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난파당해서 바위섬에 올라 살아남았다'라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이 책의 몇십 페이지에 걸쳐서 나온다.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 손의 선을 따라서 다시 방수복의 한쪽 소매, 한쪽 어깨가 시작되는 곳까지 좇아갔다. P31>처럼 핀처 마틴의 시선과 생각, 감정들이 세밀하고 치밀하게 촘촘히 그려진다. 심리, 풍경, 상황, 행동 등이 마치 관객이 존재하는 연극의 한편을 보는 시나리오처럼 디테일하였다. 실제로 윌리엄 골딩은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핀처 마틴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묘사이지만 우리 주위에도 현시대에도 있는 군상의 모습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 대해 강력한 집착을 가진다. <난 살아남을 거야! P93>라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마틴의 모습을 독자는 보게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이입이 되어 간절해지기도 한다. <나는 지성적이다. P41>이라 생각을 하며 차근차근 자신의 상황을 파악해 나가던 마틴은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롭다고! P200>라며 점점 미쳐간다. 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조차 망망대해 바다에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추체험인 것일까?
학생 : "핀처 마틴이 죽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골딩 : "영원히 걸립니다."
학생 : "아니 실제 시간으로는 얼마나 걸리나요?"
골딩 : "영원히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