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 사이 - 최창수 소설집
최창수 지음 / 작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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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금이 있습니다. 
그 금을 지우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라며 책상 위에 금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 경계선은 우리를 긴장시켰다. 우리는 서로 자신의 영역 안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보초를 섰고, 잘못하여 짝의 책상을 넘어갔다 들키면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금을 그어놓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싶어 했을까.

그런데 이러한 긴장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짝꿍’ 사이에만 존재했다. 좋을 때는 한 없이 가까운 사이였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냉큼 금부터 그었다. 그 금은 단절의 선언이었고, 그렇게 단절을 선언하게 되면 우리는 반 안에서 가장 먼 사이가 되었다. 부부가 서로 등을 맞대고 돌아누우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다시 마주볼 수 있다는 누군가의 묘사처럼 말이다.

<그와 그 사이>는 최창수라는 젊은 작가(1981년생)의 총 10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그와 그 사이>라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의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말하는 듯 하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경계선들,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금, 우리는 그것을 ’소외’라고 부른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 사내, ’황’, ’정’, ’한’, 706호, 707호, 그 아니면 그녀이다. 이름이 있어도 불리는 일이 거의 없다. 흔한 일상, 그러나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극히 극단적이다. 불안과 거짓, 자해와 폭력, 살인과 자살. 사실주의의 덤덤한 스케치처럼, 비극적인 광경이 덤덤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내어 더욱 선명하게 덧칠을 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웃이라는 관계로 엮여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 엮임 자체가 또다른 소외와 불안을 양산하는 데에 공존의 비극이 있고, 인생의 비극이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지워지고, 잊혀지고, 폐기되어간다. 친구들과 모여 웃고 떠들면서도 마음이 못견디게 시려올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나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와 그 사이>에는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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