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때 우리는 세계화가 지상 최대의 과제라도 되는 듯, 세계화에 매달렸고 세계화를 부르짖었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과 그에 따른 신자유주의 이념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면서 정치, 경제,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온통 경쟁력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린 여기 저기서 세계화 반대 운동에 시위하는 모습들을 낯설지 않게 보고 있다. 세계 정상들이 만나는 회의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시위자들이, 모임이 있는 건물 앞에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젠 알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지... 그 이면에는 패권국가들의 횡포가 얼마나 무섭게 도사리고 있는지를... 세계화는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의 다양성을 획일화시킨다. 그러나 환경파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세계의 자연적인 생물학적 및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이테크에 기초한 단작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시도이다. 생명의 지속은 궁극적으로 다양성에 의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티벳의 작은 마을 라다크를 방문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일종의 여행기이지만 이 여행기는 여느 여행기와는 달리, 생태 환경의 고전이라 할 만큼 뛰어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라다크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라다크를 살리는 것은 곧 우리가(전 지구인이) 사는 길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서구 문명이 유입되기 전, 라다크는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삶의 여유가 있었다. 그 때는 시간도 더디게 흘렀다. 화내는 것이 죄악이 되고, 늘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고, 가족관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이웃과 이웃사이에는 정이 오갔다. 돈이 필요치 않았고, 자기들이 가진 것만으로 만족해하며 살았다. 그러나 서구 문물이 유입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현대식 교육은 아이들을 서구화된 도시 환경 속에서 좁은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킨 반면에 그들의 문화와 자연, 삶으로부터는 유리시켜 놓았다. 무엇보다 라다크 아이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데 문제가 있다. 자신들의 전통이 부끄러운 것이고, 자신의 삶은 퇴보한 것이고, 오직 서구의 발전된 모습만이 진보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라다크에 서구 문화의 유입은 라다크인들을 땅으로부터 유리시켜 놓았으며 결국은 세계 경제의 최하위에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 후 라다크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병폐들 그대로이다. 환경파괴와 전통적으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문명병, 즉 암이나 뇌졸증, 당뇨병들이 그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스트레스, 인간성 상실, 가족과 공동체간의 유대가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고독, 친구간의 경쟁 등 전통사회에서는 보지 못한 폐해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난다.

 

라다크인의 일처다부제의 전통은 인구를 적절히 조절해 주었지만,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 젊은이들은 일부일처제를 택함에 따라 인구는 심각하게 증가하게 된다. 또 그들에게 죽음은 이생의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죽음에 대해 보통 사람들보다는 좀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계속적인 회귀과정의 두 양상으로 보고 있기에 죽음과 화해를 이룬 문화였다. 그러나 서구문화의 유입은 이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개발의 힘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지녀왔던 자부심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자신을 부정하고, 패배자로서의 의식만을 갖게 해 주었다.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월이나 열등으로 이분화 할 수 없다. 어떤 문화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계화가 가져온 재앙은 문화의 우열을 가져왔고, 전지구적인 소비주의 단일 문화를 창출해 냈다. 농업체제는 붕괴되고, 한때 존경받는 농사일은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다. 전통의술은 무시되고, 신식 의술만이 과학적인 것으로 존중받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라다크 사람들에게 최우선의 문제는 공존이다. 돈을 좀더 많이 버는 것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책에는 물질의 천박함을 지적하면서 정신적 빈곤에서 해방되고, 사회적 생태적 균형을 찾기 위해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탈중심화이다. 경제의 탈중심화, 에너지 생산의 탈중심화는 지역의 결속을 강화하고, 여성의 지위는 향상시키며 남성적 가치와 여성적 가치 차이의 균형을 회복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서 제1부 「전통」에서는 서구문물이 유입되기 전의 라다크인의 삶의 모습을 조명하고, 제2부 「변화」에선 서구 문물이 유입된 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그 변화는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다), 제3부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선 이제 그 대안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제시되고 있다. 3부는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라다크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라다크로부터 배워야 한다. 라다크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창인 것이다. 저자의 애정이 진하게 묻어 나온 이 책을 읽으면서 라다크가 획일화된 서구 문화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새 시대를 열기를 간절히 염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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