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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야 형제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여름. 그들은 수도 없이 그 계절을 찬미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제는 땀이 많이 날까 염려되어 뭘 마시고 싶을 때마다 참지 않아도 된다. 수영을 못해도물에 뜨는 비트 판이 있으니 문제없다.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어도 여행을 갈 수 있고, 여자가 없어도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연애소설만큼 작가의 성별이 중요한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정 성별이 연애소설을 쓰는데 유리하다는 뜻이 아니라, 연애소설의 화자와 작가의 성별이 일치하지 않으면, 대개의 작가가 어느 순간 미끄러지지 않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물론, 예외가 되는 아주 훌륭한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연애라는 심리에 빠져있는 한 인간의 심리를 내밀하게 그리면서 자기가 아닌 성별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남자 감독이 만든 로맨틱코미디의 무신경함에 화를 낼 때도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연애하는 동안의 상대 성별의 심리를 헤아리기란 힘든 법이다. 그리고 사실 내 생각은, 헤아려서는 안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만한 건 없다.
<마미야 형제>의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고, 그녀는 여자고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남자다. 하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순간이 있어서, 사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성이 다른 데서 오는 위화감은 별로 없다. 내가 정말 웃었던 순간은, 형제 중 형인가 동생이 '단골'업소에 가서 '볼일'을 본 뒤 이상한 아가씨와 건달들에게 삥뜯기는 장면 얼마 뒤인가에 나온 이런 말이다.
요리코의 눈에는 형제가 어쩐지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비친다. 검소하면서도 즐겁고 충만해 보인다. 분명, 색정이니 연애 따위에는 흥미도 집착도 없을 테지.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이런 나이브함은, 여자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어떤 환영이다. 마치 청순미 여배우S의 사생활에 많은 남자 팬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처럼. 마미야 형제같은 사람은 "색정이나 연애 따위에는 흥미도 집착도 없을 테지"라는 생각. 나도 저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꽤 여러 사람에게 했다가 사실은 그들 모두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직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 대목을 읽다가 막 웃어버렸다. 오타쿠로 분류하게 되는 사람들이라고 성적 욕망이 없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들 특유의 덩치만 큰 유치원생같은 행동, 약간 부풀어오른 배(살이 안쪘어도 배는 꼭 나와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살이 쪘다기보다는 몸이 부풀어있다),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말을 피하는 느낌 등등... 때문에 "저 사람은 성욕이라는 게 없는 인간 같아"라는 말을 실제로 한 적도 있었다. 사실 뭐, 서로 모르니까 재미있는 거지. 알기도 귀찮고.
본문 중에서----------
여름. 그들은 수도 없이 그 계절을 찬미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제는 땀이 많이 날까 염려되어 뭘 마시고 싶을 때마다 참지 않아도 된다. 수영을 못해도물에 뜨는 비트 판이 있으니 문제없다.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어도 여행을 갈 수 있고, 여자가 없어도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13
형에게 아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바로 이럴 때다. 테츠노부가 상상하기에, 세간에서 아내로 불리는 여자들은 이럴 때 대단히 억척스럽게, 그러ㅕㄴ서도 자애에 가득 찬 솜씨로 남편을 꾸짖고 달래면서 참을성 있게 돌봐 주고, 옷을 벗기고, 물을 먹이고, 뜨거운 스팀타올로 얼굴을 닦아줄 것 같다. 남편의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설교할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시면 몸에 해로워요, 라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마시는 위장약을 가방에 살짝 넣어 주겠지. 테츠노부는 복도에 선 채로 공상에 빠진다. -52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린 호의가 심하게 거부당했던 수많은 경험들. (중략) 그런 점에서 아키노부는 테츠노부가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부딪혀 깨지는 일의 연속이다(그러고 신칸센을 보러 간다). 질리는 기색도 없다. -80
요리코의 눈에는 형제가 어쩐지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비친다. 검소하면서도 즐겁고 충만해 보인다. 분명, 색정이니 연애 따위에는 흥미도 집착도 없을 테지.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156
그래도 사오리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겐타와 둘이서 불행하게 지내는 편이 나았다. 겐타로 인해,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는.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