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없는 하프 - 카툰 문학의 거장 에드워드 고리 걸작선 4 카툰 문학의 거장 에드워드 고리 걸작선 4
에드워드 고리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미메시스에서 나오는 에드워드 고리 시리즈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내 취향에 안맞게 약간 기괴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고리의 책이 주는 물리적인 만족감이라는 데서 벗어나질 못한다. 고리는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림과 글씨를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사람이니까, 책이 물리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거나 충족시켜준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책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 그의 첫작품인 <현없는 하프>를 책 수색작업중 발견해서 꺼내 읽었다. (이 책이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산 책은 아닐텐데, 받은 기억도 없다. 저 때는 내가 신간 담당이 아니었다.)

<현없는 하프>는 (내가 읽은) 그의 다른 책들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장정과 종이질 판형이 주는 느낌이 미메시스판과 황금가지 판은 크게 차이가 난다. 실제로 고리의 스타일도 차이가 있다. 그림은 덜 정교하고(첫작품이니까), 글이 많고(첫 작품이니까?), 줄거리가 있다(첫 작품이니까;;). <현없는 하프>는 소설을 쓰는 것에 관한 이야기인데, 글 쓰는 사람들만큼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 고리마저. 결론은, 황가에서 나온 고리 걸작선 나머지 3권도 사야겠다.

고리의 글과 그림은 해학이니 넌센스니 기괴함이니 하는 말과 주로 등장하는데, 그런 말이 아니라면 그의 글과 그림을 설명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정확한 인상은 뜨거운 열에 녹아내린 거울을 통해 보는 악몽을 그린 것 같은 이야기들이라는 점이다. 무섭다기엔 너무 내 것이고, 현실적이라기엔 내 것이 아니며, 하나도 말이 안 되는데 무슨 뜻인지는 감이 온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 그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위해 미간에 주름을 잡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게 된다.

ps. 최근 그림책을 몇개 봤는데, 그 중에서는 황가의 고리 시리즈가 뭐, 미적인 관점에서는 제일 별로다(아직 내가 못 읽은 나머지 세 권이 <현없는 하프>와 비슷하리라는 사실을 가정한 상태에서 하는 말이다, 내 가정이 옳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본 스카본의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시리즈는 목판화의 세세함을 확인할 수 있는 인쇄가 압권. 내용으로 따지면 앞의 두 권과 뭔가 잘 안 맞는 <고양이로 산다는 것>만 빼면 예쁜 그림책을 쓰다듬쓰다듬하면서 세월아네월아 한갓진 고양이 놀음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책 읽고 나른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특별히 웃기거나 하지는 않다- 혹시 고양이가 주인공인 수많은 명작 코믹만화들을 연상할까봐;;) 미메시스의 고리 시리즈는 책에 따라 판형이 다르기도 한, 아주 당연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고리의 글씨도 크게 나와있는데다(글이 적다, 확실히) 인쇄가 그럭저럭 좋은 편이라서, 그림의 디테일에 코를 박고 시간을 보내기에 괜찮은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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