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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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미래를 위해 저당 잡혀 있는 9의 삶. 그러니까 내게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위안, 아니 복수의 방법은 죽음뿐이었어요.

허들 P68


주제작 「허들」은 유서를 쓰는 '나'의 이야기이다. 남동생의 유학 비용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복수(?) 하고 싶은 마음에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자신도 유학을 가고 싶다는 '나'에게 엄마는 <견디는 삶>을 반복하라고 이야기한다. 가끔 희생을 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드라마나 글을 보면 엄마도 딸이었던 때가 있었을 텐데 왜 같은 삶을 강요하는 것일까? 그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암담하지 몸소 겪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과 같은 인생을 딸에게 견디라고 하는 강요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딸이 없어서일까?


<엄마, 엄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라며 돌아가신 엄마,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이에게 질문하는 '나'는 잠 못 드는 밤에 <양 네 마리, 양 여섯 마리, 양 아홉 마리>를 센다. 밤에서 새벽으로 변해가는 시간, 날이 밝으면 다시 삶은 계속 되어 진다. 멈치지 않고 계속 될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무엇으로 정했을까?

「소년과 소녀가 같은 방식으로」에서 영도는 탈북민이다. 살고 싶어서 탈북을 하고 3년을 해외에서 떠돌다 한국에 온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나게 된 지하방에서 사는 작가 지망생은 영도에게 험하게 살았겠다며 밥도 굶고, 먹을 게 없어 사람도 먹고 그러다면서요라고 말한다. 영도는 굶지 않고 살아있으며 그런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불쌍하다. 나보다 더한 인간들이니까 등의 말 중 무엇이 영도를 화나게 했을까? 다른 이들처럼 밥을 먹고 잘 살아가는 평범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한 것일까? 타인을 보는 시선앞에 가득한 장애물들을 치우고 싶다. 죽을 위기의 메콩강을 건너 다른 세계로 왔지만 이곳도 이전 세계와 다를 게 없으며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곳은 공평한 세상이고 건너야 할 다른 세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영도가 꿈꾸는 또 다른 세계는 존재할까?


이 책에 나오는 이들은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평범이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단어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럽게 다가왔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들이 과연 평범한 것일까? 지구의 80억 인구가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데 평범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회 통념이 정한 평범에 맞추어 살아가지 않는다면 실패한 인생인가? 누구나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을 특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의 전반에 흐르는 느낌은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발버둥과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견디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찾아가는 이들에게 기대를 하게 한다. <너무 뛰지 않기로 했다.>는 작가의 말대로 때로는 내 앞의 장애물을 뛰어넘는 대신 기권을 선택하거나 돌아가는, 전력 질주의 삶에 여유로움을 한편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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