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마녀와 옷장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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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두 번째 책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영화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나로선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보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미 책으로 읽고 나면 영화의 스토리를 알기 때문에 흥미가 반감된다고 하니... 어쨌든 이 책은 영화가 상영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읽었을 책이다. 그리고, 맨 처음으로 출간되었고,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7권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자들 성향에 따라 가장 감동적이고 흥미를 느끼는 책은 다를  것 같다.

 

이 책은 작가의 맨 처음 쓴 책이라 그런지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가장 짙게 배어 나온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 사상인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아슬란에 의해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아슬란과 수잔과 루시의 대화 속에서 성경의 어떤 구절을 암시하는 대목을 대할 땐 가슴이 찡해오기도 한다. 특히 에드먼드의 죄값으로 인해 아슬란이 대신 죽으러 갈 때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괴로워 하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떨렸다. 수잔이 “저 ...... 아슬란 님이 가시는 곳에 저희도 함께 갈 수 있을까요?”라는 대목은 베드로가 주님이 가시는 곳에 저희도 함께 하겠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나니아의 세계와 우리 세계의 시간은 상당히 다르다. 나니아 세계에서, 나니아의 창조와 멸망의 시간을 따져 보면 무려 255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 세계의 시간은 고작 40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세계의 아이들이 나니아 나라에서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왕과 여왕으로서 훌륭히 통치하고 우리 세계로 오지만 그 순간은 전혀 흐른 것이 아니다. 나니아 나라가 창조된 후, 디고리와 폴리가 우리 세계에 왔다가 다시 피터와 수잔, 에드먼드와 루시가 옷장을 통해 나니아 세계로 갔을 땐 벌써 수 백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수 백년의 세월은 나니아 나라 창조 때 함께 들어왔던 악의 세력(즉, 하얀 마녀)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니아 나라는 수 백년 동안 꽁꽁 언 겨울이었다. 나니아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자신을 구원해 줄 아슬란이 나타나리라는 소문을 듣고 구세주 아슬란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메시아 예수를 기다리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 책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에드먼드에 대한 다른 형제들의 반응이다. 에드먼드는 4명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강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동생 루시 다음으로 나니아 나라에 가게 되지만 그것을 끝내 숨긴다. 마녀의 유혹에 넘어간 그는 다른 세 형제를 마녀에게 바쳐야 될 임무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죄의 대가는 결국 아슬란의 죽음이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성경과 달리 여기서 다른 형제들은 에드먼드의 죄에 대하여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그 죄를 뱀에게 전가하거나 아담이 하와에게 전가하였지만 여기서 형제들은 에드먼드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자기들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에드먼드를 무시하거나 외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1권에서 디고리가 마녀의 유혹을 이긴 것처럼, 이 책에서도 작가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에서 벗어나 나에게도 책임이 있고,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부활한 아슬란이 하얀 마녀에 의해 석상이 되어버린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입김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장면일 듯 싶다. 이 부분만큼은 영화로 보고 싶다. 영화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마다 평이 다른데, 나에겐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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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조카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1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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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첫 번째 책이지만, 실질적으로 7권 중에서 6번째 쓰여졌다고 한다. 일종의 나니아 나라 연대기를 위해 뒤늦게 쓴, 프리퀼(prequel)에 해당된다. 어떤 사람은 출간순에 따라 읽는 것이 좋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독교적인 알레고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연대기에 따라 읽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연대기순으로 읽었기 때문에 전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출간순에 따라 읽는다면 어떻게 해서 2권의 옷장이 나니아 세계로 가게 되는지 이해하는데 전율을 느낀다고 하니 출간순으로 읽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을 것 같다. (출간순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캐스피언 왕자-새벽 출정호의 항해-은의자-말과 소년-마법사의 조카-마지막 전투”이다.)

 

1권에서는 아슬란에 의해 나니아 나라의 창조가 참 역동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나니아 나라는 착한 동물들이 말을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세계이다. 아슬란이 나니아를 창조하고 나서 온갖 동물들이 함께 뛰노는 모습은 성경의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천국의 모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즉,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장난치며 물지 않는 참 사람과 기쁨의 그 나라'말이다. 그리고 아슬란이 모든 동물의 암수 두 쌍씩 모으는 모습은 노아가 방주를 다 짓고 나서 동물들을 방주 속에 불러들이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이 책의 뒷부분에, 디고리가 아슬란의 명을 받고 폴리와 함께 플레져를 타고 생명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가서 생명나무의 사과를 따올 때 마녀의 유혹은 얼마나 그럴 듯하고 우리를 매혹하게 하는지 가슴이 다 섬찟하다. 그것은 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된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것과 흡사하다. “바보, 그 사과를 한 입만 베어 먹으면 너네 엄만 당장 낫는다 말야. 지금 네 주머니에 그 사과가 있잖아. 우린 여기에 있고, 사자는 저 멀리 있어. 네 마법을 써서 너희 세계로 돌아가 봐. 1분 뒤면 넌 엄마 머리 맡에서 그 사과를 줄 수 있을 거야. 5분 뒤에는 엄마가 혈색을 되찾는 걸 볼 수 있을 테고. 엄마 고통이 사라졌다고 말하겠지. 곧 힘이 솟는다고 말할 거야. ..... 엄만 다시 아주 건강해질 거고. 만사가 예전처럼 잘 될 거야. 너네 집은 다시 행복해지겠지. 넌 여느 사내아이들처럼 될 거라고.”

 

 여기에 디고리가 갈등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죄를 지을 때 얼마나 자기 합리화를 잘 하는지 보여 준다. “갑자기 끔찍하게 목이 마르고 배고 고파지면서 그 과일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졌다. 디고리는 허겁지겁 사과를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사과가 많았다. 과연 한번쯤 맛을 본다고 해서 그렇게 나쁜 짓일까? 어쩌면 정문의 경고문이 꼭 명령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저 충고일지도 모른다. 누가 충고에 신경을 쓰겠는가? 설사 그것이 명령일지라도 사과를 먹으면 꼭 그 명령을 어기는 짓이 될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가져가야 한다는 부분은 이미 명령대로 한 터였다.” 그러나 디고리는 끝내 그 유혹을 이기고 오직 사과 한 알을 따서 아슬란에게 바친다.

 

아마도 작가 루이스는 인간의 원죄에 대해서 많은 부채감을 갖고 있어서 이 책에서만큼은 명령에 순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만일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 사과를 따서 엄마에게 주었을 땐 어떻게 되었을까? 아슬란은 “그 사과가 너희 어머니를 낫게는 할 것이다. 하지만 너와 어머니의 기쁨이 되지는 못했으리라. 너와 함께 어머니가 옛일을 돌이켜 보면서, 차라리 그 병으로 죽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할 날이 올 테니까.”라고 한다.

 

난 이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죄책감을 갖고 영원히 산다는 것, 사람들은 영원을 꿈꾸고, 불로장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지만, 행복한 삶이 아닌 그 영원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생화가 조화보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생명이 있기 때문인데, 그 생명이란 궁극적으로 인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생에서의 영원을 바라고 있지 않다.

 

아슬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져간 사과는 다시 이 세계로 가져오게 되고 그 사과를 먹고서 디고리의 엄마는 병이 낫게 된다. 그리고 그 사과 씨앗은 훗날, 2권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이야기에서 나니아 세계로 들어가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7권의 이야기는 모두 독립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어서 한 권만 읽어도 무방하지만 7권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앞 권의 이야기를 읽고 그 다음이야기를 읽을 때 등장인물이나 배경 등이 이미 앞에 언급되어 있어서 좀더 이해가 쉽고 흥미가 있다. 이미 읽기 시작했다면 7권을 모두 읽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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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나라 이야기 세트 - 전7권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스토리 북스)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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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가 합본되어서 성인용으로 나왔다고 하지만 내용이 똑같기 때문에  어린이들이라면 이 책으로 읽는 게 더 좋을 것이다. 합본은 일단 두께와 크기에 지레 겁부터 먹어 읽기 힘들겠지만 이 책은 양장본으로 책도 예쁘고, 합본에 비해 낱권으로 되어 있으니 가벼워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도 있다. 또 활자도 크기 때문에 빨리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림도 합본에 비해 더 많기 때문에 어린이들이라면 그림에도 한참 넋을 놓을 수 있다. 나도 합본으로 읽다가 교회의 도서관에 이 책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결국 이 책으로 읽게 되었다. 한 권을 다 읽은 후에 또 한 권을 집어드는 성취감도 느낄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책의 저자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무신론자였다가 뒤늦게 기독교에 귀의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린이 동화를 썼는데, 바로 이 책 나니아 나라 이야기이다. 1950년부터 1년에 한 권씩 7권을 써서 1956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만년에 미국의 이혼녀와 결혼하였지만 아내가 일찍 죽어 아이는 없다고 한다. 자녀도 없고 조카도 없는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어린이 동화를 쓸 수 있냐고 하자, 그는 딱 하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어린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자신이라고 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겪었을 것이지만 그 어린아이를 어떻게 자신의 기억 속에 잘 간직하고 있는지는 참 중요한 것 같다. 어린 시절 옷장 속에서 놀았던 그 기억이 결국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쓰게 하였고, 그 책을 시발점으로 하여 모두 7권의 대서사 판타지 동화가 탄생하였으니 말이다. 



이 책은 기독교인이라면 일반인에 비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것 같다. 곳곳에 복선처럼 깔려 있는 기독교적인 은유와 상징은 읽으면서 설레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나니아 나라의 탄생과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대서사적인 판타지는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이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과 같은 웅장한 스케일과 밀도 있고, 탄력적인 구성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작가의 친구인 <반지의 제왕> 작가 톨킨은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서 약까지 올랐다는 풍문이 돈단다. 톨킨 역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서도 곳곳에 기독교적인 알레고리가 있지만 이 책만큼은 많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이 세계에 사는 어린이가 우연히 반지를 통해서 나니아 나라에 가게 되고 거기서 각종 모험을 하는 이야기이다.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는 반지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옷장 속을 통해서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니아 나라에 사는 사람이 불러서(뿔피리로) 가기도 하고, 또 액자 속의 그림을 통해서 가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 가든, 그들은 나니아 나라에서 여러 모험과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악과 싸워 승리하고 다시 이 세계로 온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이 책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열차 사고로 아이들과 가족들은 모두 죽게 되고, 나니아 나라는 멸망하고 암흑으로 변하고 마니까. 그러나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님을 작가는 보여준다. 거기엔 그의 기독교적 내세관이 배어 나온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 곧, 천국을 암시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해리 포터가 하루 아침에 조앤 롤링이라는 한 여자의 머리에서만 쓰여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나라 이야기> 같은 탄탄하고 비옥한 판타지 문학이라는 토양이 있기 때문에 해리포터가 탄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선 아직까지 판타지 문학은 다른 문학에 비해 좀 비하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판타지 문학은 그야말로 척박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는 진정한 판타지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고 실제 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판타지 문학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았을 법한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으면서, 그 세계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되돌아 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좀더 깊이있게 생각해 보게 해 준다는 말일 것이다.

자, 이제 함께 나니아 나라에 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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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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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가면 마르셀 에메의 광장이 있다고 한다. 그 광장의 한 쪽엔 아주 특이한 동상 즉, 사람 하나가 건물 벽에서 빠져 나오고 있는 듯한 모습의 동상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이 책의 작가인 마르셀 에메의 대표작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동상으로 만든 것이란다. 몽마르트르에 이 작가의 광장이 조성되고, 동상이 세워진 것은 그가 만년을 보낸 집이 바로 그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가 그 곳을 몹시 사랑한 것이고, 프랑스 시민들은 그런 작가를 존경하고 사랑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나도 몽마르트르에 가서 그 동상 앞에 서 보고 싶었다.

 

프랑스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제대로 작가 대접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단편소설집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편이 없는 작가보다는  단 한 권이지만, 장편 소설을 쓴 작가를 더 대우해 주는데, 마르셀 에메 같은 경우엔 장편 소설이 있음에도 이 책으로 말미암아 더 빛을 발하고,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작가라고 한다. 프랑스 단편 문학의 거장이라면 모파상을 들겠지만, 이제 프랑스인들은 모파상보다도 마르셀 에메를 더 꼽는다고 하니, 그의 단편 문학이 어떠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책만 읽어보아도, 단편 문학의 미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일상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양념처럼 들어가 있는 판타지를 들여다보노라면 프랑스인들이 왜 마르셀 에메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하엘 엔데를 떠올렸지만, 같은 환타지 소설을 쓴다고 해도 색깔은 역시 다르다. 미하엘 엔데가 좀더 진지하다면, 마르셀 에메는 왠지 골계미가 느껴진다고 할까? 해학과 장난스러움이 엿보인다. 역자 후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는 스스로 조어를 만들어서 이젠 그것이 일반 명사가 되기도 했단다. 그 예로 이 책의 제목인 Le passe-muraille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이다.

 

이 책에는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5편의 작품에서 <속담>만 빼면 나머지 4편은 모두 판타지 작품이다. 가장 동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칠십리 장화>이다. 나는 <천국에 간 집달리>는 반전으로 인해 흥미를 느꼈고,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주제가 주는 메시지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다. 끝내 벽에 갇히고 마는 불행한 사내 가루가루.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해 벽에 갇혀야 하는 운명은 축복일까? 비극일까? <생존 시간 카드>는 그 탁월한 상상력으로 인해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이 죽었다가 또 태어나고, 다시 죽을 수 있다니... 익살스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이 그토록 불안하거나, 처절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언젠가는 잠시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 찾아오긴 하겠지만... 모처럼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친절한 역자 후기로 인해 작품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후기가 아니었다면 프랑스 언어를 모르는 독자들은 그 속에 담겨진 여러 가지 뜻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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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 말의 가치를 일깨우는 철학 동화
위베르 니생 지음, 크리스틴 르 뵈프 그림, 유정애 옮김 / 현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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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개미』가 워낙 유명하기에 우리는 이제 ‘개미’하면 베르나르의 치밀하고 정교한 작품『개미』부터 떠올릴 것이다. 그 작품에 비하면 이 책은 너무나 얇고 내용도 간결하다. 그러나 내용의 깊이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으리라 본다.

 

말의 힘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유독 말에 관한 속담이 많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거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같은 속담은 요즘도 흔히 쓰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은 똑같은 말이어도 어떻게 내뱉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이란 오해의 원천이야”라고 쎙떽쥐베리 아저씨는 『어린 왕자』의 여우를 통해서 말의 부정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때론 말은 우리를 죽음에서도 건져 올릴 수 있는 힘을 준다. 교사가 학생에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해 주는 칭찬이나 격려의 말은 얼마나 큰 용기와 기쁨을 주는가? 그 외에도 “사랑해. 고마워. 잘했어. 감사해요. 죄송해요...”  같은 말은 퍽퍽한 일상에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

 

반면에 수많은 욕이나 빈정거림, 야유, 거짓말, 비꼬거나 상대방을 비하하는 말은 가슴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한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한 말이 상처가 되어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말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우화다.

 

우리는 흔히, 개미는 붉은 개미와 검은 개미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초록 개미와 파란 개미도 있었단다. 그러나 지금 초록 개미와 파란 개미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요정 엘로이즈의 무분별한 호기심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요정 엘로이즈는 말없이, 열심히, 죽도록 일만하는 초록 개미와 파란 개미의 삶이 궁금해져서 마술봉을 휘둘러 개미에게 인간의 말을 주었다.

 

처음엔 자신들의 입이 근질근질해지면서 말이 나오자 개미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황홀하게 말에 취해서 수다의 세계에 빠져든다. 말은 생산에도 대단히 효율적이다. 더듬이로 앞 개미에게 전달하고, 전달했던 명령을 말 한마디로 모든 개미들에게 다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작업 시간은 현저히 단축되고 개미들은 여가 생활도 즐긴다. 그러나 이제 말은 다른 족속을 비방하고 싸우다 결국 양쪽 다 멸족하게 만드는 무기가 되었다.

 

초록개미에게 초록의 의미는 초롱초롱하고 총명하고 출중하고 충성스럽다는 얘기가 되지만, 파란개미에게 초록이란 초라하고 촌스럽고 촐싹대고 초치기 좋아하는 천박한 철면피라는 뜻이다. 반면, 파란개미에게 파란은 파릇파릇 귀엽고, 팔랑팔랑 친절하며, 팔딱팔딱 싱싱하고, 폭신폭신 부드러운, 기분 좋고 황홀한 온갖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초록개미가 바라 보는 파란개미란 파괴적이고, 파르르 성을 잘 내고, 팔푼이인데다 파렴치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초록개미들은 초록색은 아름다운 자연의 상징이기 때문에 초록색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고, 파란개미들은 파란색은 하늘의 상징이기에 우주를 지배한다고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서로 냄새를 통해 알아보던 개미들이 갑자기 인간의 언어에서 나온 말로 색깔을 발견해 마구잡이로 쓰게 된 것이다. 그 말은 종족간의 싸움을 일으켰고, 결국 멸종을 가져왔다. 그래서 우린 지금 파란 개미와 초록 개미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란다.

 

말이란 의사소통의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 말은 인간사회를 문명의 세계로 진보시켜 놓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침묵은 금이다' 라는 격언은 함부로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지시켜 준다. 오히려 천 마디 말보다 한 마디 말이 더 가치 있을 때가 있고, 때로는 수만 마디 말보다 눈빛 하나가 더 많은 말을 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난 그동안 내가 한 말을 생각해 본다. 오늘 무심코 던진 내 말이 누구의 가슴에 박혀 빼내지 못할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내 말이 향기가 되어 그 사람의 삶을 환하게 해 주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비수를 꽂는 말은 하지 않도록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야겠다. 아직도 난, 어떤 친구가 무심코 한 말을 수년이 지났어도 잊지 못하고, 그후부터 그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말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말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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