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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
백승남 지음 / 예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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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이 말은 도덕 교과서에서 나올 만큼 낡고 닳은 진부한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청소년기를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빠르고 세게 부는 바람과 성난 듯 거칠고 세찬 물결' 같은 청소년기는 불안하다. 그들 안에 있는 본성을 제어하기에 그들의 이성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세상은 낯설고 매혹적이다. 발 한번 잘못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듯 위태롭다. 이 소설은 그 불안함을 우리의 전통신화를 빌려와서 보여주고 있다.

서양 신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흑문도령이니 흑수문장, 자청비라는 신의 이름은 낯설고 어색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에게 조금 친근함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신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생은 나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라 만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검은 수첩을 발견한 ‘나’는 그 후로 자신 안에 새로운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수첩은 문신, 즉 명계의 문지기 신이 놓쳐서 이 세상에 들어온 것으로 ‘나’가 거울 문자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뒤부터 ‘나’는 문신의 주인이 되고 문신은 ‘나’의 명령에 복종하게 된다. 나의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는 힘, 그 덩어리는 정의의 사도도, 악의 화신도 아닌 나의 상태나 감정에 따라 선한 일에 쓰이기도 하지만 악의 도구로도 쓰인다. 나는 그 덩어리의 부추김으로 감정을 절제할 줄 모르고 지극히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특징인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자아를 검은 수첩(괴물)으로 상징화시키고 있다.

 무협지나 판타지, SF소설을 즐겨 읽던 ‘나’는 마치 판타지소설의 주인공인양 그 폭력의 세계에 빠져든다. 문신의 이름인 흑문도령은 나의 불온한 기운을 감지하면 ‘나’를 화나게 한 대상(선생이나 친구 등)에게 화를 입히게 한다. 말로써가 아니라 ‘기’로 명령체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검은 수첩을 손에 넣은 뒤부터 몇 배의 힘을 가지게 되어서 손길 한 번, 발길 한번에 상대방은 만신창이가 되며 곤두박질치곤 한다.

한없이 강해지고 싶은 욕망은 결국 나쁜 녀석을 손 봐줄 때면 자기 안에 감추어진 엄청난 에너지를 표출하게 만들고 점점 나는 반 친구들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나’가 점점 강해질수록 반면에 문신은 점점 약해진다. 내가 강해지는 건 내 안에 있는 힘, 덩어리(검은 수첩)가 계속 유혹하는 것이고, 그 힘의 정체는 이제 괴물이 되어서 ‘나’를 부추긴다.
 “넌 신의 아이야. 세상의 악을 다스리도록 신이 너를 선택한 거라고”
라면서... 그것을 안 문신은 말한다.
 “빛에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강한 힘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대왕님 말씀이야. 넌 원한  만큼 힘을 얻었지만 대신 대가를 치러야 할 지도 몰라. 더 늦기 전에 그걸 돌려주고 날 놓아주지 그래.(P71)

그러나 '나'는 검은 수첩을 손에 쥔 뒤부터 자신 안에 있는 괴물 같은 힘의 정체가 어디서 온 것인 줄을 알기에 아직 버리고 싶지 않다. 그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싶은 욕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악의 무리를 응징하는 고독한 기사가 되어 썩은 세상에 홀로 저항하는 무림의 떠돌이가 되어 나는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두른다”(P75)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법. 폭력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뒤 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병원에서 자기처럼 신의 도움을 받고 있는 완수형을 만나게 된다. 그 형을 만난 뒤 나는 검은 수첩을 문신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내 안의 덩어리, 그 괴물은 ‘나’를 떠나기를 거부한다. ‘나’는 검은 수첩만 있다면 ‘내’ 안의 에너지가 증폭되는 것을 느끼지만 그 에너지는 결국 자기를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감지하고 떠나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선 자신과 괴물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폭력배들로부터 끊임없이 유혹과 도전을 받지만 ‘나’는 그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결국 그 힘이란 자아와의 싸움이다. 내 안의 덩어리의 실체는 주체할 수 없는 10대의 광기, 폭력성,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원초적인 본능 같은 것이다. 아직 이성으로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청소년기의 본능은 이성적인 인간과 대립하면서 지독한 통과의례의 한 과정을 보낼 것이다. 이 소설의 ‘나’는 덩어리의 유혹을 이기고 자유의지로 자신을 선택한다. 그 자신이란 ‘신의 아이’로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의 아이’인 것이다.

이 소설엔 주인공의 이름이 없이, 그저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나’로 서술된다. 작가는 ‘한 순간 삶의 균형 감각을 잃고 헤매다가도 다시금 비약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든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15세의 청소년들이 이 소설의 ‘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안에 또 다른 나, 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부분에서 중간부분까지는 리얼하게 묘사된 폭력과 흑문도령, 검은 수첩에 대한 묘사가 너무 섬세해서, 아무리 판타지를 차용했다고는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결국 자기 안의 또 다른 ‘나’인 괴물(즉 본성, 충동성 등)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버티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주제와도 잘 녹아들어 감동을 준다. 무협이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또 다른 흥미를 갖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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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1-2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내용이군요~~~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카라 2007-11-2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순오기 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다니요^^
사고 싶은 책을 공짜로 살 수 있게 되어서 참 기쁘네요. 알라딘은 잊을만 하면 1년에 한 두번씩 이렇게 기쁨을 주는군요. 더 열심히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듭니다.ㅎㅎ
저도 순오기님의 리뷰를 보고 새로운 책 소개를 많이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댓글도 달아 주시고, 기쁜 소식도 전해 주시고... 행복하고 따뜻한 겨울 되세요^^
 
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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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열 여섯의 아이들은, 17세기 조선시대 춘향이와 이몽룡이처럼 달밤에 취해 사랑을 나누며 황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 아니다. 굴러가는 가랑잎에도 허리를 꺾으며 웃을 수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구도자일 수도 있는, 지나치게 가볍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극점에 있는 나이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규칙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을 만큼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세상은 그들의 제어할 수 없는 뜨거운 피를 오직 미래를 담보로 제물로 삼고 있다. 공부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그들은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기성품처럼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대량 생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모범생이 될 수 없는 아이들은 일탈을 꿈꾸며 규범 밖에서 맴돌고 있다. 누군가 봐주기를 기다리듯이...  아니, 우리도 살아있는 생물체라고 절규하고 있다. 그 절규는 노래로, 춤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론 침묵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사생아로 태어나 외증조 할머니와 둘이서 사는 연호, 가수가 꿈이지만 한사코 집에서 반대하는 민기와 현중, 얼굴에 커다란 반점이 있어 점박이, 혹은 달마시안이라고 부르는 공개 입양아 준희. 이들은 환경과 처지는 다르지만 모두 16살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평탄하거나 찬란하지 않다. 한없이 비루하고 위태롭다.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단 한번의 실수로도 영원히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할 것 같은 아찔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환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꿈을 찾아 고뇌하는 아이들의 일상은 오히려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삶의 위대함이란 이런 비루함 속에서 오히려 보석처럼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사생아로 태어난 연호는 자기보호 본능이 누구보다 강하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미리 방어막을 싸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 타인과 거리를 두며 살고 있다. 그런 연호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차라리 애처롭다. 그러나 연호가 마음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으로 나올 때, 세상은 그리 삭막한 곳은 아니었다. 친구가 있었고, 연호의 꿈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은 꿈꾸는 자에겐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각자 환경과 처지가 다른 아이들이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주머니 안에 있는 고래 때문일 것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그 고래가 너무 작아 살아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고,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고래는 크든 작든, 어떤 모습이든 간에 꿈틀꿈틀 아이들의 주머니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삶이 너무 버거워 호흡조차 힘든 우리들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주머니 속을 만져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 만져지는지... 무엇이 만져지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 주머니를 뒤집어서 현미경이라도 꺼내 자세히 관찰해 보라.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현미경으로 본다면 작은 고래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인생을 다 살아보기 전까진 우린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것, 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속단하지 말라는 것... 작가는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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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1
제리 스피넬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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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라는 이름은 마치 중세시대의 ‘주홍글씨’ 같아서 한번 새겨지면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천형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문제아라는 이름 때문에 정말 문제아가 되었을까? 그래서 결국 문제아는 실패자가 되었고, 그 실패자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만다. 동화작가 박기범의 「문제아」를 읽고서 난 어른으로서 갖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문제아」의 주제처럼, 문제아로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아를 만든다.

박기범의 「문제아」와 동일 제목의 이 책 「문제아」도 제목만큼 주제가 같다. 다만 박기범의 「문제아」가 좀더 배경이나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무거울 뿐이다. 이 책의 문제아, 징코프는 언제나 유쾌하고 즐거우며,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다. 학교가 너무 너무 좋아서 새벽부터 학교에 가는 아이. 그렇게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학교가 좋고, 선생님이 좋고, 친구들이 좋지만 문제는 학교와 친구들은 징코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징코프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사랑해 주는 얄로비치 선생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징코프를 모자라는 아이, 또는 문제아로 취급하며 지나간다.

가장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에 교실을 두리번거리다가 헥터를 일단 친한 친구로 정하고, 그 다음부터 헥터와 가장 친한 친구와 되기 위해 애쓰는 징코프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사랑스럽다. 한번 웃음이 터지면 그칠 줄 모르는 아이, 소화기가 약한 탓으로 먹은 것을 자주 토해내는 아이. 운동회 때 자기 때문에 우승을 놓쳐 다음 번에는 아예 껴주지 않자, 학교에 가지 않고 동네 할머니를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징코프를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 목이 메이기도 했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사실 그런 아이들 모습은 우리나라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징코프는 비록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에 있어서 서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다. 그러기에 그토록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옆집 꼬마 클로디아가 눈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몇 시간이나 클로디아를 찾는다. 사실 클로디아는 금방 찾아서 집안에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른 징코프는 거리 곳곳을 찾아 헤매다 거리에 쓰러진다. 뒤늦게 징코프를  찾아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 아이들은 그런 징코프를 역시 문제아(모자란 아이)라고 취급한다. 그러나 부모님과 클로디아의 부모님은 알고 있다. 징코프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아이인지를.

아무리 힘들어도 ‘식은 죽 먹기지’ 라고 하며 힘을 주는 우체부 아빠, 아무리 경기에서 져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는 엄마. 그래서 ‘천 번이나 축하해’ 라고 해주는 엄마가 있기에 징코프는 외롭지 않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징코프의 영혼은 누구보다도 맑고 깨끗한지 모르겠다. 징코프는 문제아가 아니라 좀 특별한 아이다. 너무나 사랑스런 특별한 아이. 세상의 아이들이 징코프를 닮는다면 오히려 문제아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아니, 세상의 어른들이 징코프를 닮아야겠다. 그래야 '주홍글씨' 같은 문제아의 편견을 벗어버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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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스 극장의 연인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
자닌 테송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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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들어간 책은(영화도 마찬가지로) 뒷 내용을 알고 읽으면 묘미가 반감될 수 있다. 그러나 한번만 읽거나 본다면 그 의미를 전부 알기 힘들다. 그래서 두 번 보거나 읽어야 앞부분에 깔아놓은 복선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이 책이 반전의 이야기라는 사실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반전의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는 항상 긴장하며 읽는다. 이번엔 속지 않고 제대로 복선을 파악하며 읽을 것이라고... 그러나 내 머리의 한계인지 난 매번 속고 다시 읽거나 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전에 ‘식스 센스’라는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해서(물론 그 영화 이 후에는 뛰어난 반전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단한 반전 영화가 아니었을까?) 내 딴에는 잔뜩 긴장하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반전이 드러날지 보았지만 결코 허를 찌를 수밖에 없었던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속임수에 난 다시 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두 번 보았다. 그때서야 곳곳에 숨겨 있는 복선들을 음미하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일본 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고 한참을 멍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반전은 너무나 의외여서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책 읽는 유쾌함에 빠져들었다. 이 책 『뤽스 극장의 연인』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를 해 주고 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뒷부분의 옮긴이의 글을 읽기 전까지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소설은 상처받은 젊은 연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뤽스 극장은 누가 봐도 한물간 영화관으로 평소에는 ‘저급 영화’라고 무시하는 상업 영화들을 상영하지만 매주 수요일만은 ‘진정한 영화’의 영광을 기리는데 하루를 바치는 극장이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 여섯시와 아홉시면 추억을 만나러 온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 낡아빠진 벨벳 의자에 기댄 채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젊은이들로 절반쯤 채워진다.

스물 세 살의 피아니스트 마티외라는 남자와 열 아홉 살의 영문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마린이 매주 수요일 이 영화관을 찾는다. 마린은 편안하고 다정한 목소리 마티외에게, 마티외는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마린에게 호감을 갖는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점차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한다. 서로의 깊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안다면 언젠가는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못하면서도, 늘 안타까움으로 서로를 그리워 하고 있다.

두 연인의 밀고 당기는 속마음은 독자를 점점 더 안타깝고도 애절하게 한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그 상처는 무엇일까? 읽는 내내 도대체 어떤 상처가 있길래 저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나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복선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들의 상처가 무엇인지에만 골몰한 채 읽어나가다가 뒷부분에 가서 아!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가슴이 아퍼왔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따뜻한 작가의 시선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옮긴이의 글을 읽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곳곳에 깔려 있는 복선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는 첫 번째 그들의 상처에 골몰하면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한다.

「연인들」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던 날, 그들은 영화의 내레이션에 대해서 말한다.
-그녀는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마린은 생각한다. ‘그래 다른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나를 짓누르는 이 무게를 견디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이 되어서 이 남자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그의 손을 내 목에 갖다 댄다면...’

-사랑은 단 한번의 눈길로도 생겨날 수 있다 -
 마티외는 ‘사랑이 생겨나는 데는 눈길조차도 필요 없어. 시인 아주머니 뭘 모르는군요...’라고 중얼거리는 한편 마린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거야 쉽지, 하지만 사랑 받을 수 없을 땐...’ 하며 목이 메인다.(p53)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었을 때의 놀람,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더듬으며 서로를 알아갈 때의 따뜻함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동병상련을 이들만큼 잘 알 수 있을까? 106쪽 밖에 안 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따뜻함의 분량은 그 어떤 두꺼운 책보다 결코 덜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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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 우리문고 10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이경옥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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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기우뚱거리며 균형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삶에 균형을 잡고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나의 삶 역시 늘 삐걱거리며 균형을 잃은 채 좌충우돌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 어려서는 어른이 되면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 힘든 시기를 겪게 되면, 이 시기를 지나면 다시 나의 삶은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늘 생각하며 견뎌내지만 삶이란 한 고개 넘기면 또 다른 장애가, 더 큰 장애가 기다리고 있는 걸 이젠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 다짐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대체로 좋은 친구를 사귀기, 공부를 열심히 하기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주인공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결심을 하게 된다. ‘쿨하게 살기. 친구를 사귀지 않기'이다. 주인공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초등학교 5,6학년 때 일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맞추고, 주위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신경을 쓰던' 주인공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왕따(괴롭힘)을 당한 후부터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쿨하게 살기로 했다. 즉 이제부터는 당하는 쪽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쿨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그의 상처는 내면에 앙금처럼 남아 있어서 불쑥불쑥 꿈으로 나타나고 식은땀을 흘리며 벗어나려고 한다. 그래서 15살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괴롭혔던 친구에게 전화를 건 후 아무말없이 있다가 끊는 일이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30살의 사라를 만난다. 주인공은 사라가 초록 아줌마라고 생각했고, 위급한 상황일 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초록 아줌마란 아이들 사이에서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는 풍문 속의 여자이다. 비록 초록 아줌마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없는 주인공에게 사라는 마음을 나누게 되고 친구처럼 지낸다. 그러나 사라에게도 주인공 소녀 못지 않게 상처를 안고 있다. 디자이너가 꿈이었지만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지 못한 사라는 회사를 향해 복수를 하고 있었다. 결국 둘은 자기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 상처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주인공은 진짜 초록 아줌마를 만난다 할지라도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초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에게 찾아가 당당히(?) 복수를 한 것이다)

 

아이이건 어른이건 이 사회에서 균형을 잡고 살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가슴속에 크든 작든 응어리진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그 상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기우뚱하게 만든다.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좀 무거운 주제임에도 간결한 문체와 현실감 있는 묘사로 가독성을 갖게 해 준다. 일본 소설이지만 굳이 일본뿐만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흡사해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쿨하게 산다는 것은, 그리고 쿨하게 살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싶은, 가면과 갖지 않을까? 그만큼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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