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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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즉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세 명의 노인은 자살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만난다. 세 노인들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전혀 모르던 타인들이 어느새 자신의 삶에 스며들었음을 깨닫는다. 책을 읽어나가며 주의를 기울인 것은 이야기의 시점이 자주 바뀌어 서로가 어떤 연결점을 가지는지 찾아가며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아들, 딸, 손녀, 손자, 알고 있던 지인 등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노인들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간단히 장례식만 치르고 더 이상 만남이나 연락이 없었다면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의 만남이나 연락의 연결고리의 시작은 누구였을까? 모두에게 활발하게 다가간 하즈키였을까, 송별회를 열자며 가족들을 모으려 한 준이치였을까? 이런 물음을 던지며 읽어나가다 문득 누군가와 계속 소통이 이어졌다는 것은 한쪽만 일방적인 경우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하즈키의 메일에 로코가 답장을 하지 않았다면, 준이치가 건넨 사탕을 미도리가 받지 않았다면, 도우코가 보낸 라인 메시지에 유우키가 대답하지 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즈키와 로코가 서로 메일을 주고받는 이야기도 글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기에 의미가 큰 부분이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미도리가 준이치를 찾아간 장면이었다. 아버지 간지 씨의 죽음에 슬퍼 시시때때로 울음을 터뜨려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까지 먹는 미도리가 왜 준이치를 찾아갔을까? 그녀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책을 모두 다 읽고 다시 그 부분을 읽어도 모두 납득을 못하였다. 마치 이 책이 내어 놓은 숙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몇 번의 재독을 다시 할 것 같다.


"나는 이미 끝났으니까" P152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P153


그때는 이미 죽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P155-156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중


세 노인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다. 허나 그 이유 하나하나에 반박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인들 중 누군가의 죽음을 볼 때, 드라마, 영화 등에서 죽음이 등장할 때나, 뉴스의 사건사고 등으로 너무나 쉽게 죽음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은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해 볼 것이다. 태어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과연 이것을 선택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윤리적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이미 떠난 이들은 대답할 수 없기에. 그럼에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정말 마지막 선택이 이것밖에 없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봤으면 한다. 삶은 혼자서 인생의 비를 맞으며 종이우산을 쓰고 가는 것이다. 맞다보면 찢어진 곳으로 들이치는 비에 맞아 아프다. 그러나 그 고통을 혼자서 참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한다. 종이 우산을 쓰고 있는 또 다른 이가 옆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서로가 기억하는 간지 씨, 츠토무 씨, 치사코 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메일을 주고받으며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써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할머니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그들의 선택을 이해해가는 모습들을 보며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세 노인이 그렇게 떠나기 전에 알았더라면 그들의 선택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맞다고 우겨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핸드폰을 들고 친정아버지와, 시부모님들께 차례로 전화를 드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라는 궁색한 핑계를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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