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세잔씨
류승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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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이 이젤을 세웠던 그림의 현장으로 세잔을 찾아 떠나는 여행


모네의 눈부신 빛에 마음을 뺏긴 뒤로는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무조건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잔의 것은 터치가 다소 거칠다는 것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세잔? 많이 들어본 화가 같은데 정작 아는 것이 없는 화가!

<안녕하세요, 세잔씨>는 화가의 작품보다는 화가 자체에 더 관심이 많은 나 같은 독자가 반길 책이다. 이 책은 세잔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가의 인생 ’이야기’는 미술이나 화법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 책은 화가의 삶을 조명하는 한 편의 다큐처럼 그의 숨결이 살아있고, 그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 그의 생애사를 따라 여행하는 컨셉으로 집필되었다. 세잔이 이젤을 세웠던 현장, 즉 세잔의 그림이 그려진 현장을 답사한다. 세잔의 화폭으로 옮겨진 ’원형’을 보는 일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그림 속 실제 현장 속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마법처럼, 그림이 살아서 움직인다. 2006년이 그의 서거 100주년이었다고 하는데, 작가가 직접 찍어 그의 작품과 비교한 사진을 보면 세잔의 때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풍경이 실로 놀랍고 신기할 정도이다.

세잔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엑상프로방스로 향하는 길에서 시작되는데, 직접 글을 쓰고 사진도 찍은 작가 류승희는 이 여행이 우울했다고 고백한다. 미술시장에서 세잔은 피카소, 반 고흐와 함께 경매가가 가장 높은 화가에 속하지만, 그의 생애는 저주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불운하다는 것. 한마디로 비운의 삶을 살았던 화가이기 때문이란다. 

세잔의 가장 큰 시련은 아버지와의 불화가 아니었나 싶다. 한 모직물상의 직원에서 은행장이 되기까지 어렵게 자수성가한 세잔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강하고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는지 이런 에피소드가 남아 있다고 한다. 한 번은 기차를 놓친 세잔이 3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뛰어서 도착했다. 까다로운 아버지가 가족 식사에 참석하라는 절대적인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때 세잔은 서른아홉 살이었다(작가는 이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는지 두 번이나 언급한다/46,187).

작품을 찢어대고 쉽게 노하던 돌발적인 성격의 세잔의 아버지는 죽어서 유산을 남겨주기 전까지 아들을 지원해주지 않았고, 세잔은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재밌는 것은, 유로화로 바뀌기 전 프랑스 지폐 30프랑에 30대의 세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고 한다. 은행장 아버지를 거역하고 평생 고통을 짊어져야 했던 세잔이 역설적이게도 지폐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세잔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1878년에서 1887년까지로 경제적으로도 가장 어려웠고, 작업에서도 새로운 조형세계를 찾고자 분투하던 시기이고, 쉽게 폭발하는 괴팍한 성격은 더 심해져서 늘 주위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아들 폴은 병이 났고 아내도 앓아누웠다. 세잔은 22년 동안 거의 매해 <살롱>에 출품했고,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거절당했다. 

세잔에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그의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어떻게 그런 성격을 가지고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세잔은 낭만적이면서도 화를 잘 내는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는데, 주변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정말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성격과 정신은 고독으로 서서히 망가져갔는데, 가뜩이나 거친 언행과 쉽게 화를 내고 격해지는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난폭해졌고, 화가 나면 그리다 만 풍경화를 던져버리고 돌아오기 일쑤였고 나이프로 그림을 찢는 일이 허다했다고. 그리고 대단한 일에도, 또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그는 이렇게 외쳤단다. "이 소름끼치는 인생!" 

그런데 솔직히 이 정도로 ’저주 받은 화가’라고 하기에는 좀 과장되지 않나 싶다. 고갱이나 카라바조 같은 화가도 있었는데 말이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아주 참을성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예술에 관해서 만큼은 대단히 참을성이 많았다는 것이다. 세잔은 그 참을성으로 그는 결국 전설이 되었다. 피카소는 그를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했고, 미술사는 그에게 '근대회화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주었으며, 그의 그림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은 1958년에는 258만 프랑에 경매되었다(사실 어느 정도의 액수인지 감이 잘 안 온다).

책을 덮으면서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 을 읽어봐야겠다는 계획으로 호기심이 이어진다. 이 작품이 모네를 비롯한 당대의 모든 화가를 화나게 했다고 하는데, 세잔은 이 <작품>을 읽고 졸라를 용서할 수 없었고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결국 이 일로 세잔은 평생 절친이었던 졸라와 결별했다.

저자는 세잔의 생애 중에 단 한 장면만 선택해야 한다면, 수많은 욕설과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붓질을 했던 세잔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아마도 그 장면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세잔이 이젤을 폈던 장소는 지금도 고독과 자연만이 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소리와 물소리밖에 없다. 자연이 세잔의 유일한 벗이었다"(185). 실패와 야유와 비난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강렬한 햇살 아래 끊임없이 붓질을 하는 그의 거칠고 고독한 붓질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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