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재직 중인 오슬로대에서 3년 전에 기분 나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5년 동안이나 거기서 한국어를 가르쳐 왔는데, 그동안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원서를 낸 학생들이 고작 네 명뿐이었기에 학과장이 드디어 한국어 강좌를 폐강시키자고 말을 꺼냈다. 한국계 입양인들이 6천명이나 되는 노르웨이에서 한국어 과정이 꼭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봤지만 연례 지원자가 150여명씩이나 되는 중국·일본어 과정에 예산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학과장의 의견이 결국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아, 소속 학과의 교수와 학생, 교직원 대표자 회의에서 한국어 폐강을 결정하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오슬로를 떠나고 싶을 만큼 기분이 나빴지만 한 가지 생각 때문에 결국 ‘잔류’를 결심했다. 필자에게 불리한 결정이었다 해도 그 결정을 내릴 때 오슬로대가 지킬 것을 다 지켰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담당 교수인 필자와 먼저 협의부터 했다는 점이나 한국어 공부를 막 시작한 재학생들에게 졸업 기회를 보장해 주었던 점, 그리고 어학 이외의 필자의 한국 관련 강의를 다 그대로 살려주는 등 한국학의 여맥을 잇게 해준 점 등은 필자에게 호소력이 높았다. 게다가 오슬로대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가까운 스톡홀름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올 경우 학점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등 한국어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 주었기에 필자로서 아무리 개인적으로 불쾌해도 “기본을 지켰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과연 국내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때 그 처리가 어떻게 되는가? 요즘 건국대의 히브리중동학과 등 이른바 ‘비인기 학과’들의 폐과 결정에 대한 보도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오슬로대에서 가까운 스톡홀름과 코펜하겐, 헬싱키 등 여러 북구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 한국어 과목을 폐강시켰지만, 건국대는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에서 비교 대상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유일한 학과를 그 희소성에 대한 하등의 고려 없이 없애려고 한다. 오슬로대에서는 졸업생이 2명, 재학생이 2명뿐인 전공을 폐강시키는 일에 약 석 달 동안 당사자와 소속 학과, 학부 교수, 학생들과의 협의 과정을 진행했지만, 건국대는 당사자와의 협의 과정을 생략해 교수·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보도된다. 지금 히브리중동학과 재학생들로 하여금 될수록 히브리어와 무관한 다른 학과로 전과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라는 보도도 나와 있는데, 이 대목은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북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쪽에서는 만약 대학이 입학을 지원했던 그 당시에 학생에게 약속했던 학습과정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학생 학습권의 심각한 유린과 학교로서의 고유 임무 유기로 간주돼 전국적 스캔들이 벌어질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시종일관 ‘시장성’만 거론하는 것으로 보니 오로지 시장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 대학과 기업의 차이는 무엇인가?

국내 대학들이 “세계적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 돈부터 필요하다”고 앞을 다투어 학생들에게 무리한 등록금 인상을 억지로 강요하지만 ‘세계적 대학’은 돈이 아닌 근본적인 학문적 상식과 민주적 절차,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한 존중으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도 없이 폐과 조처를 내릴 수 있는 대학이라면 과연 외국의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이 몰려올 것인가? ‘세계성’이란 돈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학습자와 학문, 앎에 대한 존중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 아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전락했다고 토론하던 그 시간이 참 그립다. 답답해서 마음이 터질 뻔 했던, 하고 싶은 말이 터져나와서 목소리가 떨렸던, 그 때의 내가 그리운 지는 잘 모르겠다.

-- 히브리학과 없어진다고 하던데, 벌써 없어졌나? 짜증난다. 히브리학과 가고 싶어서 진짜 고민했었다. 이스라엘 친구들 만나면서 진짜 히브리학 전공안한거 땅을 치고 후회했었다. 나름 우리학교엔 히브리학과있다면서 엄청 자부심이었었는데, 없애고 뭐 원하는 과가 뭐든지 전과가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는 이 처사는 정말 내 자부심에 상처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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