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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 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들
이정철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2월
평점 :
이 책은 조선후기 대동법이 시작되고 정착되기 까지 힘썼던 네 명의 인물을 관찰하고 있다. 지은이는 정치의 근본은 민생을 살피는 것이라는 인식 하에, 대동법을 주장했던 이들을 우호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의 또 다른 책 이름이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이 묘하다. 마침 새 정부가 출범한 시기와 비슷하기도 하고 저번 대선에 대두되었던 화제가 ‘복지’와 ‘생활정치’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당쟁’이나 거듭하고 ‘예송’과 같은 쓸데없는 논쟁이나 하느라 시간을 낭비한 역사로 보는 시각이 식민사관에 근거한 것이라는 반성이 있어왔다. 때문에, 요즘에는 ‘붕당정치’의 긍정적인 측면을 조명하고 성리학 연구의 깊이와 사상적 완성도를 추어올리는 연구도 많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헛헛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는 법인지라, 위정자들이 깊은 사유에 골몰하느라 민생과 국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이런 문약한 흐름에 돌출되어 보이는 것이 대동법이고, 민생정치의 전범으로 지은이는 파악하고 있다.
사실 대동법은 위대한 정치가의 탁견으로 단숨에 시행된 정책이 아니다. 여러 사람에 의해 개혁 방안이 제기되고, 그것이 수렴되고 반발을 이겨내고 정착되는데 백여 년이 넘게 걸린 지적이고 정치적인 흐름이다. 때문에 지은이는 대동법을 둘러싼 인물들의 여러 차원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이이에게서는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발견하고, 김육에게서는 뛰어난 정치가의 측면을 조명하는 식이다. 또한, 이원익은 유능한 관리, 조익은 현실 참여형 학자의 전범으로 평가하고 있는지라 사실 이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사회지도층, 즉, 학자・관료・정치가의 모범을 보여주려 시도하고 있다.
사회지도층이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가장 명심해야 할 말은 이이가 「만언봉사」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말이 아닐까 싶다.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정사(政事)는 시의(時宜)를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실공(實功)에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사를 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공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치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이의 「만언봉사」에서 재인용) _ 93쪽
정리하자면 첫째,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즉,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둘째, 무엇을 해결해야 되는지 알았다면 탁상공론에 얽매이거나 무식하게 밀어붙여서 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가 나도록 정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정책을 집행하거나 정치가가 정책을 입안하는데 있어 이보다 더 명쾌한 해답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동 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들이 ‘시의’를 파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은 백성들의 삶, 즉 현실을 자신의 것으로 파악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김육은 직접 농사를 짓고 참숯을 만들어 팔만큼 ‘백성의 관찰자가 아닌, 그냥 백성 중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고, 다른 인물들도 도성의 중심에 있기 보다는 교외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백성들의 삶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공무원들에게 현장을 직접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현장방문이 ‘사진 찍는 행사’로 비쳐지고, 공무원들의 외부 출장을 ‘농땡이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현장정치의 정착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현장정치는 이이를 비롯한 네 분의 위인이 보여주었던 현장정치와는 다른 ‘사이비’에 가깝다. 마치 꿈처럼 일시적인 경험일 뿐, 자신의 삶과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잠곡에서의 그는 백성들의 삶을 철저하게 경험했다. 사회경제적, 문화적으로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 혹은 계층의 삶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그 삶을 일시적으로 살았다고 해도 본래의 자신의 삶과 관련성이 끊어지지 않는 한, 그 경험은 표면적일 수밖에 없다. 마음으로 그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는 백성의 관찰자가 아닌, 그냥 백성 중 하나였다. 백성의 삶은 머리가 아닌 그의 몸과 생활에 젖어들었다. 스스로 여러 차례 말했듯이 김육은 자신의 삶이 잠곡에서 그렇게 끝나리라고 예상했다. _ 351쪽
이제 다시 생활정치다. 이념도 중요하고 사상도 필요하지만 사람과의, 삶과의 관련성이 멀어지게 되면 허공에 둥둥 뜬 채 떠다니게 된다. 우리는 위정자란 대저 ‘큰 일’을 논해야 하고 먹고 사는 일을 논하는 것은 마치 ‘작은 일’인 것처럼 생각해왔다. 하지만 작게 생각했던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몸은 삼궤구고두의 치욕을 겪으면서도 마음만은 오랑캐에게 굴하지 않았던 결기도 필요하지만, 애초부터 오랑캐의 야욕을 꺾을 수 있도록 국방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상과 이념의 투쟁도 필요하지만 국민의 삶을 윤택하고 여유롭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 책에서 다룬 네 명의 위인들이 지금 이 시대 사회지도층들의 전범이 되었으면 한다.