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로 산다는 것 - 전3권 세트 - 오스카로 산다는 것 + 릴리와 호지 + 고양이와 더불어
이본 스카곤 지음, 장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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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력적인 자들은 제멋대로이다.
그것이 그들 매력의 비밀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중에서, <오스카로 산다는 것>에서 재인용

이 책을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한 가지-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이 세 권을 발견한 고양이 매니아들의 광적인 반응 5건을 생각해보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없는 선물이 될 듯. 하지만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돈낭비에 그칠 우려가 있는 책이다. 그림이 예쁜 것에 비해 글은 임팩트가 덜하다. 고양이를 키우면서의 소소한 이야기를 좀 더 해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림만으로 꽤 만족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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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없는 하프 - 카툰 문학의 거장 에드워드 고리 걸작선 4 카툰 문학의 거장 에드워드 고리 걸작선 4
에드워드 고리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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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메시스에서 나오는 에드워드 고리 시리즈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내 취향에 안맞게 약간 기괴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고리의 책이 주는 물리적인 만족감이라는 데서 벗어나질 못한다. 고리는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림과 글씨를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사람이니까, 책이 물리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거나 충족시켜준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책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 그의 첫작품인 <현없는 하프>를 책 수색작업중 발견해서 꺼내 읽었다. (이 책이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산 책은 아닐텐데, 받은 기억도 없다. 저 때는 내가 신간 담당이 아니었다.)

<현없는 하프>는 (내가 읽은) 그의 다른 책들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장정과 종이질 판형이 주는 느낌이 미메시스판과 황금가지 판은 크게 차이가 난다. 실제로 고리의 스타일도 차이가 있다. 그림은 덜 정교하고(첫작품이니까), 글이 많고(첫 작품이니까?), 줄거리가 있다(첫 작품이니까;;). <현없는 하프>는 소설을 쓰는 것에 관한 이야기인데, 글 쓰는 사람들만큼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 고리마저. 결론은, 황가에서 나온 고리 걸작선 나머지 3권도 사야겠다.

고리의 글과 그림은 해학이니 넌센스니 기괴함이니 하는 말과 주로 등장하는데, 그런 말이 아니라면 그의 글과 그림을 설명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정확한 인상은 뜨거운 열에 녹아내린 거울을 통해 보는 악몽을 그린 것 같은 이야기들이라는 점이다. 무섭다기엔 너무 내 것이고, 현실적이라기엔 내 것이 아니며, 하나도 말이 안 되는데 무슨 뜻인지는 감이 온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 그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위해 미간에 주름을 잡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게 된다.

ps. 최근 그림책을 몇개 봤는데, 그 중에서는 황가의 고리 시리즈가 뭐, 미적인 관점에서는 제일 별로다(아직 내가 못 읽은 나머지 세 권이 <현없는 하프>와 비슷하리라는 사실을 가정한 상태에서 하는 말이다, 내 가정이 옳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본 스카본의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시리즈는 목판화의 세세함을 확인할 수 있는 인쇄가 압권. 내용으로 따지면 앞의 두 권과 뭔가 잘 안 맞는 <고양이로 산다는 것>만 빼면 예쁜 그림책을 쓰다듬쓰다듬하면서 세월아네월아 한갓진 고양이 놀음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책 읽고 나른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특별히 웃기거나 하지는 않다- 혹시 고양이가 주인공인 수많은 명작 코믹만화들을 연상할까봐;;) 미메시스의 고리 시리즈는 책에 따라 판형이 다르기도 한, 아주 당연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고리의 글씨도 크게 나와있는데다(글이 적다, 확실히) 인쇄가 그럭저럭 좋은 편이라서, 그림의 디테일에 코를 박고 시간을 보내기에 괜찮은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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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야 형제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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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그들은 수도 없이 그 계절을 찬미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제는 땀이 많이 날까 염려되어 뭘 마시고 싶을 때마다 참지 않아도 된다. 수영을 못해도물에 뜨는 비트 판이 있으니 문제없다.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어도 여행을 갈 수 있고, 여자가 없어도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연애소설만큼 작가의 성별이 중요한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정 성별이 연애소설을 쓰는데 유리하다는 뜻이 아니라, 연애소설의 화자와 작가의 성별이 일치하지 않으면, 대개의 작가가 어느 순간 미끄러지지 않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물론, 예외가 되는 아주 훌륭한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연애라는 심리에 빠져있는 한 인간의 심리를 내밀하게 그리면서 자기가 아닌 성별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남자 감독이 만든 로맨틱코미디의 무신경함에 화를 낼 때도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연애하는 동안의 상대 성별의 심리를 헤아리기란 힘든 법이다. 그리고 사실 내 생각은, 헤아려서는 안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만한 건 없다.

<마미야 형제>의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고, 그녀는 여자고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남자다. 하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순간이 있어서, 사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성이 다른 데서 오는 위화감은 별로 없다. 내가 정말 웃었던 순간은, 형제 중 형인가 동생이 '단골'업소에 가서 '볼일'을 본 뒤 이상한 아가씨와 건달들에게 삥뜯기는 장면 얼마 뒤인가에 나온 이런 말이다.


요리코의 눈에는 형제가 어쩐지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비친다. 검소하면서도 즐겁고 충만해 보인다. 분명, 색정이니 연애 따위에는 흥미도 집착도 없을 테지.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이런 나이브함은, 여자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어떤 환영이다. 마치 청순미 여배우S의 사생활에 많은 남자 팬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처럼. 마미야 형제같은 사람은 "색정이나 연애 따위에는 흥미도 집착도 없을 테지"라는 생각. 나도 저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꽤 여러 사람에게 했다가 사실은 그들 모두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직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 대목을 읽다가 막 웃어버렸다. 오타쿠로 분류하게 되는 사람들이라고 성적 욕망이 없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들 특유의 덩치만 큰 유치원생같은 행동, 약간 부풀어오른 배(살이 안쪘어도 배는 꼭 나와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살이 쪘다기보다는 몸이 부풀어있다),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말을 피하는 느낌 등등... 때문에 "저 사람은 성욕이라는 게 없는 인간 같아"라는 말을 실제로 한 적도 있었다. 사실 뭐, 서로 모르니까 재미있는 거지. 알기도 귀찮고.

본문 중에서----------

여름. 그들은 수도 없이 그 계절을 찬미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제는 땀이 많이 날까 염려되어 뭘 마시고 싶을 때마다 참지 않아도 된다. 수영을 못해도물에 뜨는 비트 판이 있으니 문제없다.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어도 여행을 갈 수 있고, 여자가 없어도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13
형에게 아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바로 이럴 때다. 테츠노부가 상상하기에, 세간에서 아내로 불리는 여자들은 이럴 때 대단히 억척스럽게, 그러ㅕㄴ서도 자애에 가득 찬 솜씨로 남편을 꾸짖고 달래면서 참을성 있게 돌봐 주고, 옷을 벗기고, 물을 먹이고, 뜨거운 스팀타올로 얼굴을 닦아줄 것 같다. 남편의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설교할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시면 몸에 해로워요, 라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마시는 위장약을 가방에 살짝 넣어 주겠지. 테츠노부는 복도에 선 채로 공상에 빠진다. -52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린 호의가 심하게 거부당했던 수많은 경험들. (중략) 그런 점에서 아키노부는 테츠노부가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부딪혀 깨지는 일의 연속이다(그러고 신칸센을 보러 간다). 질리는 기색도 없다. -80

요리코의 눈에는 형제가 어쩐지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비친다. 검소하면서도 즐겁고 충만해 보인다. 분명, 색정이니 연애 따위에는 흥미도 집착도 없을 테지.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156

그래도 사오리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겐타와 둘이서 불행하게 지내는 편이 나았다. 겐타로 인해,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는.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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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잃어버린 여덟 가지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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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출판 담당을 하던 회사 선배가 꼭 읽으라며 빌려준 야마다 에이미의 <풍장의 교실>을 읽고 나서 심각하게 그 책을 떼어먹을 궁리를 했던 적이 있다. 회사 선배가 아니었다면 몰라도;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선배의 책을 떼어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결국 절판된 책을 서울시내 모든 서점을 뒤져 사고야 말았던 기억이... 이렇게 야마다 에이미의 책들이 속속 나오는 걸 보면 참 기분이 묘하다.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풍장의 교실>이 가장 재미있는지;

 

야마다 에이미가 소녀시대를 그리는 방법은 각별하다. 애틋하고, 절박하다. 어쩌면 이렇게 미화하지 않는지(정확히 말하면 또 다른 방식의 미화라고 볼 수 있지만,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샤방거림은 아니다) 종종 놀란다. 이 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소녀가 잃어버린 여덟 가지>는 여러 연령대의 소녀들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다. 일곱 살부터 대학을 졸업한 연령대까지, 정말 여러 연령대의 소녀들이 등장한다. 이 소녀들의 머릿속은 꽃미남에 홀리거나 입시에 목을 매는 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로 복잡하다. 이를테면, 죽음, 같은.

 

본문 중의 "금방 사라져, 마치 불꽃같이"라는 말은 남녀관계에도 쓰일 수 있지만, 소녀(소년도 마찬가지)시절에도 쓰일 수 있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냥 잊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성장통은 마음 속 어디선가, 쉽게 헤집을 수 없는 뻐근함을 동반하고 호명될 때를 기다린다. 이런 책을 읽으면, 그 시절의 복잡했던 머릿속이 떠오른다. 어른들이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던 시절, 마음 속은, 머릿 속은 얼마나 많은 것들로 부글거렸던가. 때론 불행하고 싶었고, 실제로 불행을 겪으면서 죽고 싶기도 했고, 많은 것들에 실망하는 법을 배우고, 기대치를 낮추는 법을 배우고... 어른이 되면서 배워야 했던 그런 많은 고통의 통과의례들. 야마다 에이미는 그런 고통을 잊지 않고 책으로 쓰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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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지음, 송경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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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거 아닐까. 사회학자의 아내가, 그것도 학과장 승진을 둔 사회학과 교수의 아내가 마법을 쓴다. 남편의 성공은 사실 아내가 마법을 쓴 덕분이고, 세상 모든 여자들은 사실 마녀였다. 프리츠 라이버의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꽤 독특한 이야기다. 어디가 농담일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사실 모든 게 진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주인공 노먼이나 독자나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세상 일이 너무 순탄하기만 했던 대학교수 노먼은 어느날 아내의 화장방을 훔쳐보기로 한다. 약간 유치하고 욕먹을 짓, 일을 저지른 후 재미있어하면서 약간 부끄러워할 짓을 궁리하던 차에 안성맞춤인 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내가 마법을 쓴 흔적이 널려있다. 노먼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그 장면을 아내에게 들킨다. 놀랍게도, 아내는 마법을 쓴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른 교수들의 아내 역시, 아니, 모든 여자들이 마법을 쓴다고 고백한다.

공포물이라지만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했던 작가답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노먼은 계속 아내의 말을 부인하지만 믿을 수 밖에 없는 정황이 자꾸 펼쳐지자 당황하기 시작한다. 음... 그 질척거리는 이미지 같은 건, 오늘의 독자에게 무섭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기는 힘들 듯. 하지만 정말 잘 읽히는 책이었다. 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실제로도 옛날 책이라서(그리고 옛날 작가라서) 시큰둥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더라만... 개인적으로는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ps. 이 책을 읽은 사람과의 대화.

"이 책이 어디가 무서워? 무서웠어?"

"무섭잖아, 이거 완전히 부부괴담이라고. 차라리 바람피는 게 낫지."

이런 식; 생각해보라,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마법을 쓴다고. (게다가 그 마법의 규모와 목적 등등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약간 두렵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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