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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평점 :
예기치않게 이 책을 받았을 때 선뜻 책을 빌려주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니. 환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책을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첫장을 피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엄청 기대를 했다.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여러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스웨덴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를 못했다. 어디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는 이 나라에서 우연히 발견된 책이라니, 게다가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옛날 민중들의 소소한 이야기라니(게다가 외국인이 본!), 사실 기대를 너무 했었나보다.
분명 처음의 세 챕터, 코레아로 가는길-, 첫날 밤의 소동-, 공주에서 만난 봇짐장수들-, 까지는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여행을 하며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들이나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민중들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고 재미있어서 책에 푹 빠졌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여행하고, 게다가 첨부된 사진들은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작가는 자유롭고, 호기심이 많고, 제법 우쭐한 것 같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책의 2/3는 조선의 문화의 이런저런 설명으로 채워졌다. 한글도 모르는 외국인이 쓴 것이니 수박겉핥기식의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국사 교과서, 혹은 한국인이 쓴 [중국문화의 이해]정도의 수준으로 조선의 모습이 그려졌다. 민담의 맛은 역시 사투리와 구어체일텐데 번역에 번역을 거듭하다보니 그 색이 바래어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구비문학이 얼마나 맛깔나는데, 민담부분은 차라리 책에 넣지 않았어도 되었겠다.
그리고 한국의 민간신앙을 엄청나게 무시하고 있는데, 한국의 역사는 민간신앙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믿음, 그로 인해 살아지는 삶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선 미개하다고 생각해버리고, 서양의 진보한 의학과 문화만을 맹신하는 태도는 약간 거슬렸다.
물론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묘사력은 빛을 발한다. 좋았던 부분은 굉장히 많았지만, 황태자비의 장례식을 묘사한 부분은 정말 좋았다. 내겐 전통적인 것이나 그에겐 이국적으로 비춰져서 묘사하는 것을 읽고있는 기분이 묘했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했던 것은 이 사람이 상두꾼, 대막대기, 상판대기, 탕약, 풍수지기, 줄행랑을 치다, 궁여지책, 악귀, 명정(!?)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했으며 옮긴이는 어떻게 번역을 했길래 이런 단어들이 100년 전을 살던 외국인의 글에서 등장하느냐!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굉장히 현대적인 표현과 너무도 한국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난 옮긴이가 작가의 책을 번역이라기보단 재창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책읽는 내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