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셰익스피어 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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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이란 인물 때문에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작품이다.

20세기 초기에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셰익스피어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 <살 일 파운드> 등과 같은 다분히 감각적인 제목으로

부분적인 편집 및 각색을 거쳐 매우 제한적인 시각에서 알려졌다(5).


'한국외국인대학교 지식출판원'에서 발간한 <베니스의 상인>을 읽으며, 이 책을 꼭 다시 읽어야만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꽤 친숙했던 작품이고,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줄거리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유대인이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의 화신 같은 인물로, 평소 자기와 자기의 일을 경멸하는 도도한 '베니스의 상인'에게 앙갚음할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베니스의 상인이 그에게 돈을 빌리고자 하는 친구의 보증을 서겠다고 하자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베니스의 상인에게 만약 약속한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살 일 파운드'를 떼어내겠다는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그의 책략에 걸려든 베니스의 상인은 불행하게도 그에게 살 일 파운드를 떼어줘야 하는 위기에 몰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한 인물의 활약으로 도리어 악한 꾀를 내었던 샤일록은 기세등등했던 법정에서 오히려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베니스의 상인은 위기에서 벗어나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 제가 기억하고 있는 <베니스의 상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단편적인 이해였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을 통해 <베니스의 상인>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부분적인 편집및 각색을 거쳤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어르신, 지난 수요일에 저한테 침을 뱉고,

어느 날인가는 저에게 발길질을 하고, 또 언젠가는 

저를 개라고 불렀지요. 이런 예우를 받은 대가로 

저는 그런 거금을 빌려드리겠나이다.

(샤일록, 63).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고난 지금,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악의 화신, 주인공을 괴롭히는 못된 사람, 권선징악의 구도에서 벌을 받아 마땅한 인물로 여겼던 '샤일록'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니스의 상인(안토니오)보다 오히려 샤일록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에게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해설'에 보면,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모두 이윤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이 돈밖에 모르는 비정하고 비도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고리대금업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다고 설명합니다(25).



삼천 듀카트를 받지 않고

왜 썩은 살코기 한 점을 가지려고 하는지 궁금하시죠?

(샤일록, 161).


그의 불의는 사회적 편견이 낳은 또다른 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고리대금없자가, 빌려 준 돈의 이십 배를 받는 것보다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양고기나 소고기나 염소고기만도 못한"(66) 살 일 파운드를 떼어내겠다고 무익한 소송을 그토록 고집했던 것은, 그 증오만큼 사회적 편견의 상처가 크고 아팠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상처가 그를 잔인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을 향한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자 탐욕 때문에 스스로 파괴되는 어리석은 조롱감이라는 두 개의 복합적 시선"(25)에서 읽어야 제대로 감상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계약서에 따르면 당신은 피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살 일 파운드"라고만 거기엔 쓰여 있소.

그러니 계약에 따라 살 일 파운드를 떼어 가시오. 

그러나 살을 떼어내느라고 기독교인의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당신의 땅과 재산이 베니스의 법률에 의해서

국가의 소유로 몰수될 것입니다.

(포셔, 179).


그러나 <베니스의 상인>의 가장 큰 묘미는 극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법정에 남장을 하고 나타난 '포셔'라는 인물(여인)의 대활약일 것입니다. 과연 "살 일 파운드"를 떼어내야 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두근두근 지켜보는 독자에게 피를 흘리지도 말고, 계약대로 더도 덜도 말고 "정확하게" 일 파운드의 살만 잘라내야 한다는 판결 선포되는 순간이야말로 '사이다'처럼 속을 뻥 뚫어주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2의 다니엘'이라는 찬사가 그녀에게 너무도 잘 어울려 보입니다.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이 "인종적 편견, 종교적 위선, 초기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고리대금업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5)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가 많지 않을 듯 합니다. 또 하나, 셰익스피어 희극의 묘미는 "말장난의 다의성"에 있으나 번역으로는 이를 다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책은 왜 우리가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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