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것은 대학 도서관의 자료실에서였다.
뭘 볼까... 하다가 그냥 낯익은 제목이라는 이유로 참 심심하게 골랐던 영화. 하지만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블레이드 러너>는 더 이상 그냥 '영화'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많은 은유와 상징이 보석처럼 채워져있는 <블레이드 러너>는 지적인 충만감, 화면을 읽는 즐거움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TEXT적인 영화다.
지금은 너무 흔해져버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사이보그'라는 사이버펑크 세계의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옥상 씬에서 로이(룻거 하우어)의 대사인 "Time to die"에서는 바보같이 울어버렸다. 이후 director's cut도 봤는데 나는 둘 다 좋았다.
- 편집본이 감독판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허다하다. 때로 객관적인 판단이 더 정확할 때도 있는 법. 

마지막 장면을 편집해 버림으로써 데커드의 정체가 애매해졌다고 하지만 사실 내용을 유심히 보면 이미 영화 전반에 걸쳐 데커드의 정체성에 대한 힌트를 충분히 주고 있다.
필립 K.딕의 원저의 제목인『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은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너무나 잘 대변한다. 전기양 꿈을 꾸는 안드로이드라니, 제목만으로 가슴이 설레었던 몇 안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덧붙여 반젤리스의 음악도 좋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도 흠잡을 데 없이 좋다.
이런 영화가 시대의 외면을 받았다니, 이런 작품을 만들고도 상 하나 못받다니... 참고로 당시 대세는 E.T였다고 한다. 

좋은 작품은 다음 작품에게 영감을 준다.《블레이드 러너》도 마찬가지.《블레이드 러너》는《공각기동대》로, 《공각기동대》는《매트릭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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