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실종
원래 바깥에서 살다가 들어와서인지, 현관문만 열면 마구 뛰쳐나가서 20층까지(우리집은 11층) 단숨에 올라가서 울어대는 바람에 곤란했던 적도 많았다. 언젠가는 집을 나가버리지 않을까하는 불안함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모두가 다 나간 집에 혼자서 CSI따위를 보고 있었는데, 슬슬 기어나와야 할 야옹이가 조용한 것이었다.
침대 밑, 신발장, 커튼 및, 서랍장, 이불 속, 베란다, 장농, 소파 아래, 냉장고까지 열어보며 야옹이를 찾는데 없어서 엄마아빠에게 전화해서 물어봤지만 아무도 행방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또 울면서 아파트 1층에서 25층까지 샅샅이 뒤졌는데도 없더라- (헤픈 눈물, 너무 심하게 자주 운다.)
침착하게 집에 돌아와서 고양이 사진을 첨부한 '고양이를 찾습니다'전단지를 만들어서 엘레베이터와 아파트 현관에 붙이러 집을 나섰는데, 아파트 현관에서 어떤 꼬마가 '야옹 야옹'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너 근처에서 고양이 본적 있니?'
'네, 저기 아래요.'
꼬마가 가리킨 곳을 보니 아파트 정원 구석탱이에 처박혀서 달달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걱정되서 돌아온 엄마와 함께 고양이를 구조해서 꼬마애에게 고맙다고 3천원 쥐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의 나의 안도감과 품은 가슴으로 전해지던 야옹이의 안도감이란. 그리고 고양이를 찾았냐고 전화오던 아빠의 목소리란.
누군가를 잃는다는건 언제나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걸 새삼 다시 느꼈다.
- 일단 오늘은 끝, 재미없다.
+a
내겐 굉장히 소중한 기억이란, 포장되지 않는 한 언제나 남에겐 그저 그런 평범한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중한 기억을 나눌 때 그 반향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데, 점차 내 마음에 드는 반응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기준이 편협해진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변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내 삶이 정말로 평범해진 것일까?
친구에게 '스펙타클'을 이끌고 다니는 애란 평을 들었다. 듣기에 재밌고 기분 좋은 평가였지만 반대로 이 친구는 내게 그런 이벤트같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만남이 기대에 못미쳤던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의 커피타임은 지리했다.
이런 일이 잦아질수록 난 내가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만날 때,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 무시하는 이기적이고 딱딱해진 마음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더 오바해서 반응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는 상대에게 부담이 되거나 가식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고픈 열망은 언제쯤 충족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