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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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사무직보다는 현장직을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처음 떠오른 생각과 너무 다른 내용들이 나왔다.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책인 만큼 짚어야 할 것도 논의하거나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 마지막 장을 덮으니 무수히 많은 인덱스가 붙어 있었다. 어떤 문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이 몰려왔다.


저자인 '데니스'와 '아네르스'는 스웨덴의 사회학자 「롤란드 파울센」의 논문에 대한 토론하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만난다. 각자 반대되는 진영으로 출연했던 그들은 토론회 후 수년이 지나 서로의 일터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후 만나 연구를 시작한다. 그들은 노동 현장에 있는 많은 이들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이메일로도 접하기도 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가짜 노동에 대하여 토로하여 연구의 범위는 더 확장시킨다.


「산업화 사회」를 거치며 귀족들이 터부시하던 노동의 가치가 올라가며 자본가들에게로 권력이 넘어갔다. 노동가치를 시간 단위로 측정하여 임금을 지급하며 노동시간은 더욱 중요하게 되면서 가짜 노동이 생겨났다. 현장직들의 노동시간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인 사무직들이 늘어나면서 가짜 노동도 늘어난다. 저자인 데니스와 아네르스는 『무대 앞 노동』과 『무대 뒤 노동』으로 구분하였다. 무대 앞 노동은 현장 근로자들을, 무대 뒤 노동은 그들을 지원하고 조율하고 감독하는 관리직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단계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며 무대 뒤 노동은 급격히 확장된다. 그들은 컨설턴트, IT 전문가, 관리자, 연구자, 경영인, 홍보팀, 지원팀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현장직들은 일의 진척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리직인 사무직들은 누군가의 일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가짜 노동이 생겨나는 원인이다.


모든 무대 뒤 노동이 가짜 노동은 아니다. 관리자는 공장 업무를 조율하고 예산을 세우고,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진짜 노동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무대 뒤 노동이 너무 빨리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잉여노동이 발생하게 되었다. 회사는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아니라 그들이 일한 근무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모두 종료되어 진행해야 하는 업무가 없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다른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인가? 상관에게 업무가 없다고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없다고 하면 회사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책상 위에 서류더미를 쌓아놓고 컴퓨터는 켜놓으며 바쁜 척을 하거나 동료의 일을 방해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을 느리게 하거나 의미 없는 미팅을 만들거나 회의 시간을 길게 한다.


예전에 읽은 바로는 덴마크의 관리자는 주당 평균 17시간을 회의에 쏟는다더군요. 심지어 그 수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고요. 그걸 반으로 줄이면 우리처럼 일주일에 4일만 일하고도 같은 효율을 낼 수 있을 거예요. 가짜 노동 P259


가짜 노동을 눈치채고 이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인 몇몇의 기업이 있다. 그중 하나는 IIH 노르딕사이다. 그들은 목요일까지만 근무한다. 저자들은 노르딕의 헨리크 스텐만 이사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스텐만은 저자들에게 「파킨슨 법칙」에 대해 질문한다. 노르딕사는 이 파킨슨 법칙을 뒤집어서 적용하였다.


파킨스 법칙은 주어진 시간만큼 일이 늘어진다는 것이다. 노르딕사는 반대로 근무시간을 줄이면 일은 결국 제한된 시간 안에 할당되어 끝날 것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IIH 노르딕은 직원 모두의 책상에 빨간 점멸등이 있어 그곳에 불이 들어오면 업무 시간으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이메일과 전화도 받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휴식을 한다. 이 방법은 업무 집중력이 올라가 적은 시간으로도 빠른 업무처리가 가능하고 일을 마친 후 주어지는 휴식시간의 보장으로 만족도도 올라간다. 이에 IIH 노르딕은 회사의 매출 증가는 물론 근무시간이 줄어든 후 세전 수익이 거의 두 배가 되었으며 직원들의 병가는 50%가 줄었다. 또한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스트레스 지주는 최저 수준이 되었다. 그에 반해 근무 의욕과 삶의 질은 올라갔다.


이 사례를 보면 그동안 가짜 노동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개인의 도덕성과 자존감을 소모시키는지 알 수 있다. 자동차도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면 과열되어 고장이 난다. 가짜 노동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게 한다. 저자들은 노동을 잠시 쉬어가는 휴식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가짜 노동으로 쓰이는 근무시간의 일부를 「휴가시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발전시키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마구잡이로 쌓아올린 블록은 빠르게 올라갈 수는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와르르 무너진다. 어디에 둘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갈지 차분히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일을 진행하여야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결과물이 된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근무환경이 바뀌면 가짜 노동은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많은 이들이 집에서의 재택근무로 업무 시간과 회의 시간이 줄어들어도 일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나라도 몇몇 회사는 코로나로 인한 제한들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거나 예전보다 재택근무시간을 늘리는 곳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주 4일 근무에 대한 논의도 종종 되기도 하고 있다.


이 책은 가짜 노동에 내몰린 사무직들이 아니라 경영자나 공공부문의 장들이 읽어보았으면 한다. 조직을 구성하는 한 개인에 불과한 이들은 소속된 조직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내쳐질까 불안하여 자신들이 하는 일 없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IIH 노르딕사의 경영자들이 업무 방침을 바꾸는 노력을 하였듯 위에서부터 변화하여야 한다. 덴마크의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도 이 책을 읽고 『가짜 노동』의 개념과 이를 분석한 내용을 언급하며 널리 추천하기도 했다. 변화의 시작은 결정권들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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