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잠에 취해 비몽사몽한 주말 내내 [항설백물어]를 다 읽어버렸다.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들어 꿈인지 생시인지 왔다갔다 하면서 몽환적이고 신묘한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정말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괴담책을 내려고 돌아다니는 곰곰궁리 모모스케와 그의 신통방통 친구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일본에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전통을 잘 살려서 상품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돈을 위한 한가지 방편이 아니라 그들의 전통이 그 나름의 가치가 있어서 수요가 많기 때문에 상품화가 된 것이라 우리는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가 없다. 바로 이 전통을 중시하고 존경하는 일본에 의해 그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끊어져버렸기 때문에 그 맥을 잇기가 힘에 부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고전 문화는 구전 설화나 신화와 같은 문학이나 신앙, 음악이 모두 어우러져 있는데 일제시대에 그 맥이 모두 끊기고 왜곡되어버렸으니 그나마 남은 것들도 모두 따로 놀게 되어서 서로 서로를 뒷받침 해주고 끌어주던 힘이 미약해지고 말았다. 현대의 한국문화 연구자들을 보면 고전 문학분야에서는 원전을 해석하고 또 해석하며 제살깎아먹기만 하고 있고, 음악이나 무용과 같은 분야는 점점 고급화되고 전문화되어 일반인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민속신앙은 기독교의 등살에 이미 잊혀진지 오래. 

공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이제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렸다. 
나만해도 과제다 뭐다 해서 학부생일 때는 이것저것 많이 보러다녔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어서 지레 겁먹어버렸으니,, 그나마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판소리를 좋아했었다.
http://cafe.daum.net/NewAgePansori  <- 학교 잔디밭에서 같이 소리하고 술마시고 했던 또랑광대 사이트- 

그나마 관심 갖던 나부터도 한국문학에 체념하고 외국문학만 읽고 있으니 할 말 다 한 것 아닌가;  

교고쿠 나쓰히코가 누구인지는 잘 몰랐지만 운 좋게도 서재분들 덕에 이번에 처음으로 [항설백물어]를 읽게 되었는데 재미도 재미지만 책을 덮으며 남은 건 씁쓸함이었다. 일본의 설화를 어찌 이렇게 잘 풀어냈을까, 그 원래 의미가 그대로 담긴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빠르고 자극적인 요소들이 난무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누가 보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며, 그 이야기에 담긴 수많은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 작업을 얼마나 즐겼을 지 글에서 빤히 보인다. 게다가 이 분이 이 작업을 가능하게 했을 일본 문화 저변에 깔린 자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너무 부러웠다. 

우리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인기 사극에만 국한되는 자본과 저급한 웹툰으로 끌려와서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옛날이야기들을 볼 때면 힘겨운 상황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안쓰러워지기 마련이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정말.
오랫동안 많이 생각했던 부분인데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다. 요즘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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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8-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쓰다 왠 잡설이 자꾸 튀어나와서 걍 페이퍼로-_-
결론은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아쉽다는 인정하기 싫은 결론이군하-

2009-08-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렸을 때는 한국 것은 모두 훌륭하고, 따라서 한국 문화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들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요. 마치 우리 자식은 천재라서,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척척 해낼거라는 믿음처럼;
그런데 지금은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듯이,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같이 희석되고 있네요.
당장 끊기고 왜곡된 우리 맥들만이 문제가 아니고, 그나마 근근히 이어오던 것들마저도 그 끈을 이어줄 사람이 없어 하나 둘 씩 사라져 가고 있다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게다가 가끔 조명을 받는다고 해도, 어찌보면 일본보다 더 돈을 밝히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상품화되어, 말 그대로 소모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수명이 더욱 단축되는 것 같구요...

Forgettable. 2009-08-0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통을 중시하는 마음은 자칫 잘못된 민족주의나 보수우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지요. 그만큼 전통을 제대로 보존해서 현대에 맞게 되살리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이런 문학 뿐 아니라 관광도 잘 되어있는데 그게 참 부럽죠 ㅎㅎ
우리나라도 정부차원에서 뭐 한국문화 되살린다 어쩌고 하고 있는데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서도 그 효과는 잘 모르겠어요;; 티만 내고 정작 알맹이는 빠진 느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