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 구본형의 하루 경영 9가지 법칙, 개정판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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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기준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인류 보편의 본질적인 고민과 심오한 진리에 대해 쓴 책도 좋은 책이지만, 결국에는 독자에게 얼마나 공감을 이끌어내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도 그래', '어머머, 너도 그러니?'라는 공감과 호응을 얻어내는 사람이 능력있는 화자이고 능력있는 작가이며, 그런 책이 좋은 책이다. 책의 안쪽 날개에서 저자의 이력을 보고 나는 저자와 나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과목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안되는 이유로 생긴 동질감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끈끈해졌다. 어쩜 그렇게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하고 깜짝 놀랐다. 마치 나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맞춘 점괘에 감탄하며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고 목을 쭉빼며 점쟁이를 채근하듯 나는 '그래서, 그 때 당신은 어떻게 했수?'라고 저자를 재촉하면서 책을 읽었다. 정말 매혹적이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정말 피곤했다. 이 피곤은 성공을 위한 조건과 법칙을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일찍 일어나고, 시간을 쪼개어서 관리하고, 이건하고 저것은 하지 마라고 규제했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나를 내맡기면서도 그들의 스케쥴에 따라가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내가 한심해졌다. 그렇게 '나는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인가봐'라고 나를 비난하면서 더 깊은 좌절 속으로 빠져들었던 시간들! 힐러리가 말했다던가? '성공하는 법칙이라는 것은 없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기가 훨씬 쉬웠을것'이라고. 이 책은 그런 법칙의 파괴다. 

  하루를 작은 조각들로 나누고 우선 순위를 배분하는 시간관리의 법칙에 대해 저자는,

 시간 관리는 '만일 내가 시간을 통제한다면, 나는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번 사람이 더 시간이 없다. 하루를 작은 조각들로 나누고 분배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그 사람은 하나의 약속에서 다른 약속들로 이동할 뿐이다. 여전히 그는 시간에 쫓긴다. 시간의 부족은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성공적인 시간 관리의 결과다. (82쪽 1-7줄)
 
  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오히려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존재를 잊고 하는 일에 몰입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를 변화시키라는 성공을 위한 법칙론자들에 대해서도 

 자신을 바꾸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장 비효과적인 방법이다. 성공의 가능성이 별로 없다. 변화의 핵심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143-144쪽)

 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바는 기존의 성공을 위한 법칙에 대한 역설이며, 저자만의 새로운 자기경영론이다. 성공을 위한 법칙들의 높은 벽앞에서 초라해졌던 사람들에게 '내가 나를 인정하라'고 말하는 이 작가의 팬이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예전에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을 읽을 때 기억에 남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렇다. '모든 창조설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유독 창세기의 하느님은 어둠과 혼돈과 공허라는 질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신다'면서 '개인의 삶 속의 혼돈과 공허도 창조를 위한 질료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희망에 젖는 내용이었다. 저자도 그런 관점에서 사람의 이중성과 자기와의 불화에 대해 비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중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갈등과 불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 같이 가야할 동반자들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춤추는 별 하나가 태어나려면 그 내면에 카오스를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158쪽 2-3줄)는 말도 인용하면서 그 혼돈과 갈등을 에너지와 힘으로 삼아 한 발 한 발 힘차게 나아가라고 당부한다.

  요새 부쩍 다급함을 느끼며 성공과 변화에 대한 책을 많이 뒤적거리던 차에 참 좋은 책을 접한 것 같다. 미래의 성공만이 다가 아니라 바로 내 앞에 닥친 하루하루를 새롭고 힘차게 살 수 있다면, 매일 매일이 새로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삶일까.

  이탈리아의 엔터테이너인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계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인생은 시작된다. 그러나 고작 TV채널을 바꾸는 것으로 인생은 끝이난다."(33쪽 8-10줄)고. 인생은 TV채널을 바꾸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비루한 것도, 세계를 바꾸는 것처럼 거창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은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금 죽을 수도,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루하루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이 아닐지. 오늘을 사는 것은 통장의 잔고와 같은 기쁨이고, 내일을 사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이자'가 들어온 것과 같은 행운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루하고 변함없은 일관성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 시각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하루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인생의 전부이고, 중요한 방점일 것이다.

  저자와 나를 동일시하며 시작했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그 대화를 통해 느낀 결과물을 당장 오늘부터 실천에 옮겨야 될텐데‥그렇게 될까? 기쁨에 넘치는 날도 있겠지만 다시 흔들리는 날들도 있으리라. 그러면 그 때, 다시 저자를 만나겠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저자와 다시 새로운 책으로 만나겠다. 그 때도 이렇듯 기분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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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디셉션 포인트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고상숙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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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휴식도 책과 함께 하다니, 그게 무슨 휴식이냐 싶기도 하지만 가끔 스릴러나 추리 소설들을 방바닥에 드러누워 읽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댄 브라운은 '휴식 파트너' 중 단연 일등인 작가다. '천사와 악마'를 통해 파문을 예고하고 '다빈치 코드'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후에 '디셉션 포인트'를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언젠가 휴식이 필요할 때 읽어야 겠다 생각해두었다가 근래에 다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조금 어려웠다.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는 시온수도회나 프리매이슨 그리고 상징들같은 종교나 기호학적인 사실들이 어렵게 느껴지긴 해도 재미있었는데 이 책에서의 운석이나 우주 관련 사실들은 너무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마이클 톨랜드의 고야 호와 잠수함의 생김생김도 언뜻 머리에 그려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내가 이 분야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작가의 전작들과 달리 이야기의 무대와 소재가 옮겨진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작가가 이 번 소설에서는 소재에 대한 흥미와 이해를 유발하는데 약간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NASA의 재정파탄과 잦은 실패를 대통령의 국정실패로 몰아붙여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색스턴 상원의원. 그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NASA 무용론은 NASA를 지키려는 세력들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음모가 시작된다. 그 음모의 비밀을 알게된 사람들과 비밀을 지키려는 세력들 간의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결은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들의 싸움 이면에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잘못된 애국심 그리고 정적이 쓰러뜨리려는 정치문화, 돈과 로비로 점철된 선거와 같은 정치의 어두운 모습들이 담겨있다. 이 모습들은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고, 그 현실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정부기관의 잘못된 충성심과 애국심은 가까운 과거에 익히 우리가 보아왔던 현실이며, 권력에 대한 집착과 돈에 얽힌 선거는 바로 현재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정적이 쓰러져야만 내가 산다는 정치문화 또한 조선시대의 사화부터 분단,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소설을 읽으면서는 주인공들이 과연 살지 죽을지 조마조마하면서 봤지만 다 읽고나자 우리나라의 정치의 한 단면을 본 듯해서 께름찍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다. 내가 본 작가의 책 세 권 모두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밀회로 끝을 맺는다. 정말 '인간에겐 공포의 감정과 성적 충동이 가장 가까운 것'인지 생사가 달려있는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참 잘도 사랑을 느낀다. 이런 부분이 거친 스릴러에 부드러운 낭만을 섞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참 억지스럽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드라마를 볼 때도 '이 둘이 이어졌으면'하고 내 일인양 극성을 떠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원래부터 세계명작을 읽는 기분이 아닌 할리우드 스릴러를 보면서 휴식을 찾으려는 심산으로 보았으므로 크게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고 해야할지, '이건 정말 아닌데' 싶은 억지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놓은 '이야기 뒤집기'에 놀랐다. '이것 만은 말이 안돼'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한동안 이해가 안되서 투덜거리기도 했다. 

  댄 브라운의 소설들을 읽으며 썼던 서평마다 했던 말이지만, 이 책 역시 '잘만들어진 할리우드 스릴러'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고 봤고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름 휴가때 피서지에 누워서 할리우드 스릴러에 몸을 맡기고 그 속도감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보다는 저자의 전작인 '천사와 악마'가 더 재미있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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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라디오 스타 일반판 (2disc) - 할인행사
이준익 감독, 박중훈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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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정말 '제대로' 보고 싶은 영화였다. 영화 제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군복무중이라 개봉일을 놓치고 말았다. 영화가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재밌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부대 내에서 볼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엉겁결에 봤다가는 빠져들지 못할 것 같아서 참고 참고 또참다가 어제서야 DVD로 보게 되었다. 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영화는 많고 많을 텐데 영화를 본 지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그 여운을 떨치기 힘들다. 박중훈이 부르는 '비와 당신'의 멜로디가 머리 속을 맴돌면서 장면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영화를 세네번 봤다는 극성팬들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영화는 88년 한 방송사의 가수왕이었던 최곤을 조명한다. 그 화려함도 잠시, 장면이 바뀌어 몰락해서 변두리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최곤을 비춘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같지 않지만 최곤은 전성기때의 오만함을 버리지 않았다. 그 오만함을 있는 그대로 봐주며 대접해주는 사람은 매니저 박민수 뿐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최곤이 너무나 얄미웠다. 뭣도 아닌게 옛날의 영광에만 집착해서 거들먹거리는 꼴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박민수 역시 애들 버릇 없게 키우는 부모들처럼 너무 답답하게 보였다. 두 사람 모두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서 지금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기회에 어쩔 수없이 영월의 라디오 방송 DJ를 맡게 되어 내려가게 된다. 원주방송과 통폐합 하기만을 기다리는 국장과 박기사, 원주에서 좌천되어 여기까지 오게된 강PD 그리고 몰락한 왕년의 스타 최곤까지!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모두 영월에 모인 격이다. 원주방송과 통폐합 되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방송에 임하는 국장과 박기사, 언젠가 서울에 가서 진짜 PD다운 PD로 이름을 남겨보고 싶은 강PD, 일단은 아쉬워서 하지만 이따위 촌구석에서 이러고 있는게 너무나도 불만인 최곤. 도무지 잘해보려는 의지 없이 하루하루 '날림'방송을 하던 차에 그들은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어쩌다가 전파를 타게 된 터미널 다방 김양의 방송이 지역주민과 '날림 방송 4인방'의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소통의 장으로서의 라디오의 역할을 깨달은 그들. 드디어 현실에서 재미를 찾고 슬슬 의욕을 가져보려는 찰나,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의 대형 연예 기획사에서 최곤을 캐스팅하면서 박민수를 배제시키려고 한 것. 박민수는 최곤의 장애물이 되기 싫어서 또, 그동안 관심을 못가졌던 가족들의 삶을 위해 최곤을 떠나기로 한다. 최곤은 자기를 버리는 박민수를 향해 분노를 표시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박민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방송 또한 영월에서 전국으로 송출되어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영화는 극중 '이스트 리버'로 등장하는 '노브레인'의 라이브 송들과 철지난 음악들과 박중훈이 맛깔나게 부르는 '비와 당신'과 같은 노래들로 더욱 빛난다. 영화의 쓸쓸하지만 어둡지 않은 분위기와 음악이 묘하게 잘 어울려서 영화가 끝나도 음악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상 또한 화려하지 않지만 여운이 있어서 계속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다. 극중 안성기가 김밥을 꾸역꾸역 먹는 장면이라던지, 마지막 장면인 안성기가 우산을 최곤과 나누어쓰는 장면이라던지. 정말 억지로 웃기지도 않고 울리지도 않는 언뜻 촌스러워 보이는 이 영화는 마치 조미료를 섞지 않은 엄마의 음식처럼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준다.
 
  안성기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일품이고, 박중훈은 최곤이라는 캐릭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투캅스'의 영광이 사라진 박중훈이라는 배우도 사실, 우리에게서 많이 잊혀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최곤이 영월방송의 라디오 DJ로 재기하듯 그는 라디오스타를 통해서 자기 이름을 다시 알렸다. 최곤이라는 캐릭터가 딱이다. 최정윤도 너무나 사랑스럽게 나왔고, 박기사나 국장님의 연기도 재미있었다. 노브레인의 감초역할도 빼놓을 수가 없다. 

  라디오와 잊혀진 스타, 산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락밴드, 시골 다방 아가씨…아웃사이더들. 아웃사이더들이 부르는 낮지만 질리지 않는 리듬에 푹 빠졌던 115분이었다. 이런 영화도 성공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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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걸물전 진순신과 함께하는 중국 인물기행 1
진순신 / 서울출판미디어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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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순신이나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인식은 다분히 영웅사관적이라들 한다. 그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책 제목의 '걸물'이라는 단어가 그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영웅'이라는 말과 '걸물'이라는 말은 왠지 다른 느낌이다. 영웅은 운명적인 느낌이고 걸물은 투사의 이미지라고 해야할까. 영웅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서 대업을 성취할 만한 사람'이고, 걸물은 '걸출한 인물'이다. 요컨대, 영웅과 걸물은 대업을 성취했느냐 아니냐에서 갈리는 것이다. 저자는 대업의 성취 여부를 떠나서 말그대로 중국사의 부분부분에서 '걸출한' 인물들을 꼽아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떠나 이 책의 묘미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외성'에 있다. 평소에 듣도 보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기존에 알던 인물에 대해서도 재발견하게 된다. 간신의 한 전형이라고 알려진 풍도는 정권보다 사직과 백성을 생각했던 정치인으로 재해석되고, 한 무제의 뒤에 가려져 이름조차 새로운 '한 선제'도 현명한 군주로 다시 태어난다. 공자의 수제자로 요절한 안회 때문에 잘 몰랐던 자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부견과 황흥의 이야기였다. 흔히, 한족 정권에 대해서는 지적이고 안정된 느낌을 받지만, 이민족 정권에 대해서는 과격하고 미개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부견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꼈다. 그는 저족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군주였다. 그리고 이상주의자였다. 모든 민족이 하나의 국가에 어울려서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를 꿈꿨다. 하지만 그의 이상주의는 5호 16국시대라는 혼란기에 좌초되고 만다. 황흥은 청 말기의 혁명가인데, 손문에 이어 늘 2인자의 위치였지만 욕심을 내고 갈등을 불러 일으킬 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포용력과 정치력과 실천력을 모두 보여준 뛰어난 인물이다. 난 이 두 인물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에는 왜 이런 인물들이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부견과 황흥같은 꿈과 철학을 가진 정치인과 대의를 위해 넓게 포용하는 큰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 정치는 한결 멋있어질텐데!

  나는 역사라는 학문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옛날 이야기를 더 좋아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무릎팍에 누워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호사를 누린 적이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재밌게 잘 풀어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번역의 투박함과 용서받을 수 없는 오자와 탈자들이었다. 한시를 인용할 때는 번역한 글과 함꼐 원문을 인용해야 하는 것은 기본아닌가. 그마저도 소홀히했고, 오자와 탈자가 수두룩하다. 이것은 출판사의 무성의와 불친절일 뿐만아니라 독자에 대한 무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고를 때 저자의 이름 뿐만 아니라 양식있는 출판사인가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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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 (2disc) - [할인행사]
최호 감독, 김희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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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영화는 늘 불편하다. 어둡고 칙칙하고 욕이 난무하며 세상 참 더럽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왠지, 몰라도 될 것을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액션 영화를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내가 평소에 탐탁치 않아 했던 그런 류의 영화였다. 통쾌함도 없었고 감동도 없었다.

하지만 황정민의 연기는 돋보였고, '주먹이 운다'에서 봤던 류승범의 그 매력적인 표정도 여전했다. 그리고 상도의 삼촌으로 나왔던 낯익은 중년 배우의 얼굴도 반갑고 멋있었다. 아! 황정민의 경상도 사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리 오이라~' 경상도 출신인 아버지의 말투와 얼마나 똑같던지! 

영화 마지막에서 류승범이 말했던 '뽕파는 놈들이나, 뽕쟁이 잡는 놈들이나'라는 대사는 이 영화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검사나 형사나 뽕쟁이나 하나같이 추악하다. 그들 중 누가 누구를 제압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느 편이 웃던 간에 그 자체로 비극일 뿐이다.

아무튼 이런 세계는 비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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