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가 허세와 과시욕, 자기만족에 빠져 사는 사람이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내가 쿨하다 여긴다. 얼마 전 만난 사람은 내게 '매달리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 일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기서 그냥 넘겼으면 괜찮았을텐데 난 거기다 대고 '저 집착 쩔어요.' 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자기 무덤을 판다, 아주.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헤어진지 1년 반이 되어가는 옛사랑이 있다. 만났던 기간은 3년이 좀 덜된다. 힘들 때였는데 우울하다고 질질 짜다가 차였다. 집착 쩐다고 해서 하루에 백통이 넘는 전화를 해대고 천통이 넘는 문자를 보내고 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질 않아 울지도 못했다. 그저 일하고 돌아와 혼자 술먹고 자고 하는 생활을 며칠 했다. 일하고 돌아와 뭐 거창하게 해먹기 귀찮아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룸메가 와서 괜찮니? 라고 묻는데 그냥 뭐.. 라고 대답하며 눈물이 왈칵 나는 거다. 하지만 라면을 뿔릴 수는 없으니 흑흑 흐느끼며 라면을 결국 다 먹고야 말았다. 룸메는 그런 내 앞 자리를 말 없이 지켜주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얘길 웃으며 할 때가 올 거라고 했었지. 평생 갈 가족처럼 여겼던 그 룸메와는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지만. 

 

그게 벌써 제작년 여름이다. 여름 내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메일을 보내곤 했다. 그냥 하고 싶은 말 같은거. 답장 같은거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 동안 짧은 연애도 간간이 계속해서 했다. 그렇게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난 아직도 그 아이를 잊지 못하고 두세달에 한 번씩 문자를 하고, 두세달에 한 번씩 오는 말없는 발신자 제한 금지 전화가 그 아이이길 바란다. 사실 조금 쪽팔릴 수도 있는 이런 집착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글쎄, 집착하는 나 자신을 별로 싫어하지 않기 때문일까. 물론 그 아이가 간간히 받는 나의 문자는 일상의 불편 혹은 불편을 넘어선 감정적 폭력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글쎄, 미안하긴 하지만 아직 난 널 다 떠나보내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라고 말할 수 밖에. 니가 비난해왔던 것처럼 난 이기적이니까 내 감정이 소진될 때까진 니가 좀 참아줘야겠다.

 

영화 [러브픽션]을 봤다. [미쓰 홍당무]에서 찌질의 극을 보여줬던 공효진은 다시금 쿨녀가 됐다. 아, 저렇게 되고 싶다! 라고 느낀 장면이 한 두번이 아닐 만큼 그녀는 나의 이상형이었다. 로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보는데 [러브픽션]을 보며 나는 귀요미 하정우와 사랑에 빠지기는 커녕 공효진 캐릭터에 몰입하여 나와 비교하고 닮아야 할 점, 부러운 점 등을 분석했다. 일단 연애가 너무 괴롭지만 차마 그냥 헤어질 수 없어 해외로 도피(?)하는 성향은 나와 비슷, 권태기의 남성에게 '사랑 참 쉽게 한다.' 란 대사나 광기어린 눈빛으로 물건을 집어 던지며 상처주는 말을 내뱉는 애인에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넌 서른 한번째야.' 라고 말해줄 수 있는 대담함은 배워야 할점. 아, 멋져. 언젠가 그녀처럼 베를린의 파티에 참석하고, 발코니에서 담배를 멋지게 피기 위해, 끊었던 담배도 본격적으로 다시 피기 시작했다.

 

연애는 아무리 해도 그것들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나는 내 감정 컨트롤도 쉽지 않은 사람인데, 상대방이 연락 좀 자주 해달라, 전화 좀 제때 받아라, 술 좀 그만 먹어라, 주말마다 만나는 게 당연한게 아니냐, 찡찡거리기 시작하면 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맘에도 없는 사과를 하며 비는 것도 한 두번이지, 그렇다고 애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나대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니 매번 연애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렇다고 전화 자주 하고 문자 자주해주면 귀찮아하고 오히려 연락은 지들이 씹는다. 어쩌라고?

 

난 나보다 잘난 남자 만나면 재수없어서 자꾸 꾸질한 남자만 만나니, 이런 남자들이랑 결혼 허락해 줄 거 아니면 나 결혼시킬 생각은 애초에 포기하라고 부모님께 당부해두었다. 괜히 억지로 결혼시켜서 이혼녀 만들지 말라고. 그런데 보면 나보다 개념 없고, 싸가지 없어도 결혼 잘 만 하더라. 내 문제는 뭘까? 아직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일까?

 

죽고 못살 정도로 좋았던 사람도 이내 싫어지고 말아버린다. 10분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 일어난 사건에 포함된 거슬리는 행동, 말 몇마디 때문에. 그 10분 때문에 열 번의 만남, 백일의 시간, 천시간의 함께했던 기억이 깡그리 왜곡된다. 그런데 그 10분이 짧은 시간이 아니더라. [러브픽션]에서 하정우가 공효진에게 독기 어린 말들을 내뱉던 10분은 그가 고민분투했던 몇개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밖엔 안보이니까. 나의 10분에 실망한 사람들도, 내가 실망한 사람들의 10분도, 그 10분이 다가 아니겠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 정도 뿐이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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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2012-03-10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러브픽션보러 가야겠군요!!ㅋㅋㅋㅋ

아. 저도 찌질 쩔어요. 집착도 그렇고 ㅋㅋㅋㅋㅋ저도 저의 그런 모습까지 사랑하나봅니다. 이 습관 안 버리고 다 품고 안고 진행하는 제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을 보니

Forgettable. 2012-03-12 10:07   좋아요 0 | URL
저랑 동시에 서로의 블로그에 댓글 달고 있다며 그때 댓글 쓰다가 약속남이 와서 쓰다 말았네여 ㅋㅋㅋ
우리 공통점이 술 말고 또 있었네요. 자기비하와 자기애를 비슷한 비율로 동시에 갖고있다는점?? 굳이 따지자면 자기애가 55정도 ㅋㅋㅋㅋ

신지 2012-03-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문제는 뭘까? ㅡ> 뭐 문제는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주 정상 아닌가 싶네요.

연애는... 서로 좋아하는 동안은 만난다- 그 정도로만 생각하는 편이어서요. 저는 지루하지만 않다면 그냥 만나보는 편인듯. 사람은 만나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여서요. 지금 결혼 생각이 있으신지 모르겠는데 흔히 말하듯 뽀님도 결혼하려고 할 때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Forgettable. 2012-03-12 10:14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정상이라 생각합니다. ㅋㅋㅋ
전 아직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한 줄 정의 같은게 없어요. 그때그때 달라요~~ 다들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연애상담해줄때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라고 딱잘라 말하는걸 삼가는 편이지요. 아무래도 그들 각자의 사정이 있는거니까요.
여튼 인간관계는 나도 날 잘 모르기때문에 아직은 제게도 어렵습니다 ㅎㅎ

2012-06-01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