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5
김영주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어느 새, 올 여름 휴가철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번잡한 여행이 싫어서 일부러 늦은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여행지'이다. 늘 떠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막상 기회가 주어질 때면 긴장이 된다. 후회없는 여행지를 선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리산>을 펼쳐 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번 여름 휴가지로 지리산은 어떨까?

살을 에는 추위 끝에
살짝 꽃잎을 피운 개나리처럼,
마치 오래 전에 정해진 약속처럼,
지리산은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표지 中에서)


지리산은 그렇게 나에게도 찾아왔다. 며칠 동안 지리산을 마음에 품고 다녔다. 사실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다섯 번째 시리즈인 <지리산>은 '지리산' 자체보다 글쓴이의 글맛이 더 진하게 풍기는 책이다. 그 글맛이 색다르다. 지리산에 관한 여행 정보를 재빠르게 캐낼 요량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가, 내처 눌러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열대야의 더운 열기도 잊게 할 만한 청량함이, 부드럽게 마음을 간지르는 서정성이 나를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지리산 자락이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익숙해지고, 마치 예전부터 사랑했던 그 무엇처럼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모두 그녀의 필력 덕분이리라.

이야기의 절반 가까이를 읽어갈 때까지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 책은 총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이라 이름 붙이고 싶고 지리산 여행, 2부는 지리산 종주 경험, 3부는 여행의 끝자락 같은 여운이 느껴지는 지라산 동쪽편 여행을 이야기한다. 스스로는 이름 붙이고 있지 않지만, 각 부를 시작하는 첫 페이지의 지도를 보면 지리(코스)에 따른 구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 알고 떠나자'를 덧붙여 지리산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알뜰하게 수록해놓았다.

지리산이라고 하면 '노고단'과 '빨치산' 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내게 <지리산>은 어느 새 '살고 싶은 곳'으로 다가온다. 품고 있는 역사, 품고 있는 멋, 품고 있는 이야기가 하도 많아 하루 이틀 여행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단단이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할 대 탐험지로 다가온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신비의 산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정겨움이 있다. 16년 간 잡지사의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도시 생활을 접고 지리산의 한 자락에 삶의 터전을 다시 놓았다는 '지리산 학교'의 교장 이창수 선생님의 표현처럼, 내가 아니라 지리산이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편하게 시작하세요.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이곳 사람들이 다가올 거예요. 지리산이 그렇잖아요. 설악산처럼 멋있다, 빼어나다라는 생각은 잘 안 들지만, 그건 아마 모나거나 날카롭지 않다는 의미와 같을 거예요. 능선 때문인가. 오히려 푸근하고 따뜻하죠. 그래서 지리산을 두고 할머니,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나 봐요. 또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고"(41).

처음엔 이야기에 빠져들며 섣부른 마음이 '무조건 종주'를 외쳐댔으나, 그렇게 시작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세수는 커녕 환경 보호 때문에 소금이 아니면 양치질도 해서는 안 되는 지리산 종주, 글쓴이와 함께 떠난 지리산 원정대가 첫날 대피소에서 나눈 대화가 마음에 남는다(259-260).

"혹시 다음에 지리산 종주 또 하실 거예요?"
"아니."
"저도요."

일단은 지은이가 이미 걸어간 길을 따라, 한국의 아름다운 길 백 개 중 하나라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5.5킬로미터 벚나무 길'과 섬진강부터 걸어보고 싶다. 수달은 수중 생태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면 그들의 몸도 똑같이 오염된다고 한다. 그러니 수달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것은 곧 물이 깨끗하다는 의미라고(118). 그 까칠하고 청결한 수달이 섬진강을 최고로 쳐준다니, 아직도 우리에게 이런 땅이 남아 있나 싶을 만큼 생경하다.

저자가 만난 지리산의 민낯은 이랬다. "표표한 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곧추서 있고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들이 세월의 무게를 겸손하게 드러낸다. 사계절의 변화가 수도 없이 오고 가고, 바람과 눈과 이슬과 태양이 숱하게 들락거리고, 야생의 동물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곳. 이 나라에 변화가 닥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품에 안아 주었던 곳.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무거운 삶의 무게를 덜어 보려 찾아온 이들에게 아낌없이 용기를 주었던 곳. 지리산인 게다"(284). 내가 직접 마주하게 될 지리산은 어떤 곳일까. 나는 무엇을 "지리산인 게다"라고 말하게 될까. 지리산에 가고 싶다. 서둘러, 천천히. 이 책에서 만난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옮겨 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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