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 뮤지컬 《순신》, 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감동을 『난중일기』와 함께
이순신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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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ㅣ 장윤철 옮김 ㅣ 스타북스 펴냄


지난 주말 신랑과 함께 「한산:용의 출연」을 보고 왔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하다 영화를 먼저 보고 장면들을 떠올리며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중에 읽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1592년 6월 11일부터 8월 23일까지의 기록이 없었다. 한산대첩은 1592년 7월 8일에 일어났다. 명량해전은 기록이 남아있었고 노량해전에서 장군이 전사하였기에 이틀 전까지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한산대첩에 대한 기록은 장군이 올린 장계와 다른 기록들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가 그 당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료가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장군의 일기를 보면 어떤 날은 「맑음」 단 한 단어만 적혀 있기도 했다. 난중일기의 첫 문장이 항상 날씨로 시작하기에 그 당시의 기후를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여러 상황들과 명과의 관계의 등 역사적 가치가 무궁무진한 일기이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알고 있던 영웅 이순신이 아닌 한 집안의 가장이며 아들이며 남편, 그리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 상사의 모습 등을 볼 수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동료인 원균의 흉도 보고 부하 장군들이나 병사들을 혼내기도 하고 칭찬도 하는 모습,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할때는 점을 보기도 하고 꿈해몽에 의미를 두는 등의 보통 사람 이순신을 보았다.


전쟁의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함께하던 종과 그 가족들의 죽음에 슬퍼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호할 때는 단호하셔서 도망치는 병사나 군율을 어긴 수하 장수들에겐 엄격하였다. 전쟁은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작용하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일어난 일이라 하나 마음은 심란하였을 것이다. 그 고뇌들이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나는지 중간중간 자주 아파 힘들어하는 모습이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는 어영담 장군이었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기억에 남았었고 한산:용의 출현에서도 안성기 배우를 보자마자 어영담!이라고 신랑에게 속삭였다.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통탄스러움을 어찌 말하랴. P126」라며 매우 마음 아파한다. 이렇게 휘하 장수나 병사를 아끼는 분이 군율을 어겼다 하여 곤장을 치거나 목을 베는 것이 쉬웠을 리가 없다.


선조의 질투와 일본의 뒤 공작, 당파싸움 등 복잡한 상황이 맞물려 이순신 장군은 감옥에 투옥되어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진다. 그러나 당시 우의정인 정탁이 이순신 장군을 구명하는 상소를 올린다. 그는 상소문에 마음이 움직인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백의종군을 명한다. 이에 백의종군을 중이라 돌아가신 어머님의 장사도 제대로 지내지 못한다. 이후 아들 면의 죽음도 겪게 된다. 「대강 겉봉을 뜯고 열의 편지를 보니 겉봉에 통곡 慟哭 두 자가 씌어 면이 전사한 것을 알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했다. -중략- 하룻밤을 지내기가 1년 같았다. P386」 그럼에도 본분을 잊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만약 두 아들을 잃게 되면 어떤 심정일까 상상하니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너무 끔찍하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도 가족도 내로 놓은 장군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한동안 가지 못했던 광화문 광장에 다녀와야겠다. 살아가며 한 번쯤은 난중일기를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신랑과 두 아들에게 강제로라도 읽으라 강요해야겠다.


한산:용의 출연을 보다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부상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랑이 불멸의 이순신을 좋아해서 여러 번 같이 보긴 했는데 시간이 꽤 흘러 잊어나 보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신랑이 산탄총과 일본이 사용한 어깨에 메고 쏘는 바주카포(?) 비슷한 포가 그 당시에 있었는지 궁금해하여 책을 읽으며 찾아보았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포는 승자총통, 지자포, 현자포였는데 그중 영화에 서 일본이 사용했던 포는 휴대용 포였던 승자총통이었을 듯하다. 학익진에서 발사한 산탄총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출전하여 한 번도 패배를 한 적이 없는 이순신 장군의 비결을 난중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유비무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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