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예전에 [극장전]을 볼 때였다. 난 혼자 심각하게 보고 있는데 뒤에서 자꾸 웃는거다. 완전 심각한 분위기인데 계속 낄낄거린다. 그래서 짜증나서 그만 좀 웃으라고 그러진 못하고 영화가 끝난 후 한참 노려보기만 했었다. 그로부터 몇년 후,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며 오히려 그 때 내가 영화 코드를 이해하지 못했었던 것 같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홍상수의 코드를 이해했냐, 하면 적어도 시도는 하는 중이라고 대답하겠다.   

친구에게 이 영화를 설명해주려고 했는데, 이 영화는 완전 리얼리티다. 어떤 거만한(imperious) 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그걸 표현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 모습이 좀 찌질하다. 그 감독이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했더니 친구가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라고 하는데 더 이상 설명이 안되는 거다. 말문이 막혀서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이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시추에이션의 반복인 것 같다고 했더니, 친구가 [시리어스 맨]을 언급했다. 상황의 연속이고, 처음과 끝이 없는 그런거냐고. 어 맞네. 요즘 이 영화 얘기 많이 듣네.  

어쨌든, 이 영화 얘기하다가 궁금해졌는데, real과 unreal의 차이가 뭘까.  

현실이 아닌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 어떤 남녀가 있고, 사랑에 빠질 뻔 하고, 그러다가 갈등이 있고, 마지막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현실은 그럼 뭘까. 홍상수의 영화가 현실에 조금 가까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며 낄낄거리다가 바로 다음 날 [사랑을 놓치다]를 보니까 그렇게 촌스러워 보일 수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세련되었다는 건 아닌데. [사랑을 놓치다]는 그냥 '너무' 영화다 싶었다. 영화는 영화여야 하는게 맞는데, 그게 뭐 문제란 말인가.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영화적이지 않냐고 하냐면(영화적인게 뭔지 이젠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만) 그건 또 아니다. 이를테면 에로배우 모녀의 포옹이라던가, 강간당한게 다 당신 때문이라며 히스테리컬하게 소리지르는 엄지원의 모습, 어딘가 좀 이상해보이는 후배 부부, 할아버지가 자러 들어간 방에서 들려오는 대학생의 신음소리, 불륜의 현장을 당당하게 잡으러 들어온 후배. 등등등 뭐 단편적으로는 있을법하다 하더라도 이 모든 이야기가 한데서 흘러나오는 건 픽션이니까 가능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도 리얼하다고 말하면 안되는거다. 

현실이냐. 가상이냐. 중요한가? 

매체는 모방일 수밖에 없다. 실제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일련의 편집과정을 걸쳐 픽션이 되고야 만다. 하다못해 스너프 필름도 픽션의 일종이다. 미디어는 물론 그 어떤 책도, 그 어떤 사진도 마찬가지다. 리얼이 될래야 될 수가 없다. 리얼은 삶 자체이고, 개개인의 그것이 가지각색인데 매체를 접하는 대중 모두에게 리얼이 되는게 가능한가. 단지 리얼이고자 노력할 뿐. 반대로 최대한 리얼에서 벗어나고자 해도 모방의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세상에 좋은 것들은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두었으니까. 리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있는 이야기인 양 멋들어지게 만들어놓은 게 더 좋지만, 이런 걸 찾는게 살아가는 낙이라고 생각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면서 리얼에 최대한 가깝게 보이는 것도 나름의 재미라는 걸 알았다.  

모두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닮고자 하며 발버둥친다면, 어쩌면 이데아는 바로 현실이 아닐까. 잡을 수 없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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