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터-리뷰 - SIRO ; 시로 읽는 마음, 그 기록과 응답
조대한.최가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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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 보편성>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고 각자의 주관에 따라 쓰는 서평도 이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같은 책을 읽어도 다양한 생각의 글들이 나오고 자기 나름의 책에 대해 편파인 감상을 적는다. 공정하지 못한 것과 모든 것에 두루 미친다는 두 가지 뜻이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럼에도 묘하게 어울리며 납득이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 편의 시에 대하여 조대한 평론가와 최가은 평론가가 함께 이야기하고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형식이다. 이런 방법으로 시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는 단어 하나하나에 함축된 의미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함의된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것이다. 두 분이 만들었다는 블로그 <시로>를 찾는데 많이 헤매었다. 시로, SIRO와 평론가 두 분의 이름 등등으로 검색하여 겨우 찾았다. 책에 실리지 않은 작품 리뷰도 있어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화려한 뉴욕의 밤거리를 걷다가

검고 반짝이는 구두를 샀네.

미숙한 기관사는 정차와 달리기를 반복하고

탭댄스를 추듯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발을 살짝 밟기 위해

시, 인터-리뷰 P24


주민현 작가의 <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의 인터뷰는 작가의 세계관(?)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친구가 맨해튼 다리 아래에서 찍어서 보내준 영상 하나에서 이러한 단어들이 나왔다는 게 존경스럽다. 시의 조금 앞 부분 중 <25층에서 오랜 욕실 전화에 시달린 사람이 기절하거나 승강기를 고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해.>의 이들은 뉴스의 단신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이들이다. 금방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슬픔을 잊어가는 사람의 발을 밟아 일깨워주고 싶어 한다. <이 비극적인 도시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무심한 "발을 살짝 밟기 위해서."라는 조재한 평론가의 마지막 문장에 짧은 순간 여러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파이프, 구두, 영화, 뉴욕, 맨해튼, 브루클린 다리, 공휴일의 텅 빈 월스트리트는 옛 뉴욕을 모습을 떠올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단어들이 가진 「은유」들의 연결은 시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주민현 작가는 주연들보다 조연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궁금하다고 한다. 가끔 잠깐 등장하고 사라지는 엑스트라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취향이라 살짝 웃었다. <페이드아웃과 페이드인>이라는 단어는 시를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연결되게 하며 머릿속에서 재생되어지게 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맨허튼다리 아래 서 있는 느낌을 들게 하였다.


블라인드를 내린다.


베개를 움켜쥔다.


내 것이 아닌 건 이토록 부드러워

다른 꿈 다른 느낌으로 갈 수 있다고 믿은 적 있다.

시, 인터-리뷰 P121


김연덕 작가의 <웅크리기 껴안기>에 나오는 동전, 초콜릿, 음악, 새벽, 시트, 먼지, 블라인드, 베개 등은 너무나 익숙한 단어들이다. 따로이 있던 단어들이 시 안으로 들어가 연결이 되어지면 문장이 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단어 사이사이의 조사들이 평범한 글자와 어우러지며 읽는 이는 나름의 감정을 보게 된다. 침대에 누워 어스름히 밝아 오는 새벽 풍경이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 <시트에 이는 먼지가 시트와 빛으로 나뉘는 시간>이라는 문장도 좋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와 침대 사이를 먼지들이 부유하며 떠다니는 공간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일 때가 많다. 간밤에 닫아 둔 내려진 블라인드, 부드러운 베개, 무거운 머리. 일어나고 싶지 않아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꿈으로 넘어가 더 꿈속에 있고 싶은 것일까?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 풍경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소설은 긴 문장으로 상황 등 여러 설명들이 정보를 전달해 준다. 하지만 시는 짧은 문장들 안에 은유와 함축 등을 담아 두기에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전문적인 평론가의 리뷰와 작가와의 인터뷰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이러한 시도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짧게 짧게 등장하였다. 그것만으로 궁금증을 일으키는 시들이나 책이 있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다.


시가 이상하게 어렵다고 생각되어지며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분들에겐 더없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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