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박정준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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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 말이다. 연일 반복되는 회의 때문에 회의주의자가 되어버릴 것 같은 순간, 답답한 조직문화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찰나, 나는 늘 구글과 애플, 그리고 아마존을 떠올린다. 그곳은 왠지 합리적이고, 자유롭고 혁신적이며 일과 삶의 균형마저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마존에서 12년을 일한 지은이의 말을 들어보니, 아마존에서도 워라밸은 요원하구나 싶다. 합리주의, 능력 중심의 평가는 곧, 경쟁과 무언의 압박, 손쉬운 해고로 연결된다. 엄청난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답답한 것 같다. 아마존 물류센터의 직원들은 쉴새 없이 일하느라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다고 하고, 지은이도 두통과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고 하니, 도대체 어디서 일해야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 다음 날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해고일은 언제나 금요일 _ 33


*아마존을 다니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진정으로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급과 직종에 상관없이 아마존에서 일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거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보지 못했다. 오히려 삼삼오오 모이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_ 347쪽


  지은이도 경계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우리도 아마존처럼 되자!’고 결론지어서는 곤란하다. 제도와 형식만 가져와서는 성장도 발전도 없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에서도 확인하지 않았나? 아마존의 성장을 이끈 스크럼 프로세스가 태평양을 건너와서는 대표의 공식적인 잔소리 타임이 돼버린 것 말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한다. 구본신참(舊本新參)식의 제도 땜질이 아니라 근본적인 부분부터 고민해야 한다. 아마존의 고객 중심의 사고, 시작부터 기술적 채무에 빠지지 않도록 깊게 고민하는 문화, 책임과 권한을 주어 개인과 기업이 동반 성장하게 하는 프로세스 등등. 답을 찾고자 하면 사례는 널려 있다. 제도만 옮겨 심으면 형식적이고 귀찮은 절차만 하나 늘어날 뿐이다.


*이 책은 아마존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하는 글이 아니다.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 이외에는 없다. _ 398쪽


(밑줄긋기의 쪽수는 종이책이나  e-book의 사용자 동작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한 회사에 취업해서 일하는 것이 한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으며, 우리 각자의 삶은 너무나 크고 다양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구들이 밝기로 경쟁해야 한다면 승자는 단 하나다. 하지만 모두가 가장 밝은 전구가 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작고 은은한 전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토대로 궁극적으로 ‘지금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좇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는 내가 오늘도 매일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이정표가 되었다. - P12

아마존에서의 시간을 도제의 시간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안정을 담보로 삶을 저당 잡히는 농노와 마스터로의 과정에 있는 도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평생 있어야 한다면 괴로운 곳이지만 과정으로 보기 시작하니 이보다 감사한 곳일 수 없었다. 과분한 월급뿐 아니라 눈을 들어 살펴보니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 P14

매니저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원온원(1 on 1) 미팅은 별다른 포맷 없이 매니저가 매주 한 시간 가량 한 명의 팀원과 단 둘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 P41

한마디로 아마존은 기본적으로 예의나 복장, 어투, 태도보다는 능력과 다양성 그리고 인테그리티(integrity)가 중시되는 사회였다. 인테그리티는 미국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한국어로는 한마디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로, 간단히 정의하면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도 옳은 일을 하는 것(Doing the right thing, even when no one is watching)’이다. - P42

혜택이 워낙 없어서 사원들의 원성이 있기도 하지만 회장이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동일하다. 거품과 낭비를 줄이고 그 모든 자원을 고객을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회사는 성장할 것이고 그 열매는 주주인 사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 P76

"실패와 혁신은 분리할 수 없는 쌍둥이다.(Failure and innovation are inseparable twins)" - P80

원칙이 무시되고 안전에 불감해질 때 일어나는 참사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반복적으로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다 함께 변화를 만들기보다는 서로 잘잘못을 ᄄᆞ지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본다. 실패가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원칙들이 바로 세워지고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재앙을 또다시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 P85

아마존에서 회사나 상사가 강요하는 야근을 한 경험은 없다. 그 대신 출퇴근 시간과 상관없이 본인이 그날 맡은 일을 끝내기 위해 또래 압력(peer pressure)과 스크럼 프로세스의 압박 속에서 생산성을 채찍질 받는다. - P93

아마존이 직원들을 직접적으로 쥐어짜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능력 중심의 평가, 투명하게 보이는 업무 상황, 상향 평준화된 업무량, 그리고 손쉬운 해고가 간접적으로 사원들을 서로 경쟁시키기 때문이다. - P94

아마존의 성장이 증명하듯 4차산업 시대에 기업을 발전시키는 힘은 강요되는 출퇴근 시간이나 상사의 압력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수평적 기업문화와 효율적인 프로세스다. - P98

아마존에서는 사람을 뽑을 때 성실하거나 팀워크가 좋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아마존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 P108

아마존에서는 ‘기술적 채무(technical dept)’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는 당장의 쉬운 방식으로 대충 일을 처리하면 나중에 시간이 가면서 이자가 붙어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사실 이것은 기술적 영역뿐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우주의 원리다. - P115

아마존은 고객이 전화를 걸어 기다리게 하는 대신 아마존이 잠시 후에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방법을 일찌감치 도입하여 이런 불편을 해결했다. 고객 상담 번호를 공개하여 일일이 상담하는 대신 세심하고 혁신적인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 만족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고 있는 셈이다. - P154

"우리는 정말 이른 인터넷 시대의 첫날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 P222

흘러가는 말과 달리 온전한 문장으로 쓰인 글에는 도저히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 P236

말만 하고 행동으로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을 본다. ‘가르친 것보다는 들킨 것에 영향을 받는다(more is caught than taught)’는 영어 속담처럼 말이다. - P244

과정과 설명은 무시된 채 누군가 정해놓은 답을 많이 맞히는 사람을 아마존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객관식 시험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건 아닐까. 아마존의 채용 과정은 ‘주관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회사에서, 또 삶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들 또한 그렇다. - P255

아마존의 14가지 리더십 원칙
1. 고객에 집착하라
2. 주인의식을 가져라
3. 발명하고 단순화하라
4. 리더는 정확하고 옳아야 한다
5. 배우고 호기심을 가져라
6. 최고의 인재를 뽑아 육성하라
7. 최고의 기준을 추구하라
8. 크게 생각하라
9. 신속하게 판단하고 실행하라
10. 절약하라
11. 신뢰를 구축하라
12. 깊게 파고들어라
13. 강골기질: 반대하되 헌신하라
14. 결과를 만들어내라 - P268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사원들 간에 끈끈한 정도 별로 없어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지체없이 떠난다. 대부분 사원들에게 직장은 가족 부양이나 개인의 커리어 패스와 같은 더 큰 가치를 위한 수단이자 상호 간의 이해관계로 잠시 머물고 있는 일터일 뿐이다. - P289

‘공부를 잘하는 법’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확실히 ‘공부를 못하는 법’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도해 그리기는 내가 모르는 것을 스스로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한 단계씩 미지의 영역을 줄여 나가도록 도와주는 좋은 방법이다. - P305

신기하게도 수많은 개발자들이 아무리 많은 일을 끝내고 자동화를 시켜도 아마존의 일은 한시도 줄어든 적이 없다. 이는 아마도 베조스 회장이 안주하는 법이 없이 알렉산드로스 대왕마냥 사업을 확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내 책상에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이 쌓여갔고, 어느 시점부터 내 삶의 고삐를 아마존에 내주고 말았다. 일에 치여 끌려 다니기 시작하자 언제나 체한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했고 두통이 있는 날도 잦았다. - P308

"제가 항상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 중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더 오래 많이 일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미 도래한 디지털 노마드 시대는 더 짧은 시간 일하고 최대의 효과를 얻는 자의 것이다. 어릴 적부터 책상에 오래 앉는 훈련을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나는 짧은 집중력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P334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멘탈이 무너지면 버티기 힘든 곳이 실전이고 회사다. 바보는 누구나 좋아한다는 생각과 회사에서의 시간이 종착역이 아닌 과정이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회사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주고 좀 더 큰 관점에서 여유를 가지고 아마존에서의 나의 시간들을 바라보게 도와주었다. - P343

울타리는 안전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더 큰 무언가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진 가능성 또는 살아 있다는 감정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 P355

이 책은 아마존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하는 글이 아니다.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 이외에는 없다. -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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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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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통일적인 규칙을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일상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예술가로서 업적을 쌓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말이다.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누군가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라고 했고, 어떤 이는 시간에 맞춰 억지로 쓰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일관된 법칙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허무하다.

 

  지은이는 여러 인터뷰와 기록들을 뒤져 여성 예술가들의 습관이나 일상과 관련된 부분을 추렸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 수집능력과 성과는 분명 인정해야 옳다. 하지만 몇몇 인물들에 집중해서 그들의 습관과 루틴을 파고들었다면, 뭔가 더 가치 있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몇몇 꼭지는 그저 가십에 불과한 정도의 정보도 있고, 이것이 예술하는 습관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도 많았다. 산만하고 어지럽다. 어디서 손절매하고 읽기를 중단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오탈자도 눈에 띄었다. (27, 88, 264)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 (버지니아 울프) - P7

자신에게 양분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본능적인 리듬과 일정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도리스 레싱) - P31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다. 둘째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고, 셋째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활동을 할당하는 하루 일정을 정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사전에 계획해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기치 못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어야 한다. (엘리너 루스벨트) - P69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올바른 상태가 되는 게 어렵다." (매기 햄블링) - P77

"삶이란 에너지 수준의 문제" - P91

"내가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는 건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유를 아신다." (캐서린 맨스필드) - P101

"주기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요하지 않고 듣는 거죠. 작업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는 견디기 힘들어도 기다려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는 거죠.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또 한 번 격하게 몰입해서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말이죠." (리 크래스너) - P132

"남편은 글과 싸우죠. 남편에게는 글쓰기가 일이에요. 적어도 남편은 그렇게 부르죠. 하지만 저한테는 글쓰기가 휴식이에요. 제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요." (셜리 잭슨) - P163

"일정을 세워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고 하죠. 무엇이든 ‘써야’ 한다고요. 하지만 그렇게 앉아서 의무처럼 ‘글을 쓴다니’ 그건 지독하게 어리석은 짓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런 집필 습관을 크게 찬사하죠. 그래야 작가가 그렇게 불안정한 인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로레인 한스베리) - P225

"많은 예술가들과 지성인, 소위 출세가도를 달린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중 몇몇은 행복하다고 허세를 떨었지만 그 이면을 꿰뚫어보면 별다를 것 없는 불안과 고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사도라 덩컨) - P235

"인간이 만든 시계의 시간을 엄격히 따르지는 않는다. 난 그렇게 기능하지 않는다." (르네 콕스) - P277

이런 말을 하기는 아주 쉽죠. "음, 오늘 일진이 나빠. 아이들은 말을 잘 안 듣고, 부엌은 문질러 닦아야 하고. 하지만 내일은 더 나을지도 몰라." 다음 주나 아이들이 좀 더 크고 나면 더 나을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일지도 모르죠. 그러다가 결국에는 자기개발에 손을 놓고 말아요. 방해를 받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놓지 않으면 저 이면에서 아이디어를 키워나갈 수 있죠. 사실은 그게 훨씬 더 빨리 성숙해지는 길이에요. 조각할 시간은 적어질지 몰라도 항상 조각을 했던 것처럼 그와 똑같은 비율로 성숙해질 수 있죠. (바버라 햅워스) - P301

"일정을 융통성 있게 짜두는 거예요. 패턴이 있으면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맞춰 넣을 수 있죠. 하지만 패턴이 너무 많으면 이도 저도 못 하게 되요." (안드레아 지텔)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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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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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도 그랬지만 2권까지 읽다 보면, 정말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팸플릿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들은 불현듯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각자 맡은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고, 퇴장한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 수도 없고. 이러니 인물들에 애착을 두거나 집중할 여지가 없다. 결국, 성적 중심, 암기 중심의 교육을 벗어나 자기 주도적, 자율적인 교육체계를 만들자는 지은이의 주장만 남을 뿐이다. 아무리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옳아도, 그것이 곧바로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초고 단계에서 사건과 개요를 엮어놓은 것을 그대로 출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로 실망스럽다.

 

  책의 말미에 대안학교와 혁신학교를 찬탄하고 있는데, 정말 그 학교들은 무조건 좋기만 할지, 모든 아이가 대안학교를 갈 수 있는지,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화하면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진보 교육감의 당선 혁신학교의 전국화 교육제도의 전면개혁이라는 도식은 너무 순진하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거니와 소위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의 안에서도 그 방식을 둘러싸고 의견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시 확대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을 보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바꾸느냐의 문제가 간단한 것 같지는 않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로 보지 말자는 관점의 전환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이 책은 소설적으로도 고민의 숙성 차원에서도 충분치 않게 느껴진다.

 

부모와 잦식은 절대 변할 수 없는 한 핏줄이되, 그 생명체로서의 존재는 완전히 별개의 독립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성도, 능력도, 성격도 다 다르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의 인생도 다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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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9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책] 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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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은 현실 르포에 가깝다. 뉴스 기사와 각종 통계 데이터를 확보하여 시의적절하게 인용한다. 아이들이 쓰는 줄임말, 은어 등도 자주 사용한다. 물론, 쓰임이 전체적으로 어색하긴 하다. 나이 든 어른이 아이들을 흉내 내는 느낌이랄까? 소설은 우리나라의 여러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굴절된 교육열, 학교폭력, 공교육의 붕괴 등. 아직 2권이 남았지만, 결국엔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상적인 결론으로 끝맺을 것 같다. 이미 『천년의 질문』에서 익히 봤듯이. 하지만, 소설은 소설대로의 역할이 있는 법.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한 듯싶다.

 

 

* 교육은 그 어떤 경우에도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교육은 단순 지식을 무조건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바르게 육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_ 256쪽

 

  다소 아쉬운 점은, 작가가 사회적 사건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이지만, 일상생활이나 여성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서다. 주인공 강교민의 아내는 혼전순결을 지킨 여자,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경제적 궁핍을 견디는 현모양처로 그려진다. 자식을 서울대 보내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강요하는 김희경이나 최민혜는 본인의 이름도 가지고 분량도 확보했지만, 강교민의 아내는 이름조차 없고, ―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 분량도 적다. 작가가 김희경이나 최민혜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 반대의 ‘권장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강교민의 아내’와 같은 삶을 이상으로 삼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작가가 이 인물에 대한 애정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 물론, 2권에서 반전이 있을 수 있지만 ―  사족으로, 혁신학교는 왕따도, 학교 폭력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연 사실인지 궁금하다. 정말 사실이라면 흥미로운 사실이라,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자료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은 제각기 개성이 다르듯, 공부하는 능력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단순한 경쟁 자극만으로 모두가 최상위권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노력이란 기본적인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고, 저런 방법을 계속 쓰게 되면 능력의 한계를 지닌 아이들은 상처 위에 또 상처를 입고, 그 위에 또 상처를 입어 한없이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P14

그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원인을 규명하고, 그걸 근거로 사회적인 논의를 냉정하게 진행해서, 원인을 제공한 제도를 과감하게 혁파하게 하는 것이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한국은 한국적인 방법으로 도덕 감정을 자극해 범인을 패륜아로 매도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 P35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 - P36

"그건 아니지. 왕성한 기업 활동 없이는 우리 사회가 안 돌아가니까 기업 종사자들은 최선을 다해 뛰어야지. 단, 시나 책들을 꾸준히 읽어 인간성을 고양시켜 가면서 말이지." - P64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툴레) - P116

"엄마, 제발 생각을 좀 바꿔. 엄마와 난, 엄마와 딸의 관계일 뿐이지 내가 엄마의 소유물은 아니야.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고,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거야. 서로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거라고. 엄마들은 다 대학 나왔으면서도 왜 그 쉬운 걸 구별할 줄 모르는지 몰라." - P187

"글세, 우리 선생들도 현상을 힘겹게 겪으면서도 원인을 분명히 몰라서 답답한 게 이 문제잖아. 어쨌든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서 나타나는 병적 증상이야. 아마도 제일 큰 게 과도한 공부 스트레스인 것 같고, 그 다음이 약자를 괴롭혀 자기 힘을 과시하는 인간의 악한 지배욕의 발동 같고, 한 공간을 자기네 세계로 장악하고자 하는 패거리 의식이 또 하나고, 괴로움을 당하는 자의 고통스러움을 보면서 점점 승리감과 쾌감이 커져가는 악마적 가해 의식, 이런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게 아닌가 싶어." - P201

교육은 그 어떤 경우에도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교육은 단순 지식을 무조건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바르게 육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P256

사회의 폭력성이 그대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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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로 출근하려면,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 인천1호선을 타고, 부평역에서 다시 1호선을 갈아타야 한다. 어렵게 회사에 도착하면 집에서 나선 지 1시간 50분에서 10분이 더 되거나 덜되거나 하는 시간이 지나있다. 송도살이에 무척 만족하고 있지만, 일주일에 5~6, 매일 4시간씩 출퇴근에 보내고 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출근 시간은 비몽사몽이라 항상 졸거나 눈을 감고 있는데, 1호선에서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지난 주말에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선가 , 하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손톱을 깎는 소리다! ‘아니, 지하철에서 누가 감히 손톱을 깎는단 말이야!’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노약자 우대석에 앉은 할아버지가 손톱을 깎고 계신다.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 손톱을 깎는다. 주말 아침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기도 했고, 주변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그 할아버지 쪽을 바라보는 얼굴들에는 불쾌함이 엿보인다. 손톱깎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도 의외지만, 지하철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톱을 떨어뜨리는 것은 정말이지 충격이다.

 

  검사와 판사는 법을 집행하지만, 자신들은 늘 예외라고 생각하고, 언론인은 공정과 정의를 위해 펜을 놀리지만, 본인들은 항상 열외라 여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는 모르나 많은 어르신이 공중도덕을 말씀하시지만, 그것이 젊은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이 노인의 행선지는 어디일까?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3가역인가, 풍물시장이 있는 동묘앞역인가, 아니면 매일같이 시위가 있는 서울역이나 시청역인가. 혹시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넘치는 그곳에서 젊은이들의 무례함을 욕하고, 정부의 무능함을 성토하고, 노인공경이 무너진 사회를 한탄하시는 것은 아니겠지? 부디, 자기에게 관대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한 분이었으면 좋겠다. 사회의 발전도, 아무리 좋은 가치도 항상,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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