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구판절판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프랑스 정신분석의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33쪽

나를 갈망하면서도 내게 접근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내게 서운함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내게 투정하고 매달리는 대신 거리를 두었으며, 어느 순간 나를 향해 품었던 애착을 분노로 바꾸어버렸다.-36-7쪽

"사랑의 행위 속에는 고문이나 외과 수술과 아주 흡사한 것이 있다."…(중략)…사랑의 진정한 위력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면으로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을 넘어서서 계속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통합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랑이 한 사람을 아름답게, 자신감있게, 성숙하게 만드는 이유 역시 그 어려움을 이겨낸 성과일 것이다. 사랑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인간 정신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한다.-38-9쪽

분노는 사랑처럼 누구에게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감정이다.…(중략)…사랑이 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듯 사랑의 뒷면인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의 질이 좌우된다.-65쪽

대체 인간은 유년으로부터, 그리고 부모로부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70쪽

그동안 내 사람이 길고 긴 만성적인 우울증 상태였구나 하는 것이었다. 삶이 어딘가에 막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는 듯한 느낌, 불투명한 막이 한 겹 의식을 덮고 있는 듯한 느낌이 바로 우울증의 증상이었다. 20대의 그 막막하고 암울한 느낌, 30대의 그 무력하고 적막한 상태가 죄다 우울증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느꼈지만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 수 없는 상태, 생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나 본질에서 유리된 듯한 느낌, 그것도 모두 우울증의 증상들이었다.-74쪽

우울증은 내 마음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난장판이며, 정신의 착오일 뿐이었다. -77쪽

생이란 본디부터 그렇게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소란스럽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중략)…삶의 안정을 꿈꾸는 대신 어떻게 파도타기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91쪽

자기 존중감이 확고한 사람은 불필요하게 가상의 경쟁자를 설정하지 않으며, 설사 환상 속에서 경쟁하는 일이 있더라도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149쪽

상대방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면서도 상대방의 행운에 대해서 조차 수치심 없이 분노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시기심이다.-157쪽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184쪽

"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네 속에는 네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볼 때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네가 싫어하는 것이 실은 네 자신의 일부이다. 늘 이것을 명심하거라."-186쪽

사랑에서도 삶에서도 늘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진정한 삶으로부터 이만큼 떨어져 있었던 셈이다.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삶을 살 것이라 기대하면서.-196쪽

사랑의 반대말이 증오나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듯, 생의 반대말은 죽음이나 퇴행이 아니라 '방어의식'이 아닐까 싶다. 방어의식은 사랑을 영원히 자기 삶의 바깥에서 서성이게 만든다.-199쪽

콤플렉스는 부정적으로 발전할 뿐 아니라 긍정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현상이다. 정신생활에 필요한 요소로서 극복하거나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것을 끌어안고 사랑해야 한다. 콤플렉스를 사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수치스러워하고 숨기려 했던 그것이 의식 안으로 통합되는 순간,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이 나오게 된다. 콤플렉스가 내 것이 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223쪽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깨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추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그런 모습인 채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건강하고 진정한 자기애이다.-240쪽

이제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그런 점들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점이 더욱 만족스럽다.-241쪽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이고, 일의 능률을 높이는 방법이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았다.-267쪽

자기 존중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칭찬에 더 많이 황감해하고, 더 많이 지배당하기도 한다.-320쪽

외부에서 오는 인정과 지지를 기대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가 내면에서 인정과 지지를 기대하는 아기를 돌보고 격려해야 한다.-321쪽

지지의 태도를 자기 자신에게 돌릴 수 있으면 타인의 칭찬에 그토록 들뜨거나, 외부의 비판에 그토록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자기 중심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321쪽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 오래도록 그런 상태에 처해 있었다.-353쪽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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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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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알지 못했다. 상담해주시는 선생님께서 읽어보라고 권해주셔서 우연히 읽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마치 숙제를 하듯이 천천히 읽으면서 이 책에서 온전한 정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 결과는 어땠냐면……솔직히 지금은 뭔가 알 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뿌옇고 모호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 동시에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점에 괜찮은 밑돌을 발견한 듯한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정신분석의 여러 개념들을 비교적 알기 쉽게 일러주고 있다. 저자 자신이 직접 체험한 정신분석과 그 과정에서 얻게 된 통찰을 ‘나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들과 그 감정들이 현실에서 표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랄지, 생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긍정적인 가치랄지 하는 것들을 말해준다.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함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저자의 여행경험을 토대로 풀려나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의 개념들을 비교적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도 두어 차례 여행을 다녀봤지만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그저 발품팔고 사진 찍는 행위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아, 이런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면서 ‘왜 나는 지금껏 그런 여행을 하지 못했지? 역시 난 그것밖에 안되는 놈이야.’ 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또 한번 나를 괴롭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가져왔던 일상적인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번에 나는 ‘고작 그 따위’의 여행에서 얻었던 즐거움과 그 때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며 만족하였고, 저자의 여행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여행의 새로운 경지를 조망하였으며 그러는 한 편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였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컵에 반쯤 채워져 있는 물을 보고 두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 사람은 ‘물이 반밖에 없네.’ 라며 낙담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물이 반이나 있구나!’ 라며 만족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난 늘 내 컵에는 물이 반밖에 없음에 실망하는 쪽이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컵 안에는 얼마만큼의 물이 채워져 있는지 알 수 없음에도 ‘다른 사람들 컵에는 물이 분명 많이 들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늘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렇기에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 또한 사랑할 수 없었다. 나의 오랜 자학과 우울과 질투의 근원은 모두 하나였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 이곳’을 긍정하는 것부터가 모든 변화의 시작임을 이제야 안다.

   
    이제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본문 241쪽에서)
 
   

 

  나는 지금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본문 353쪽에서)’에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삶은 여린 새싹을 틔우는 봄의 기운에 충만해있다. 이 책은 새롭게 돋아나는 이파리에 좋은 거름이 되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날이 오면 그 열매는 매우 달콤할 것이다. 그리고 매서운 바람이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어도 그것을 참고 견디면 다시 봄이 올 것임을 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를 긍정하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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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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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한지는 흔히 삼국지연의와 비견된다. 하지만 그 원류를 따지자면 흔히 초한지로 불리는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담은 이야기가 먼저다. 예를 들어, 삼국연의에 등장하는 조조가 서서의 어머니를 붙잡아두고 위협하던 장면은 초한지에서 항우가 모친을 붙잡아 왕릉을 협박하는 장면과 닮았다. 그리고 제갈량의 임종을 지키던 이가 제갈량에게 차기 승상을 묻는 장면은 초한지에서 여후가 병석에 누워있는 유방에게 차기 재상을 묻는 장면과 꼭같다. 초한지의 에피소드의 상당부분이 삼국연의의 저자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초한지와 삼국연의의 관련성을 찾지 않더라도 초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넘친다. 우선,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대립관계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전개도 짧은 시간에 엎치락뒤치락 변화가 무쌍하기 때문에 박진감이 넘친다. 삼국지에 식상함을 느끼던 찰나 초한지를 찾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어려서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와서 다시 초한지를 읽어보려고 하니 제대로 된 번역본이 흔치 않았다. 크게 보아 정비석, 유재주, 김홍신, 이문열 씨가 내놓은 책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모두 마뜩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자극적인 소재에 치우쳐 대국을 놓치고 있었고, 어떤 것은 단순한 번역본에 그쳐서 어떤 울림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그나마 이문열 씨의 책이 새로 나와 시선을 끌었지만 이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다. 일단, 초한지를 '사기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여 욕심을 내는 바람에 시작도 뜬금없이 느껴졌고 마무리도 마찬 가지었다. 초한지와 같은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전후역사를 삽입하여 너무 느슨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황제 말부터 유방사망까지 집중해서 빠르게 전개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비유하자면 항우와 유방의 치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아버지 앞에 모여 앉았는데, '삼황오제가 설라무레~'하며 한껏 아는 척을 늘어놓으시는 꼴이랄까. 아무튼 다른 사람에 의해 새로운 초한지가 번역되어 나올 때까지 이문열 초한지는 그런대로 반사이익을 누릴 듯싶다.

  사람들이 삼국지나 초한지에서 느끼려고 하는 것은 보통 처세술이나 용인술이다. 극도로 혼란스럽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생존방법과 그 혼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인간관계술이, 학교에서 살아남고 직장에서 버티고 각종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고자하는 현대인의 열망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초한지를 읽고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야 자유지만 사회적으로 권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예전에 신문광고에서 이문열 삼국지를 소개하면서 '수능, 논술 필독서'라는 광고 문구를 단 것을 보고 순간 멍해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그 어린 학생들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어른들의 이런 욕심에 대한 응답이 초한지 10권이고, 그런 의미에서 10권이 이 책의 백미다.

  항우가 죽고 전쟁이 마무리되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나에게 10권의 혼돈은 허무 그 자체였다. 크고 작은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유방에게 천하를 안겨주었던 한신과 경포와 팽월은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또한,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은 쫓겨 갔으며 유방의 오른팔 번쾌는 오라에 묶인 채 압송되어 죽을 고비를 맞는다. 유방이 죽고도 여후에 의해서 다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여후가 죽자 다시 수많은 사람이 그녀를 따랐다. 그래, 그들은 그래도 사서에 이름을 남겼다고 치더라도 '1만 명, 5천명'으로밖에 이름이 남지 않은 장삼이사들의 죽음은 얼마나 헛되고 헛된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결국 한 사람을 위로 올리기 위해서 수백만이 목숨을 잃었고, 다시 수백만이 생활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함께 천하를 움켜쥐었던 사람들마저 일인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죽는 것을 보면서 쓸쓸함과 허무함을 숨길 수 없었다.

  죽음이 쉽게 이야기되고 죽음이 일상이었던 사회, 지금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때는 눈에 드러나 보일 뿐이고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때처럼 몰인정해져야 되는 것이 지금도 유효한 법칙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법칙을 권하는 사회는 무섭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20만 명의 항복한 군사들을 땅에 묻는 항우가 현대에서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나는 초한지를 다르게 이해했으면 한다. 물론, 소설에서 창작해내기도 힘든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 군상들이 등장하는 역사 속의 세계 그 자체로도 멋지다. 그리고 수십 번의 전투에서 항우에게 지고도 끝내 대세를 바꾼 유방의 인내와 노력. 그토록 인간적으로는 여렸던 항우가 현실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보여준 혹독한 모습들과 몰락 또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초한지를 읽히며 강권하는 그 처세술과 인간관계술이라는 것을 넣어둘 때가 되었다. 제일 좋은 것은 초한지 그 자체로 느끼는 것이겠지만 배우려거든 세상이 권하는 것과는 반대로 배우는 것이 어떨지. 20대에 다시 읽은 초한지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새로웠다. 사족으로 내가 40대에 다시 초한지를 읽는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또는 바뀌지 않을지 궁금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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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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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상자기사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이 책을 소개한 신문의 기사 말이다. 토요일의 신간 소개면을 유심히 보는데 그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이 왠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을 해봤더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는지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신청이 되어 있었다. 예약을 해놓고 책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1등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정말 예쁜 책이었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그림들이 책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예쁜 얼굴에 마음을 놓은 것도 잠시, 읽다보니 그 진실한 이야기에 마음을 놓아버렸다. 숨김없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림 몇 점을 꺼내놓고 나를 위로하는 저자의 마음 씀씀이가 참 아름다웠다. 나는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좋은 글귀를 찾아 메모하고 때로는 내 경험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책을 천천히 읽었다. 장남이었던 나는 어렸을 때, 나에게도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누나를 얻은 기분이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사랑과 관계와 자아. 저자의 말처럼 그 세 가지는 생각한대로,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에서 늘상 열망하거나 마주치는 것들이지만 왜 그렇게 어렵고 상처받는지. 그렇게 베인 상처를 제 때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가 곪아 자기를 해치는 병이되고, 급기야 남을 전염시키는 독이 됨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결국 그 상처를 적절히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이 책은 사랑과 관계와 자아 때문에 상처를 받은 이들을 위한 작은 붕대이며, 한 알의 비타민씨다.


  또 하나 이 책에 감사한 것은 그림에 대한 두려움을 덜었다는 것이다. 쟁쟁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음에도 박수를 쳐야 했던 내면의 불편함. 그 불편함이 증폭되면 그림을 대하는 두려움이 된다. 이 책은 그 두려움을 치유하는 데도 특효다. 이 책을 보면서 ‘그림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려움의 벽이 녹아내리니 그림을 보는 것이 한층 재밌어졌다. 80쪽의 <고백>이라는 그림을 보면서는 저자와 다른 식으로 해석해보는 호기도 부리기도 했다. 또, 책에서 봤던 마음에 드는 그림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게 모두 이 책을 보고 나서의 효험이다.


  글을 쓰다보니 마치 내가 약장수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하자면 이 약은 장기복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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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 2008-07-3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퍼가서 저희 블로그에 올려도 될까요?^^

송도둘리 2008-07-31 11:50   좋아요 0 | URL
네. 퍼가셔도 돼요. 최근에 재밌게 보았던 책이예요.ㅋ

멍멍 2008-07-3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감사...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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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콘서트'라는 제목이 붙은 교양서들이 유행을 했더랬다. 경제학이니 과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학문들에 '콘서트'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판된 이유가 궁금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마도 '콘서트'라는 낱말이 주는 경쾌함 때문인 것 같다. 그 느낌이, 어렵게만 보이는 학문들을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책의 판매에 있어서는 득이 될지도 몰라도 평가에 있어서는 실이 되기 쉽다. '완전 재미있게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몇 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전문적인 학자들에 의해서 쌓아온 이론과 사고들을 '콘서트' 한 방에 알 수 있다는 기대는 얼마나 위험한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대를 하면서 책을 집어 들고, 그 기대가 깨지는 순간, 책에 대한 평가는 악의적으로 바뀐다.


  사실 나조차도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물리, 수학과 같은 과목들은 싫어하는 과목 순위의 앞자리를 다퉜다. 대학에 진학해서야 비로소 내가 원치 않는 과목들은 듣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그 학문들은 영원히 안 봐도 될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문이나 사회과학을 하더라도 자연과학과 연관을 맺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경제학을 공부하더라도 수학이 필요하게 마련이고, 인류학만 하더라도 진화나 유전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이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싫어했던 학문들에 대한 지식을 교양으로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고민 끝에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한 호의적인 많은 평가와 ‘콘서트’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케빈 베이컨 게임과 머피의 법칙과 같은 부드럽고 재미있는 소재들로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뿐만 아니라 잭슨 폴록이나 경제학 같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을 것 같은 소재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또한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런 것도 과학이었나 싶을 정도로 과학의 지평이 참 넓구나, 역시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한 학문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편협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저자가 이 책 전반에 걸쳐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세상은 카오스적이다'라는 생각인 것 같다. 책의 많은 꼭지에서 그런 사고가 감지된다. 평소에 카오스에 대한 느낌은 '무질서와 혼란'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저자는 카오스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복잡하고 혼돈스러워 많은 변수에 의해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 같은 패턴들도 알고 보면 질서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일기예보가 오늘 날씨는 잘 맞추지만 일주일 후의 날씨는 잘 맞추지 못하는 것과 같이 장기의 행동 패턴은 이해할 수 없지만, 짧은 시간 스케일 안에서는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것들도 과학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카오스는 '복잡성 속의 질서'라고 정의한다면 맞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패턴들로 가득 찬 곳이지만 카오스적인 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과학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눈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동안 과학은 복잡한 세상과는 격리된 과학실 안의 학문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과학은 일반 대중과는 점점 멀어져버렸다. 하지만 이 책은 과 격리된 학문이 아니라 과학이 세상을 보는 하나의 새로운 시각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룬 과학적 성과들이 전체 과학의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과학의 이런 다채로운 시도들이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대중에게 과학을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려는 책들도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 책을 읽는 아이들을 통해 미래를 여는 과학자들도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서, 쓸데없이 과학에 대한 투자를 하는 대신에 당장 경제를 살려내라는 대중과의 격리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재승씨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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