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옥문도에는 범죄의 천재들이 '여럿' 살고 있다. 그러나 이유나 죄책감 없이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한다거나, 돈을 위해서 살인을 하는 요즘의 부류와는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나는 집요하게 엄격한 나의 도덕적 잣대를 그 범죄자에게 들이댈 수가 없었다. 같은 이유로 매력남 긴다이치의 눈에도 어릿한 안개가 끼어있었을 것이다. 

 무기력과 우울과 눈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요즘의 나는 벗어나고자 이 책을 집어들긴 했다만, 반 정도는 글자만 따라 책장을 넘겼을 뿐 그 자세한 단어와 문장들은 저 깊이 다 가라앉아버렸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집중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부분은 두번째 죽음을 맞아 스님이 읊조린 하이쿠이다.

   
  잔인하도다 투구 아래서 우는 귀뚜라미여.  
   

 이처럼 탁월한 하이쿠라니, 몽롱하게 글자들에 빠져있던 나는 이 하이쿠를 보며 정신을 버뜩 차렸다. 동시에 미소까지 슬쩍. 

 간결한 시구에서 찾을 수 있는 무섭고 섬뜩한 상상력과 사람이 죽은 그 상황에서 절묘한 하이쿠를 끌어낼 수 있는 천재적인 발상. 이것은 모두 무시무시한 사건의 수수께끼이자 열쇠였다. 지독하게 꼬아 놓은 살인사건들 속에서 그 동기와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트릭은 꼬여 있고, 살해 방법 또한 기괴했다. 보니까, 동기 또한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의아했으나 막장의 아연해지는 명쾌한 설명과 반전이란.  

 요코미조 세이시의 탐정소설은 [옥문도]가 두번째였는데, 가장 큰 특징은 범인을 미워할래야 할 수가 없다는 것과 그 살해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어도 되었을 기묘한 우연의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범인이 실수한 것이 아님에도 미워할 수 없는 장치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도 빈번히 나타나서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는데 아마도 이 분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는 책 전체를 감싸는 특유의 아우라. 이것은 어찌 말로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꽤나 일본적이고, 몽환적이어서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순수문학에 대한 욕구를 거의 90프로 정도 채워준다. 

 자극적인 반전을 추구하지도 않기에 그 결말이 억지스럽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짜임새는 탄탄해서 놀랄 수밖에 없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책의 대부분을 글자 속에서 허둥대며 스쳐보냈기에 아쉬움이 크다. 마음이 좀 진정되고,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그 쾌락에 더 놀라지 않을까 싶다.

 사람 미워하기에 지친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범인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며 자기 마음 속에 존재하는 따스함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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