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절대 당하지 마라 - 동경대 출신 일본인 교수가 쓴 통렬한 일본 비판서!
호사카 유우지 지음 / 답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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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신교대에서 5주 동안 지내면서 짬짬이 시간을 이용해서 읽은 책이다. 예전에 신문의 책 소개 코너에서 보았었던 기억이 있던터라 진중문고의 하나로 소대에 비치되어 있던 이 책을 꺼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한일관계가 정부 간에 강경자세를 취하면서 악화되더라도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는 단절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민간 차원의 교류까지 끊는다면 일본인의 역사 인식을 개선해 양국의 역사적 공동 인식을 이룰 방법이 모두 차단된다는 것이다. 결국, 한일 양국이 지속적으로 부딪히는 역사 문제의 개선 없이는 양국의 평화를 지속시킬 수 없고, 그 역사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민간 차원의 대화와 교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또한, 독도 문제와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가 대두된 시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작가의 기본 주장에도 불구하고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너무 일면적이고 도식적인 작가의 인식도 눈에 띈다. 한 마디로 한국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너무 자신의 경험에 치우쳐 단편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거나, 한국의 부정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일본보다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가 더 많다며 한국은 고급인력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식으로 해석했는데 그런 사실은 한국이 일본보다 대학 강단에서 미국에 더 종속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학생들과 대화해보면 일본학생보다 상당히 논리적이며 예의바르고 성실하다는 부분은 작가의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경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도식적인 해석이나 일면적이고 단편적인 작가의 인식이 종종 눈에 띄었다. 물론 이런 부분을 통해서 작가가 한국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한국과 일본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주장의 설득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를 이 책이 보여주었지만 일본인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서서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양국의 보다 좋은 미래를 위해 의견을 제시하는 작가의 노력은 찬사를 보낼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일양국의 오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작가의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있고 유효하다고 본다. 앞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작가를 포함해 한일 양국의 뜻있는 사람들의 깊고 다양한 논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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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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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도서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빌려온 책이 기대 이상의 재미를 주는 경우가 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어쩌면 이 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 책이 내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시의 적절했다고 할수도 있겠다. 도서관의 수많은 장서 중에 우연히 내 눈에 발견되고 빌리게 된 것. 그 또한 어쩌면 하느님의 축복일것이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 상실. 세례 받은 이후에도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신앙. 가끔 가면 어색하기만 한 성당. 20대와 가톨릭에 갓 입문한 초년병으로서의 그런 혼란 속에서 나는 이 책을 접했다.

책이름은 수도원 기행이지만 사실 이 책은 유럽 수도원의 풍경이나 문물보다는, 수도원 기행 중에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작가의 생각과 고백과 회고가 중심이 되어있다. 때문에, 작가는 기행의 마지막에 와서는 ‘결국 이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고 내가 길 위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수도자’라고 깨닫는다. 책 중간중간에 담겨진 사진들로 유럽 수도원의 생김새와 경치를 상당부분 느낄 수 있었고, 매우 솔직하게 느껴지는 작가의 고백은 책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여행은 보고 듣는 것뿐만이 아니기에 많은 부분이 작가의 감상으로 채워진 것이 별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감상들의 상당 부분은 지금의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위로를 주는 것이었다.

작가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18년 동안이나 냉담했다. 하지만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왔다. 나는 작가가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온 이유, 삶의 고통과 허무 그리고 혼돈 속에서도 다시 하느님께 돌아와 ‘항복’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 이유가 갓 신앙을 갖게 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나는 그 이유들을 몇 가지 발견했고, 결론적으로 그것은 나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둠과 혼돈과 공허는 하느님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질료가 된다는 구절은 특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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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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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그때 말씀하셨던 것이다. 모든 창조설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창세기의 하느님은 어둠과 혼돈과 공허라는 질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신다고,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회의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에서도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고‥. 이 기행이 내게, 혼돈과 공허 그리고 삶과 사람들에 대한 허무감에 싸여 있던 내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내 어둠과 공허는 진정 창조의 질료가 될 수 있을까‥.-22쪽

하기는 종교뿐일까. 처음에는 신성하던 것이 세력을 얻고 나면 모두 본디의 그 뜻을 잃고 마는 것이 세상 이치인지‥. 써 놓고 보니 그게 어디 종교나 세력뿐이랴 싶다. 결국 사람이 그러한지‥하느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내신 게 어쩌면 사랑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손수 옷을 지어 입히시고 앞으로 죽음과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예고해 주신 것이 사랑이었다는 그런 생각‥. 많은 것들을 가지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에게 고통과 결핍은 가장 좋은 학교일 테니까. 안주하게 되면, 편안하게 되면 우리는 처음의 신성함을 잃고야 마는 그런 약한 존재일지도 모르니까‥.-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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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유모 이야기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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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창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유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도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던지 나는 도서관에서 덥석 그 책을 빌려왔다. 하지만 다 읽지는 못했다. 작은 글씨로 빽빽한 책장, 낯선 이름과 지명들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 ‘만화로 보는 고전’과 같은 류의 책들만 봐왔던 나는 그 책이 너무나도 낯설고 어려웠다. 이렇게 끝났던 시오노 나나미와의 만남은 올 해 들어 다시 시작되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책이름이라 덥석 집고 나니,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었다. 잠깐 책을 훑어보니 흥미로웠다. ‘일단 빌려나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에 와서 천천히 읽어보니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과 지중해를 둘러싼 지방의 인물들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재해석이다. 여기서 재해석이라고 하는 말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우리가 역사상의 인물(엄격히 말하면 이 책에 다뤄진 인물 몇몇은 역사인물이 아닐 것이다)에 대한 해석이라고 하면, 우리가 사실로 취급하는 기록들에 근거하여 개연성에 따라 구체화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 글은 그 정의로부터 더욱 자유롭다는 것이다. 작가는 기록들에 드러나지 않은 정황을 그럴듯해 보이는 ‘상상’으로 채워나간다. 때문에,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뭇 다르다.

우리가 대부분의 역사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가의 상상에 의한 역사인물들의 일대기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쉽게 수긍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특히, 그런 창작물들은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려 깊이 몰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정말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그럴 듯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몇 가지 이야기는 ‘글쎄’ 라는 느낌도 들었다. 또, 익숙히 알고 있는 텍스트보다는 상상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앞서 말했던 ‘이건 가짜야’라고 의심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이야기들(예를 들어소설과 같은)이 엄격히 구분하면 가짜에 속하겠지만 읽을 당시만이라도 ‘이건 진짜야’라고 독자를 믿게 만들고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몇 이야기는 성공했고, 몇 이야기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기도 하고 흥미로웠던 책이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순간 멍해졌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보았지?’ 라는 느낌도 들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주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그저 작가의 ‘잘 노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나온 것 같았다. 마치,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인 단테와 네로, 브루투스 등의 인물에 대한 기존의 이야기들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물을 독자의 의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기존의 역사가들은 결국 깜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와 같은 방어막을 많이 쳐놓았다. 때문에 독자는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런 방어막들은 ‘이게 사실이야, 기존의 주장은 사실을 잘 몰라서 그래, 가짜야.’라는 위협으로도 들렸고, 내 상상은 그 방어막 앞에 가로막혔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은 후의 내 감상은, 잘 짜여진 일인극을 어두운 극장에서 혼자 보고 나온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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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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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1940년대만큼 중요한 순간은 더 없을 것 같다. 분단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고, 독재의 발판이 이 시기에 마련되었고, 친일파는 이 시기에 사회 주류로 자리잡았다. 2005년 현재를 움직이는 사건들이 바로 1940년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이 시기를 되돌아보는데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만큼 좋은 책이 없는 듯 싶다. 물론, 이 시기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전문서가 있기야 하지만 대중들이 접할만한 수준의 책은 이 책이 가장 낫지 않을까 싶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훑다 보면 마치 내가 이 시대를 산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면 지나친 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강준만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삼 그의 부지런함을 상기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1940년대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생각은 김구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승만의 노선이 아닌 김구의 노선대로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이 시대를 보는 나의 눈이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한 정당은 백범기념관에서 행사를 갖기도 했다. 개혁세력을 표방하는 이 정당은 김구 선생의 휘호를 당사에 걸기도 했다.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조금 개혁적이다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시기의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김구를 꼽는다. 나는 지금까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다들 김구일까 하는 생각을 아직까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강준만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김구는 1948년 부터 암살당하기 1년 전까지만 남북연합 노선을 걸었다. 그 이전은 애매모호했다. 아직도 김구와 연관되는 '38선을 베고 죽을 지언정 단정에 참여할 수는 없다.' 라는 말과 함께 연상되는 분단을 막는 뛰어난 지도자로서의 김구의 모습은 최후의 1년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물론 그 1년 여의 활약만으로 김구는 존경받을만 하다. 하지만 과연 김구만 그 노선을 걷지는 않았다. 김규식이 있었고, 여운형도 있다. 하지만 여운형은 좌파에 기울었고 좌파에 알르레기 반응을 일으키는 우리 사회의 풍속때문에 여운형을 지지 한다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안전하게 김구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라는 강준만의 지적은 새롭고 일리가 있는 말인 듯 싶다.

이 시기는 극단과 분열의 시기였다. 여운형과 김규식의 노선대로 좌우합작을 보다 빨리 잘 실현했더라면 우리나라가 분단에 이르렀을 것인가. 중간파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고 지금도 그렇다. 우파고 좌파고 극단에는 답이 없다고 나도 믿는다. 합리적인 좌, 우의 대화와 타협에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1940년대에는 이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분단에 이른 원인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여순사건과 4.3사건 등 해방후 좌익척결 작업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했는가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익이 좌익을 싸그리 죽였다고 해도 그 것은 천인공노할 일인데, 우익이 좌익만 죽인게 아니라 이념에 관심없는 민간인도 처참하게 죽였다는 것은 짐승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좌익의 우익에 대한 공격과 살해가 있었을 터이지만 대한민국 건국 후 이뤄진 이런 국가 차원의 학살에 비길 수 있을까. 우리가 제대로 된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이런 비극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분명히 있어야 된다. 그것이 역사를 대하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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