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글.그림.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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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구불구불 엉켜있던 골목길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던 길인데 건설사가 다른 관계로 울타리가 길게 쳐졌다. 남에서 북으로 지나갈 수 없고, 동에서 서로 움직일 수 없다. 우리는 아파트 주민이 아닌 관계로 단지를 빙돌아서 걸어간다. 내 고향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멋대가리 없고, 인정머리 없고 살맛도 안나는 퍽퍽한 도시라고 양껏 비난을 퍼부어도 시원치 않은데 '그래도' 서울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도대체 '왜?' 서울이 좋은지 알 수 없다. 복잡하고 거대하며 거친 욕망들이 운집한 서울땅이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맞닿아 있기에, 우리가 만들어놓은 서울의 모습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리라. 우리가 더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순간, 서울의 모습도 점점 아름다워질 것이다. 아파트 담장이 허물어지고 너나없이 자유롭게 오가는 살맛나는 서울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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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글.그림.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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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흔적을 간직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도 멋진 형상을 띤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33쪽

한 시간 전에 번뜩였던 생각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잘난 사람들에게 지금을 맡겨두고 한숨을 쉬러 여행을 가지요.-82쪽

사실 건축에서의 여백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서 값비싼 땅에 무엇인가를 포기해가면서 비움을 실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어쩌면 비움은 작을수록 더 좋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무리 작은 대지에 여러 식구가 살기에 비좁은 집을 짓더라도 꼭 마당을 만들어야 했던 우리 도심형 한옥의 교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축에서의 여백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전유물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런 여백들이 모여 우리의 삶의 공간이 보다 여유로워질 수 있으면 우리의 일상도 보다 덜 빡빡해질 수 있을 것이다.-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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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용법 - 한 편집자의 독서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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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한 저자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과 태블릿PC가 점점 책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책은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치유의 책 읽기,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독서, 감성과 이성을 더 풍요롭게 가꾸는 역할은 오직 책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전 시대에 책이 수행해왔던 역할의 일부를 이제는 다른 매체가 더 잘 수행할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여전히 책의 역할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느리게 읽기, 어려운 책을 읽다가 관두고 즐거운 책으로 갈아타기, 만화책 읽기와 같은 우리가 흔히 옳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하는 행위들을 적극 옹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난잡한 책 읽기에서 고전 읽기로, 만만한 책에서 어려운 책 읽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면 모순적인 주장으로 들리지만 '즐거운' 독서나 '깊이를 추구하는' 독서나 모두 책 읽기의 한 측면이며, 한 측면에 맛들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측면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지은이의 오랜 독서편력에서 묻어난 긍정적인 확신이기도 하다.

 

  책 읽기가 무겁고 버거워졌다면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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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2-09-1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사용법이라...
정말 책읽기가 망설여지는 분들께 읽어봄직한 책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일요일 보내십시오.

송도둘리 2012-09-17 12:2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늘 어려운 책을 읽다가 쉬운 책 읽고 이 책 저 책 왔다갔다하면서 보고 그랬는데...제 습관에 대한 옹호자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네요. 태풍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책 사용법 - 한 편집자의 독서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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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상적인 말일 수 있지만 사실 휴식도 일의 연장이요, 일도 휴식이라고 생각하며 즐길 때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완화된다. 이때 ‘이상적인 휴식’을 위해서는 평소 일을 할 때 사용하는 신체기관과는 다른 기관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근육뿐만 아니라 두뇌까지 사용해서 다른 ‘무엇’이 되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책을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다. -20쪽

일단 책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책과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손 닿는 곳에 두고, 혹은 이동할 때는 들고 다니다가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곧바로 책장을 열면 된다. 무엇보다도 책을 가까이 두고, 읽다 보면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신념을 갖자. 그것이 첫걸음이다. -27쪽

책을 둘러싼 세계의 모험을 완성하는 것은 책을 산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다. 독자를 통해 책의 세계는 풍요로워지고, 책의 세계는 마침내 완성된다. ‘산 책’도 ‘파는 책’도 중요하지만 결국 책을 ‘읽어야 내 것’이 된다. 내 것이 되는 책은 내가 최소한 일별한 책이고, 또 언제가 숙독할 책이다.-56쪽

느림의 책읽기는 그러나 뒤진 보행이 아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읽어낼 수 있는데, 이것은 느린 속도의 책읽기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99쪽

나는 누구나 그 사람의 내면에는 한 권 이상의 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반드시, 아니 의무적으로 누구나 한 권씩의 책은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 -155쪽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깨닫는다는 한 글자는 도덕의 으뜸가는 부적이다. 옛 사람의 책 가운데 경전과 역사책 종류 같은 것은 한 글자도 허투루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책 중에 자질구레한 것이라도 하나하나 정밀하게 궁구하여 심력을 나눌 필요가 없다. 가령 한 권의 책이 대략 60, 70장쯤 된다고 치자. 그 정화로운 것을 추려낸다면 십수 장에 불과할 것이다. 속된 선비는 처음부터 다 읽지만, 정작 그 핵심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오직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손 가는 대로 펼쳐 봐도 핵심이 되는 것에 저절로 눈에 가서 멎는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단지 십수 장만 따져보고 그만둘 뿐인데도 그 효과를 보는 것은 전부 읽은 사람의 배나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두세권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나는 이미 백 권을 읽고, 효과를 보는 것 또한 남보다 배가 되는 것이다. (홍길주, 『수여방필』, 정민, 『책 읽는 소리』에서 재인용)-179쪽

지루해지거나 어려워지면 문제의 그 책을 덮어라, 하는 것이 이 장의 끝에서 내가 하고 싶은 충고다. 어려운 책을 덮어놓고 쉬운 책,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책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한꺼번에 책의 내용을 정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면 책의 내용이 새롭게 다가온다는 의미다.-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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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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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와 이해의 네 가지 조합이 만들어내는 네 가지 삶의 등급이 있다. 옳은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이 첫째요, 옳은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둘째다. 그른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은 셋째다. 그른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넷째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기란 쉽지 않다.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은 싫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른 일을 해서라도 이로움을 얻으려고 하다가 마침내 해로움만 불러들이고 만다. 첫째는 드물고 둘째는 싫어 셋째를 하다가 넷째가 되고 마는 것이다. -19쪽

저녁 무렵 숲 주변을 산보하고 있었다. 우연히 한 어린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참새처럼 수도 없이 팔짝팔짝 뛰는 것을 보았다. 마치 수많은 송곳으로 창자를 찌르고, 절굿공이로 마구 가슴을 짓찧는 것 같았다. 하도 참혹하고 절박해서 얼마 못 가 죽을 것만 같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나무 밑에서 밤 한 톨을 주웠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빼앗아갔다는 것이었다. 아아! 천하에 이 아이가 우는 것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저 벼슬을 잃고 세력이 꺾인 자나, 재물을 손해보고 돈을 다 써버린 자, 그리고 자식을 잃고 슬퍼 실성할 지경이 된 사람도 달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밤 한 톨의 종류일 뿐이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 示二子家誡)-30쪽

요컨대 아침볕을 받는 곳은 저녁 그늘이 먼저 들고,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람은 이리저리 옮겨 불어 한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이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좌절로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한 마리 가을 매가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눈은 건곤을 작게 보고, 손바닥은 우주를 가볍게 보아야만 한다. (학유가 떠날 때 노자 삼아 준 가계 贐學游家誡) -36쪽

한 차례 배불러 살이 찌고, 한 번 굶어 수척한 것을 일러 천한 짐승이라 한다. 안목이 짧은 사람은 오늘 뜻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낙담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고, 내일 뜻에 맞는 일이 있게 되면 생글거리며 얼굴을 편다. 일체의 근심과 기쁨, 즐거움과 분노,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모두 아침저녁으로 변한다. 달관한 사람이 이를 보면 비웃지 않겠는가? (학유가 떠날 때 노자 삼아 준 가계 贐學游家誡)-44쪽

허물이 잘못이 아니라, 뉘우침이 없는 것이 잘못이다. 사람은 뉘우침을 통해서 향상하는 존재다. 허물을 돌려 장점으로 만들어라. 위기를 바꿔 기회로 만들어라.-59쪽

사람은 늘 스스로를 가볍게 보고 자신을 업신여긴다. 그런 까닭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헐뜯거나 기리고, 닥치는 대로 비난하고 칭찬한다. 그 사람의 영욕과 이해가 이처럼 서로 아득한 줄은 생각지 못한다. 허락해서는 안 되는데 허락하는 것은 잘못이 오히려 내게 있지만, 배척해서는 안 될 때 배척하는 것은 해로움이 장차 남에게 미친다. 그러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은혜와 원한은 흔히 한 마디 말 때문에 생기고, 화와 복은 한 글자로 인해 야기된다. 명철한 선비라면 마땅히 부지런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도산사숙록 陶山私淑錄)-64쪽

옛날에 소현령蕭縣令이 부구옹浮丘翁에게 다스림에 대해 물었다. 부구옹이 말했다. "내게 여섯 글자의 비결이 있네. 그대가 사흘간 재계하면 들을 수 있을 것이네." 소현령이 그 말대로 하고서 청했다. 부구옹이 먼저 한글자를 주었는데 ‘염廉’자였다. 소현령이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청하였다. 옹이 다시 한 글자를 주는데 ‘염’자였다. 소현령이 일어나 두 번 절하고 다시 청하였다. 옹이 마침내 한 글자를 주니 역시 ‘염’자였다. 소현령이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이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부구옹이 말했다. "자네가 하나는 재물에다 쓰고, 하나는 여색에다 베풀며, 또 하나는 직위에다 사용하게." 소현령이 말했다. "여섯 글자를 다 받을 수 있습니까?" 옹이 말했다. "또 목욕재계를 사흘간 하면 들을 수 있을 것이네." 소현령이 그 말대로 했다. -70쪽

부구옹이 말했다. "자네가 듣고 싶은가? 나머지 세 글자도 모두 ‘염廉’일세." 소현령이 말했다. "그토록 중요합니까?" 옹이 말했다. "앉게. 내 자네에게 말해주지. 청렴에서 밝음이 나오는 법일세. 사물이 실정을 숨길 수가 없게 되네. 청렴에서 위엄이 나온다네. 백성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지. 청렴하면 강직하니 윗사람이 감히 얕잡아 볼 수가 없게 된다네. 이런데도 다스리기에 부족하겠는가?" 소현령이 일어나 두 번 절하고 띠에다 이를 써서 떠나갔다.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주는 말 爲靈巖郡守李鐘英贈言) _ 70쪽-70쪽

상관이 나를 엄한 말로 위협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내가 이 작록과 지위를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간악한 아전이 비방을 꾸며서 나를 겁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작록과 지위를 보전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재상이 청탁으로 나를 더럽히는 것은 어째서인가? 내가 이 작록과 지위를 붙들려 하기 때문이다. 무릇 작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하루도 이 지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중략) 만약 큰 구슬을 품은 자가 강한 사람을 만나 오로지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한다면 그 지위를 보전하기가 어렵다.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주는 말 爲靈巖郡守李鐘英贈言)-80쪽

잘못을 지적하면 부끄러워 더 분발하는 것이 아니라, 제까짓 게 하면서 원망을 품는다. 오류를 깨달아 인정하는 것이 공부다. 과오를 바탕으로 거듭나는 것이 공부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것이 공부다. 그저 고여만 있고, 저 잘난 맛만 있다면 그런 공부는 해서 무엇 하겠는가?-97쪽

대저 터럭을 불어 흠집을 찾고 새로운 견해 내기를 힘쓰는 것은 진실로 큰 병통이다. 지혜를 버리고 뜻을 끊어 온전히 옛 경전을 답습하는 것 또한 실제 소득이 없다. 배우는 자가 선유의 학설에 대해 실로 의심나고 궁금한 점이 있거든 서둘러 다른 의견을 내지 말고, 또한 지나간 일로 속단하지도 말라. 모름지기 환히 깨달을 때까지 연구하여 말한 사람의 본래 뜻을 얻기에 힘써 되풀이해서 검토하고 징험해야 한다. 그러다가 혹 얼음 녹듯 말끔히 풀려도 가만히 혼자 한번 웃을 뿐이다. 혹 그 잘못된 곳이 더 보이더라도 또한 부드럽게 용서하고 좋게 이해해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그 주장이 이와 같았다. 이제 이렇게 보면 주장이 마땅히 이러할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어찌 반드시 겨우 한 부분을 보고 마치 기이한 재화라도 얻은 것처럼 몰래 기뻐 뛰면서 옛것을 배척하고 자기를 내세움을 모기령毛奇齡이 했던 것처럼 거리낌 없이 하겠는가? (도산사숙록 陶山私淑錄)-100쪽

공부는 대단한 벼슬이 아니다. 학문한다고 으스대는 것은 공부가 덜 된 증좌다. 인간의 길과 멀어지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학문을 하자면 추위와 주림을 견디며 각고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벌벌 떠는 천리와 배고픈 음양보다 떳떳한 인간의 길을 찾는 것이 먼저다. 자신을 들들 볶고 주위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이것을 착각하는 사람이 참 많다.-103쪽

정신이 늘 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책 읽기에도 변화를 주어라. 뜻을 세워 사려 앉아 책을 읽더라도, 때로 산뜻한 독서로 엉긴 기운을 풀어주어야 한다. 산에 봉우리가 있고 골짜기가 있듯, 깊이 들어가는 사람과 높이 올라가는 사람이 있듯, 밥도 먹지만 간식도 찾듯이 변화를 통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것을 독파하기 전에는 다른 책에 손도 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도 좋지만 그로 인해 제 몸을 들들 볶으면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중도에 뜻이 꺾이고 만다.-131쪽

어슷이 알지 않고 투철하게 알고, 뭉뚱그려 보지 않고 낱낱이 갈라보는 공부라야 한다. 그저 그렇겠지 하고 대충 넘어가서는 발전이 없다. 변화도 없다. 이렇게 공력이 차곡차곡 쌓아면 어느 순간 식견이 툭 터진다. 한번 터진 식견은 다시 막히는 법이 없다. 아무 걸림 없이 시원스럽게 된다.-143쪽

정자나 주자처럼 어질고 지혜로운 이도 자신의 저술에 대해 문인이나 가까운 이에게 마음대로 잘못을 지적하게 하여 이에 따라 되풀이해 다듬었다. 그럴진대 하물며 초학말류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연히 기록한 것이 있으면 편벽되어 고집하고 굳게 붙들어 옮기거나 고치려들지 않는다. 깨끗이 베껴 써서 보배로이 간직해두고, 남을 만나면 뽐내며 보여준다. 칭찬과 기림을 취하려는 것이다. 그러다 간혹 비판을 받으면 얼굴이 벌게져서 기꺼워하지 않으면서 어거지 말로 잘못을 덮어 가리려 든다. 속으로는 부끄럽지만 겉으로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이렇듯 대충대충 구차하게 때워 넘기는 자는 옛 선현들의 천하에 공정한 마음을 살필 때 어떠하겠는가? (도산사숙록 陶山私淑錄)-188쪽

정월 초하룻날 가난한 선비가 앚아서 일년 먹을 양식을 따져보면 진실로 아마득하다. 생각으로는 하루도 못 가 굶주림을 면치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섣달 그믐날이 되어도 여전히 여덟 식구가 모두 살아남아 한 사람도 축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되짚어봐도 어찌된 셈인지 알 수가 없다. 너는 이 이치를 능히 알겠느냐? 누에게 껍질을 까고 나오면 뽕잎이 움터 나온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태에서 나와 울음소리를 내면 어미의 젖이 벌써 주루룩 흘러내린다. 양식을 또 어찌 근심하겠느냐? 네가 비록 가난해도 근심하지 말아라. (윤종심에게 주는 말 爲尹鐘心贈言)-212쪽

무릇 사대부의 가법家法은 바야흐로 득의하여 벼슬길에 있을 때에는 서둘러 산비탈에 집을 세 얻어 처사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만약 벼슬길에서 떨려나면 서둘러 서울 언저리에 기대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지금 죄인의 명부에 이름이 올라 너희로 하여금 잠시 시골집에 숨어 지내게 하였다. 장차의 계획대로라면 도성의 10리 안쪽에 살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가세가 기울어 깊이 들어갈 수 없으면 모름지기 잠시 근교에 머물며 과일을 심고 야채를 기르며 생활을 도모하도록 해라. 재물이 조금 넉넉해질 때를 기다려 그때 저잣거리 가운데로 들어와도 늦지 않다. 화복禍福의 이치는 옛사람도 의심한 지가 오래되었다. 충효를 한다 하여 반드시 재앙을 면하는 것이 아니고, 음란 방탕한 자가 꼭 복이 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선을 행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인지라 군자는 힘써 선을 행할 뿐이다. 예로부터 화를 입은 집안의 남은 자손들은 반드시 높이 날고 멀리 숨어, 오직 산속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만을 염려하였다. 하지만 필경에는 노루나 토끼가 되고 말 뿐이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 示二子家誡)-230쪽

큰돈은 쉽게 쓰고 작은 돈은 아껴 쓰라.-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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