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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책을 알지 못했다. 상담해주시는 선생님께서 읽어보라고 권해주셔서 우연히 읽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마치 숙제를 하듯이 천천히 읽으면서 이 책에서 온전한 정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 결과는 어땠냐면……솔직히 지금은 뭔가 알 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뿌옇고 모호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 동시에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점에 괜찮은 밑돌을 발견한 듯한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정신분석의 여러 개념들을 비교적 알기 쉽게 일러주고 있다. 저자 자신이 직접 체험한 정신분석과 그 과정에서 얻게 된 통찰을 ‘나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들과 그 감정들이 현실에서 표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랄지, 생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긍정적인 가치랄지 하는 것들을 말해준다.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함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저자의 여행경험을 토대로 풀려나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의 개념들을 비교적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도 두어 차례 여행을 다녀봤지만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그저 발품팔고 사진 찍는 행위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아, 이런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면서 ‘왜 나는 지금껏 그런 여행을 하지 못했지? 역시 난 그것밖에 안되는 놈이야.’ 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또 한번 나를 괴롭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가져왔던 일상적인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번에 나는 ‘고작 그 따위’의 여행에서 얻었던 즐거움과 그 때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며 만족하였고, 저자의 여행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여행의 새로운 경지를 조망하였으며 그러는 한 편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였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컵에 반쯤 채워져 있는 물을 보고 두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 사람은 ‘물이 반밖에 없네.’ 라며 낙담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물이 반이나 있구나!’ 라며 만족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난 늘 내 컵에는 물이 반밖에 없음에 실망하는 쪽이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컵 안에는 얼마만큼의 물이 채워져 있는지 알 수 없음에도 ‘다른 사람들 컵에는 물이 분명 많이 들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늘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렇기에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 또한 사랑할 수 없었다. 나의 오랜 자학과 우울과 질투의 근원은 모두 하나였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 이곳’을 긍정하는 것부터가 모든 변화의 시작임을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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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본문 24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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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본문 353쪽에서)’에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삶은 여린 새싹을 틔우는 봄의 기운에 충만해있다. 이 책은 새롭게 돋아나는 이파리에 좋은 거름이 되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날이 오면 그 열매는 매우 달콤할 것이다. 그리고 매서운 바람이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어도 그것을 참고 견디면 다시 봄이 올 것임을 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를 긍정하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