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 조선의 대자유인 허균의 삶
김용관 지음 / 부글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시인들은 죽고 세상은 미쳐가다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한 세상 살다간 한 인물을 만났다.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짧은 한 줄로 역사에 남아 우리가 기억하는 인물이다. 역사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의 업적을 빛내지만, 작가는 잊히고 묻힌 인물의 삶에 빛을 주었다.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는 그와 벗들이 살았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이 지배했던 허균과 그 벗들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허균, 그는 약 400년이 지난 오늘 이처럼 샅샅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머릿속이 하얘진다. 내가 알아왔던 상식이 배반당한 기분이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구나 하는 깨달음만큼이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가지 그에게서 '위대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역사가 기억하는 인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인격의 고매함이나 높은 기상, 추구했던 이상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렇게 지겹도록 탄핵을 당하고 번번이 내쳐지면서도 끝까지 벼슬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훗날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옳다면, 그는 시인으로 태어나 괴물로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역사에서 '천하에 둘 도 없는 괴물'로 불렸다고 전하여지니 말이다.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는 허균과 한 세월 그와 함께했던 벗들을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서자로 태어난 허균의 주변에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천한 신분이라는 태생적 사슬에 매인 서자들이 많았고, 전쟁이나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생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들과 어울렸다. 그래서인지 사연 많은 기생 매창, 술이 취해야 그림을 그렸던 걸인 화가 이정,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명필 한호, 시 한 편 때문에 죽은 권필 등 시대를 잘못 만나 그 재능과 뜻을 다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인생 이야기가 넘친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허균이 사랑했던 친구들이 모두 길 위에서 죽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로 고단한 인생들이다.

허균은 누이 허난설헌의 시집 뒤에 이런 글을 적었다고 한다. "누이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여인으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잘못이고, 무능한 남편을 만난 것이 두 번째 잘못이고, 조선이란 나라에 태어난 것이 마지막 잘못이다"(p. 91). '조선의 괴물'이 되어, 서대문 사거리에서  망나니의 칼에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한 허균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의 감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가 시인으로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야만의 정치와 미친 세상, 그 세월과 시대를 탓해야 하지 않을까.

허균의 삶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탄핵을 받으면서도 어려운 친구를 두고 보지 못해 늘 가까이에 끼고 살았던 허균이 결국 친구의 배신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 세상 그처럼 한 많게 살다간 허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그것은 벗들과 시를 노래했던 그 마음과 그 시간이 아니었을까. 언젠가는 모두 두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날 세상, 그처럼 흐드러지게 벗들에 취하고, 시에 취할 수 있다면 후회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를 말리고 싶었던 내 마음만큼이나, 그도 미친 세상에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던 그 시간을 지워버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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