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원래 남자친구를 만나려 했으나 펑크가 난 관계로 주말엔 메가 박스에서 영화제를 보기로 하고 예매를 해두었다. 프라이데이 나이트엔 간만에 학교에 가서 아직 학생인 김도와 김도 남친과 쫌팽이를 함께 만나서 술을 달려주시고(순대국 하나만 시켜놓고 6시간동안 소주 6병을 까던 우린 변해서 이젠 3차까지 간다. 불경긴데 왜이리 돈을 쓰는지) 집에가서 자고 토요일이 되어서 집을 나섰다. 평일에 맨날 가는 삼성역이지만 왠지 혼자 나서기엔 너무 멀게 느껴져서 그냥 예매 취소하고 무도나 볼까, 하다가 씻은 김에 단장을 하고 나왔다.
이제는 혼자 영화보는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지만 친구들은 그게 왠 청승이냐고 한다. 영화제 영화라 뭐 딱히 같이 볼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다들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워서- 라고 변명했다. 주말에 이렇게 먼 길을 와서 영화를 봤는데 재미없음 어떡하냐고 남친이 빈정댔지만 뭐 매우 알찬 시간이었다.
[사랑 후..]는 노부부 이야기였는데, 지루한 감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그 지루함때문에 내 마음이 더 흔들렸을 수도 있겠다. 할아버진 우리 아빠랑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왜 그렇게 아빠 생각이 나던지..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더니 타인이 더 애틋해 보이는 게 다 뻥인가 보다. 난 아무리 바빠도 냉담하지 않아야겠다. 이미 아빠와는 너무 멀어지긴 했지만..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권위적이고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던 아버지는 이제 어머니를 찾겠다며 자기 스스로가 어머니가 되고자 한다. 무뚝뚝하고 말 없던 아버지의 마음에 그리 깊은 사랑이 담겨 있는 줄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 참 많이 울던데, 당연히 나도 눈물이 났다. (요 몇 년간은 눈물이 오줌처럼 자주 나온다.)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고,,
줄거리도 하나도 보지 않고 '도리스 되리'라는 감독 이름 하나 보고 영화를 본거다. 진짜 영화나 책 고르는 기준이 너무 편협하다. 그래도 뭐 망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매우 편하고 훌륭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하, 대신 놓치는 것도 그만큼 많을 수도 있겠다.
어제 등산을 하면서 엄마한테 내용 얘기를 해 주었다. 엄마도 어제 나간게 혼자 영화보러 간거였냐면서 웃는다. 그런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다가도 에이, 지루할 것 같다며 굳이 보지는 않겠단다. ㅋㅋ 요즘엔 엄마가 왜이렇게 귀엽지.. 다음주 일요일에 대하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에릭 니체의 젊은 시절]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라스 폰 트리에가 각본을 쓴, 그의 젊은 시절 격인 작품이다. 내가 편애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별 백개다! ㅋㅋ 사드를 시나리오로 쓰다니 진짜 웃겨 죽겠다. 실제 영화도 있긴 하지만,,(보진 않았다.) 진짜 재미 없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무의미한 것의 나열'(? 이런 단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의 전형적인 예이긴 하지만..
내 옆에 앉았던 분이 커피(아마도 카푸치노?)를 드시고 계셨는데 나도 마시고 싶어서 혼났다. 왜 굳이 커피를 마시고 싶게 내 쪽에 놓으셔선.. 영화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이 갈 뻔한걸 몇 번이나 참았다. 커피를 금한지 어언 한달이 넘어가네, 카푸치노의 계절인데 ㅠㅠ 위가 좀 나으면 한잔 사 마셔야겠다.
그가 이런 시나리오도 쓸 줄 아나? 싶을 정도로 코믹하고 밝았다.(전작들에 비한다면야..) 보는 사람 괴롭히기로 유명하고 나도 그에 당한 타격이 굉장히 컸던지라.. 감히 [만덜레이]에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감독이 다른 사람이어서였을까? 어쨌든 기대하지 못했던 그의 감미로운(이게 왠 빠순이..) 나레이션과 코믹한 요소들이 참 즐거웠다. 히히, 게다가 엄청 어리버리하고 순진해 보이기만 하던 주인공은 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기르니 완전 훈남으로 변신하였다. 역시 사람은 꾸미기 마련!
난 그의 전작들을 참으로 무서워했었다. 내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너무 마음 아프게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바람에 영화를 보고있기가 많이 힘들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그의 작품들을 최고로 평가하는 건 나 역시 인간은 악하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고, 한 번 창작의 기회가 왔을 때에도 그 사실을 모티브로 삼은 데에 그 연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진짜 최고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내가 전혀 발견하지 못했었던 그의 색다른 재능과 유머를 발견한 건 완전 상상 외의 소득이었다.(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성에서 오는 충격 너무 좋아ㅠ)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처럼 나르시즘적이고 유쾌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완전 멋쟁이다.
- 원래 글 길게 쓰지 못하는 성격인데 서재에서 글을 쓰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신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