밀'을 찾아가는 <그림포>는 그 비밀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애너그램, 별자리, 비유와 상징 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다만, 그 과정을 이끌어가는 스토리 라인이 생각보다 단순하여 '댄 브라운'의 것에 비하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해리 포터>에 비하면 캐릭터와 모험이 조금 단조로우며, 문학적 완성도가 높았던 <반지의 제왕>에 비하면 대서사적인 감동이 부족한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그러나 재미있고 착한 소설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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