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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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죽지 않을 거다.

내가 죽을 리 없다.

나만큼은······.

귀중하니까.

핀처 마틴 P17


'배가 난파당해서 바위섬에 올라 살아남았다'라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이 책의 몇십 페이지에 걸쳐서 나온다.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 손의 선을 따라서 다시 방수복의 한쪽 소매, 한쪽 어깨가 시작되는 곳까지 좇아갔다. P31>처럼 핀처 마틴의 시선과 생각, 감정들이 세밀하고 치밀하게 촘촘히 그려진다. 심리, 풍경, 상황, 행동 등이 마치 관객이 존재하는 연극의 한편을 보는 시나리오처럼 디테일하였다. 실제로 윌리엄 골딩은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핀처 마틴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묘사이지만 우리 주위에도 현시대에도 있는 군상의 모습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 대해 강력한 집착을 가진다. <난 살아남을 거야! P93>라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마틴의 모습을 독자는 보게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이입이 되어 간절해지기도 한다. <나는 지성적이다. P41>이라 생각을 하며 차근차근 자신의 상황을 파악해 나가던 마틴은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롭다고! P200>라며 점점 미쳐간다. 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조차 망망대해 바다에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추체험인 것일까?


학생 : "핀처 마틴이 죽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골딩 : "영원히 걸립니다."

학생 : "아니 실제 시간으로는 얼마나 걸리나요?"

골딩 : "영원히 걸립니다."

핀처 마틴 P288


골딩은 서식스의 강연에서 한 학생에게 핀처 마틴이 죽기까지의 시간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그의 대답은 <영원히>였다. 마틴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는 것일까? 물리적 시간은 유한하지만 상대적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일까? 사람이 죽기 전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이 시간은 누군가에는 찰나라 느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원처럼 길 수도 있다. 그러나 마틴의 길고 긴 이야기를 주마등이라는 단어로 묶어두기에는 너무 깊지 않을까? 죽음 앞에 나의 주마등은 어떤 장면들일지...


핀처 마틴 1956년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인 함대에서 해군으로 근무하는 <크리스토퍼 해들리 마틴>의 이야기이다. 제목의 핀처 마틴의 핀처(Pincher)는 해군에서의 별명이며 <꼬집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핀처의 육체적인 욕망을 뜻한다. 별명처럼 원하는 모든 것들을 탐욕스럽게 꼬집는다. 그리고 그의 성인 마틴은 <화성(Mars)이라는 뜻으로 호전적인 성격을 상징한다. 크리스토퍼(Christopher)라는 그의 진짜 이름의 의미는 <십자가를 지는 자>라는 뜻이다. 핀처의 영혼을 상징한다.


윌리엄 골딩은 자신의 1954년 발표한 파리대왕으로 198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는 오늘날까지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1956년 핀처 마틴을 발표하는데 세간에서는 그의 문제작으로 평하기도 한다. 골딩은 옥스퍼드 대학교를 다녔고 연극계에서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2차 세계 대전 당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이는 핀처 마틴도 비슷하다. 골딩 자신이 경험을 작품 안에 어우러지게 한 것이다.


<방수 장화>에 대한 부분이 여러 번 나오기는 하였지만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처음으로 돌아가 방수 장화라는 단어를 다시 찾아보았다. 방수 장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것을 선택했을까? 바다라는 공간이 의미가 있나? 파리대왕만 큰 어려운 책에 윌리엄 골딩이 전하고 한 의미를 반에 반도 이해는 하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쿡쿡 찌른 것의 정체를 알게 되면 조금은 알 수 있을까? 백지민 번역가의 작품해설의 <다시 읽어 본다면 핀처 마틴이 작품 내내 마치 바늘로 눈을 찌르는 듯한 예리한 깨달음들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P310>라는 글을 믿고 다시 한번 정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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