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걸물전 진순신과 함께하는 중국 인물기행 1
진순신 / 서울출판미디어 / 1996년 10월
평점 :
품절


  진순신이나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인식은 다분히 영웅사관적이라들 한다. 그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책 제목의 '걸물'이라는 단어가 그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영웅'이라는 말과 '걸물'이라는 말은 왠지 다른 느낌이다. 영웅은 운명적인 느낌이고 걸물은 투사의 이미지라고 해야할까. 영웅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서 대업을 성취할 만한 사람'이고, 걸물은 '걸출한 인물'이다. 요컨대, 영웅과 걸물은 대업을 성취했느냐 아니냐에서 갈리는 것이다. 저자는 대업의 성취 여부를 떠나서 말그대로 중국사의 부분부분에서 '걸출한' 인물들을 꼽아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떠나 이 책의 묘미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외성'에 있다. 평소에 듣도 보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기존에 알던 인물에 대해서도 재발견하게 된다. 간신의 한 전형이라고 알려진 풍도는 정권보다 사직과 백성을 생각했던 정치인으로 재해석되고, 한 무제의 뒤에 가려져 이름조차 새로운 '한 선제'도 현명한 군주로 다시 태어난다. 공자의 수제자로 요절한 안회 때문에 잘 몰랐던 자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부견과 황흥의 이야기였다. 흔히, 한족 정권에 대해서는 지적이고 안정된 느낌을 받지만, 이민족 정권에 대해서는 과격하고 미개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부견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꼈다. 그는 저족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군주였다. 그리고 이상주의자였다. 모든 민족이 하나의 국가에 어울려서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를 꿈꿨다. 하지만 그의 이상주의는 5호 16국시대라는 혼란기에 좌초되고 만다. 황흥은 청 말기의 혁명가인데, 손문에 이어 늘 2인자의 위치였지만 욕심을 내고 갈등을 불러 일으킬 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포용력과 정치력과 실천력을 모두 보여준 뛰어난 인물이다. 난 이 두 인물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에는 왜 이런 인물들이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부견과 황흥같은 꿈과 철학을 가진 정치인과 대의를 위해 넓게 포용하는 큰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 정치는 한결 멋있어질텐데!

  나는 역사라는 학문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옛날 이야기를 더 좋아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무릎팍에 누워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호사를 누린 적이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재밌게 잘 풀어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번역의 투박함과 용서받을 수 없는 오자와 탈자들이었다. 한시를 인용할 때는 번역한 글과 함꼐 원문을 인용해야 하는 것은 기본아닌가. 그마저도 소홀히했고, 오자와 탈자가 수두룩하다. 이것은 출판사의 무성의와 불친절일 뿐만아니라 독자에 대한 무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고를 때 저자의 이름 뿐만 아니라 양식있는 출판사인가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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